애플 vs 에픽 소송에 대한 1심 판결 : 에픽 게임즈의 판정패

지금으로부터 약 1년 전, 에픽 게임즈는 Free Fortnite라는 캠페인을 통해 하나의 찬란한 도전을 시작합니다. 바로 “거대 독점 기업” 애플로부터 대항하여 개발자와 사용자의 자유와 이익을 지키는 싸움이었죠.

그로부터 1년 뒤, 2021년 9월 11일에 캘리포니아 주 법원에서 드디어 애플과 에픽 소송의 1심 판결의 결과를 내놓았습니다. 1심 판결이긴 하지만 미국 반독점 관련 재판은 관례상 모든 이해 관계자가 출석하는 1심의 결과가 막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1심의 판결 결과는 상당히 중요합니다.

특히 이 판결은 애플과 에픽 게임즈 뿐 아니라 전세계의 기술업계에서 주목하는 중요한 판결이었습니다. 미국 뿐 아니라 한국과 일본 등에서 독점 혐의로 전방위로 압박을 받고 있는 애플로서는 더더욱 중요한 판결이었죠.

익히 아시겠지만 한국은 전세계 최초로 애플과 구글과 같은 양대 앱 마켓에서 인앱결제 수단을 강제할 수 없도록 법적으로 규정해놓았습니다. 그 뿐 아니라 일본 공정거래위원회(JFTC)는 넷플릭스나 아마존과 같은 “리더(Reader) 앱”은 앱 자체에 자체 결제 수단으로 연결하는 링크를 허용하도록 권고한 상태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캘리포니아 법원은 어떤 판단을 내렸을까요?

애플 vs 에픽 소송의 주요 포인트

소송 결과를 보기 전에 에픽 vs 애플 소송의 주요 포인트를 복기해보는 것도 좋겠죠.

해당 소송은 이 블로그에서도 여러번 다뤘기 때문에 아래 링크를 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에픽 게임즈의 찬란한 도전

앱스토어 논란을 단순히 애플의 갑질로 볼 수 없는 이유

애플 vs 에픽 소송 1 라운드 : 에픽의 판정패?

일단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애플이 앱스토어 시장에서 독점력을 행사하고 있는지 여부였습니다. 이는 세부적으로 나눠보면 다음과 같은 포인트로 나눠볼 수 있습니다.

1) 애플이 에픽을 앱스토어에서 내쫓은 것이 반 경쟁적인 행위인가?

사실 에픽이 애플을 고소한 표면상의 이유는 애플이 포트나이트 게임과 에픽의 개발자 계정을 제거한 것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물론 그건 에픽이 무단으로 자체 결제 시스템을 탑재했기 때문이었죠. 즉 사실상 에픽이 먼저 시작한 것이긴 하지만 법리적으로는 애플이 선빵(?)을 날린 것처럼 만들어놓은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표면적으로 가장 중요한 쟁점은 애플이 이걸 이유로 에픽을 앱스토어에서 내쫓은 것이 정당한 것인가? 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여러가지 중요한 논점들이 자연스럽게 따라오죠.

2) 앱스토어에서 게임과 앱 개발사가 자체 외부 결제를 선택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반경쟁 행위인가?

즉, 에픽이 자체 결제를 탑재했다고 쫓겨났는데 이게 정당한 것인지에 대해서 법원에게 판단을 받겠다는 것입니다. 에픽 뿐 아니라 넷플릭스, Hey 등 많은 개발사들은 앱스토어의 수수료 정책에 불만을 품고 자체 결제 시스템 탑재를 시도했었습니다.

애플이 모든 앱에 대해서 인앱결제를 막은 것은 아닙니다. 카카오톡의 이모티콘 구매나 배달의 민족에서 음식을 주문한 것도 인앱결제지만, 이러한 결제는 애플이 금지하거나 수수료를 부과하지 않습니다. 애플이 인앱결제를 제한하는 것은 게임과 ‘앱 사용권’ 같이 앱스토어에서 판매하는 컨텐츠에 한정되어있죠.

에픽도 수수료를 이유로 자체 결제 탑재를 시도했던 것이기 때문에 이 부분이 근본적으로 가장 중요한 쟁점이었습니다.

3) 앱스토어에서 사이드로딩을 허용하지 않는 것이 반 경쟁 행위인가?

사이드로딩이란 앱스토어 외의 경로로 앱을 설치하는 것을 허용하는 것인데요, 예를 들어 아이폰과 아이패드는 앱스토어에서만 앱을 설치할 수 있지만 맥북은 맥 앱스토어가 아닌 스팀과 같은 곳에서도 앱을 설치할 수 있습니다. 즉 맥에서는 사이드로딩이 허용 되어있는 것이죠.

에픽의 주장은 아이폰이나 아이패드에서는 앱스토어를 통해서만 앱을 설치하도록 강제하고 있는데 이것이 독점 행위에 해당한다는 것입니다. 이 주장은 앱스토어 정책상 허용되지 않는 컨텐츠를 아이폰으로 사용하고 싶은 많은 파워유저들에게도 지지를 받기도 했습니다.

판결문 정리

판결문은 무려 185 페이지에 달하는 길이로 상당히 구체적인 의미를 담아 작성되었다고 합니다. 저도 판결 전문을 본 것은 아니지만, 여러 매체에서 정리한 것을 기반으로 요약, 정리해봤습니다.

일단 판결문을 요약해보면 두가지 포인트로 나눌 수 있습니다.

1) 애플의 앱스토어 비즈니스는 독점이라고 볼 수 없다.

에픽은 애플이 독점을 하고 있다고 고소했고, 애플은 비디오 게임 계에서 애플의 점유율을 들며 독점이 아니라고 이야기했습니다. 판사는 “모바일 게임” 시장으로 애플이 주장한 것보다는 좁혀서 해석했지만 여전히 애플이 해당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갖고 있다고 보지 않았습니다.

게임은 특성상 모든 플랫폼에서 동일한 인터페이스를 갖고 있고, iOS 플랫폼에서 게임을 하던 사용자들도 원하면 다른 플랫폼으로 얼마든지 넘어갈 수 있다고 본 것이죠. 안드로이드 플랫폼처럼 모바일 게임은 충분히 대체재가 있으므로 독점이 아니라고 본 것입니다.

이 판결을 통해 앱스토어 비즈니스는 독점이 아니므로 앱스토어에서 부과하는 30% 수수료에 대해서도 변화는 없습니다. 또한 사이드로딩을 금지한 앱스토어 규정도 유지되게 되었죠. 사이드로딩에 대해서 법원은 앱스토어처럼 중앙에서 앱 설치를 통제하는 방식이 보안을 강화 시킨다는 애플의 손을 (제한적으로) 들어주었습니다.(사실 판결문에서는 사회공학적인 공격만 방어가 가능하다고 기술하였고 사이드로딩이 허용된 맥은 매우 위험한 상태라는 애플 측의 주장은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즉 앱스토어는 독점이 아니었고, 에픽은 고의적으로 자체 결제수단을 탑재하면서 애플과의 계약을 위반했기 때문에 앱스토어에서 내려가기 직전까지 자체 결제로 올린 수익의 30%를 애플에 반환해야할 의무가 있다고 판결했습니다.

2) 애플의 앱스토어 운영방식은 반 경쟁적이다.

반면 캘리포니아 주 법원은 독점은 아닐지 몰라도, 인앱결제를 철저하게 통제하는 현재 운영방식은 반 경쟁적인 행위라고 봤습니다.

법원은 애플이 의도적으로 외부 컨텐츠(게임 아이템이나 라이선스 등)를 자체 플랫폼으로 제공하는 것을 못하게 하여 애플의 시장 지배력을 인위적으로 확대하고 있다고 봤고 이건 명백히 불공정 행위라는 것이죠.

즉 개발자가 다른 수단을 통해 좀 더 저렴하게 사용자에게 혜택을 주고 싶어도 애플이 나서서 그것을 금지시키고 앱스토어의 결제만 이용하도록 하면서 시장 지배력을 확대시키고 있다고 본 것입니다.

그러면서 법원은 애플에 90일 안에 수행해야하는 금지 명령을 내렸습니다. 개발자가 고객에 직접 자체 플랫폼으로 컨텐츠를 제공하는 것을 금지하지 않아여 하고 앱 내에서 버튼 또는 외부 링크를 통해 자체 결제 페이지로 이동시키는 것을 허용해야한다고 한 것이죠.

즉, 에픽이 원한대로 개발사는 인앱 결제를 자체 결제 수단을 통해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개발사는 자체 결제를 통해 얻은 수익은 애플에 30% 수수료로 부담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죠.

넷플릭스나 배달의 민족 같은 앱처럼 게임 아이템이나 앱의 사용권 같은 컨텐츠도 자체 결제 수단을 통해 컨텐츠를 구매할 수 있도록 허용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누가 이긴거야??

판결을 다시 짧게 요약하자면, 애플의 앱스토어 비즈니스 자체는 독점이 아니지만, 개발사가 자체 결제를 통해 컨텐츠를 제공하는 것을 막으면 안된다는 의미입니다. 이 판결은 한국과 일본에서 이미 진행된 인앱결제 법 규정과도 거의 같죠. 특히 “모든 컨텐츠”에 대해 규정한만큼 한국에서 제정된 법과 거의 일치하는 판결이었습니다.

자, 그럼 에픽과 애플 둘 중 누가 이긴걸까요?

일단 에픽과 애플 모두 부분적인 승리만을 거두었다고 보는게 맞을 것 같습니다만 제가 보기엔 에픽의 피해가 더 큰 것 같습니다.

개발자가 자체 결제를 가질 수 있게 되었으므로 에픽은 소기의 목표를 달성했지만, 아직도 에픽의 개발자 계정은 내려가 있는 상태고, 앱스토어에서 내려가기 전 자체 결제 수단 도입을 통해서 벌어들인 수익의 30%를 애플에 내줘야할 판이며, 그렇게 원했던 애플 플랫폼 내에서 자체 스토어를 가지는 것은 끝내 실패했기 때문입니다.

실질적으로 에픽 입장에서는 얻은게 별로 없습니다. 천문학적인 소송 비용을 써서 모든 개발사들이 애플에 수수료를 내야하는 부담을 덜어주긴 했죠. 에픽이 정말로 자유를 위한 투사였다면 이 결과에라도 만족했겠지만 에픽 CEO 팀 스위니는 이 판결에 대해 “사용자도 개발자에게도 모두 이득이 없다”고 분노하며 항소할 의지를 밝혔습니다.

반면 애플은 “앱스토어 비즈니스가 독점이 아니다”라는 판결이 나온 것만으로도 안도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큰 틀에서는 외부 결제수단으로 향하는 링크를 열어준 것 외에는 바뀐게 없고, 오히려 법원을 통해 “앱스토어 비즈니스가 독점이 아니다”라는 증명서까지 받게된 셈이니까요.

“계획대로..”

하지만 애플과 에픽 이외의 이해관계자들에게는 좋은 소식입니다. 특히 개발사들은 환영할만한 소식이죠. 비슷한 문제로 애플과 갈등을 겪었던 이메일 클라이언트 Hey 같은 개발사는 벌써 인앱 결제를 자체 결제로 바꾸는 개발에 착수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런 개발사들은 자체 결제 도입을 통해 애플에 30% 수수료를 납부하지 않아도 되겠죠.

물론 개발사 중에는 여전히 애플 결제를 사용하겠다고 밝힌 곳도 있습니다. 앱스토어 결제는 수수료를 내야하긴 하지만 국가별 정산과 세금 문제 등 개발자가 신경쓰기 어려운 문제들을 자연스럽게 해결해주기 때문에 애플 결제가 더 이득인 측면도 분명히 있기 때문이죠. 무엇이 되었든 개발자들로서는 선택권이 늘어나는 것은 좋은 일 일겁니다.

반면 이 판결이 소비자에게는 어떤 결과로 이어지게 될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할 것 같습니다. 앱스토어 인앱결제는 폐단도 있지만 결제수단을 통합해서 여러 앱에서 사용할 수 있다는 편의성과 안전성이 있었는데 이제 그러한 요소가 감소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로 인해 애플 수수료가 반영되지 않은 금액으로 앱을 이용할 수 있다면 소비자에게도 이득일 것 입니다.

캘리포니아 주 법원 판결에서는 인앱결제를 개방하는 것과 관련해서 구체적인 방식에 대해서 자세하게 규정하지는 않고 애플과 개발사의 자율에 맡겨놓은 상태입니다. 따라서 인앱결제 개방을 어떤식으로 풀 것인지는 애플에게 돌아온 공이겠죠. 소비자 입장에서 앞으로 어떻게 진행되게 될지는 좀 더 지켜봐야할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