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아케이드가 얼마 전 대대적인 업데이트를 감행했습니다. 나름 애플 서비스 중에는 규모 있는 업데이트였지만 그냥 조용히(?) 업데이트 된 후 보도자료로 발표하는 방식으로 지나갔습니다.
그동안 애플 아케이드는 2019년에 출시된 이후로 애플 서비스 중에서 약간 미묘한 평가를 받고 있었습니다. 이렇다할 대박은 없었고 그렇다고 망했다고 보기에도 미묘한 수준으로 계속 유지되고 있었습니다.
출시 초기만해도 100가지 이상의 게임을 저렴한 구독 가격(6,500원)에 즐길 수 있어서 매력적인 서비스로 보였지만 막상 까보니 즐길만한 게임이 별로 없었던 것이죠.
애플 아케이드의 문제
애플 아케이드의 문제는 방향성을 잡지 못하고 있던게 주요 문제로 보입니다. 마치 초기의 애플워치처럼요. 애플워치도 초기에는 방향을 제대로 잡지 못하고 있었죠. WatchOS의 초기 업데이트만 봐도 멀티태스킹 방식을 대대적으로 갈아 엎거나, 하드웨어 버튼의 기능을 아예 바꿔버리는 등의 업데이트가 많았죠.
하지만 애플워치는 초반의 격동기 이후 진행된 업데이트에서 건강, 피트니스, 소통의 세가지 핵심 키워드를 정하면서 더이상 헤매지 않고 안정화되었습니다. 이후 진행된 업데이트도 저 세가지 키워드의 강화에 집중했죠.
애플 아케이드도 애플워치처럼 방향을 뚜렷하게 잡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지향하고 있는게 콘솔 게임인지, 모바일 게임인지조차 뚜렷하지 않았습니다. 애플은 아케이드에 있는 게임이 아이폰부터 맥에 이르기까지 모든 애플 디바이스에서 실행되길 원했죠.
하지만 아이폰에서는 콘솔 게임 같은 큰 사이즈의 게임은 별도의 컨트롤러 없이는 조작이 적합하지 않았습니다. 반대로 맥에서는 터치 기반의 캐쥬얼 게임이 적합하지 않았죠. 애플 아케이드는 디바이스 특성에 따라 달라지는 게임의 특성을 무시하고 있었습니다. 모든 디바이스에 맞는 게임을 만들어야 하는 것은 개발자들에게도 큰 부담이었을 것입니다.
또한 애플 아케이드에만 있는 독점 게임들도 발목을 잡는 요소였습니다. 독점 게임은 콘솔에서도 많이 쓰이듯 플랫폼을 공고하게 해주는 역할을 합니다. 하지만 애플 아케이드는 모든 게임이 독점 게임으로 이루어져있다는게 문제였죠. 애플 아케이드에는 처음 보는 애플 독점 게임들만 있다보니 이용자들은 어떤 게임을 해야하는지 전혀 알 수 없는 상태로 구독을 해야했습니다.
생각해보면 많은 플랫폼이 독점으로만 이루어져 있지 않습니다. 독점작으로 유명한 넷플릭스도 모든 컨텐츠가 독점 컨텐츠로만 이루어져있는 것은 아니죠. 닌텐도, 플레이스테이션 등의 게임 콘솔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느정도 ‘검증된’ 유명한 게임이 플랫폼의 마중물 역할을 하면서 독점 게임이 공고히 하는 역할을 해야하는데 애플 아케이드에는 그 마중물이 없었습니다.
애플 아케이드 업데이트 내용
그렇다면 이번에 업데이트 된 애플 아케이드는 과연 이런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을까요? 이번 애플 아케이드의 주요 업데이트 내용을 정리해보면 크게 세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오리지널 게임
일단 기존 애플 아케이드와 동일한 형태의 오리지널 독점 게임들입니다. 이 카테고리의 게임들은 기존처럼 콘솔과 모바일 중간에 위치한 게임들이 주를 이룹니다.
다만, 이번에 추가된 게임들의 평가가 상당히 좋습니다. 특히 일본 게임들이 눈에 많이 띕니다. 파이널판타지 제작자가 만든 , 스위치에 있는 태고의 달인을 이식한 <태고의 달인 Pop Tap Beat>, 플래티넘 게임즈에서 제작한 첫 iOS 게임 World of demons 같은 게임들 입니다.
또한 Cut the Rope 시리즈가 리메이크되어 추가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아이팟 터치 시절에 즐겼던 게임인데 상당히 반갑습니다. 3D로 변한 “Om nom”은 좀 어색하지만..
NBA2k21 도 애플 아케이드 라이브러리에 추가되었습니다. Arcade Version 이라는 수식어가 붙어있는데요, 인앱 구매나 광고가 없는 애플 아케이드 게임 전통에 따라 모바일 플랫폼에서 보기 힘든 제대로된(?) 농구 게임입니다.
그 외에도 많은 게임들이 추가 되었는데, 퀄리티가 모두 준수합니다. 그동안 평가가 들쭉날쭉해서 아쉬웠던 애플 아케이드 게임으로서는 괄목할만한 변화죠.
앱스토어 걸작 게임(App Store Greats)
이번 업데이트에서 가장 주목되는 것은 바로 앱스토어 걸작 게임 카테고리입니다. 해당 게임들은 기존에 iOS에서 인기가 있었던 게임들을 애플 아케이드로 그대로 가져온 것입니다.
말할 필요도 없는 앱스토어 걸작 Monument Valley부터 Fruit Ninja, the Room 2 같은 게임들이 여기에 포함됩니다. 이 게임들은 새로운 게임들은 아니지만 iOS를 비롯해 다른 모바일 플랫폼에서 “검증된” 게임들이죠.
이 게임들은 안드로이드에도 출시된 적이 있는 게임이므로 독점 게임은 아니지만 모두 5,900원 상당의 유료 게임들로서 애플 아케이드 구독을 통해 저렴하게 즐길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게임들에 +가 붙어서 뭔가 새로 업데이트된 부분이 있나 했지만 그건 아니었습니다. 기존과 거의 동일한 게임들입니다. 다만 Don’t Starve 같은 게임은 애플 아케이드 버전은 기존과 달리 버그 패치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는 소소한 차이가 존재하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 앞으로가 가장 기대되는 카테고리입니다. 기존 애플 플랫폼의 앱스토어 걸작 게임들을 애플 아케이드를 통해 저렴하게 실행해볼 수 있는 것이죠. 또 예전에 업데이트가 끊겨서 더이상 새로운 OS에서 실행할 수 없는 게임들을 계속 만나볼 수 있는 장이 될 수도 있을 겁니다.
앞으로 어떤 게임들이 추가될지 기대됩니다. 인기가 많았던 Stardew Valley 같은 유료 게임이나, 또는 인앱 구매로 점철되었던 아쉬운 게임(대표적으로 Sky가 있겠네요)을 애플 아케이드를 통해 새로운 모습으로 만나볼 수 있지 않을까요?
클래식 게임(All time Classic)
애플 아케이드 업데이트의 마지막 카테고리는 클래식 게임들입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클래식 게임은 고전 게임이 아니라 체스, 수도쿠, 마작, 솔리테어와 같은 전통적인 보드 게임들입니다. 예전 윈도우에 들어있던 기본 게임들 같은 것들이죠.
이런 고전적이지만 인기있는 보드 게임들은 본격적인 비디오 게임은 아니지만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심지어 게임과 가장 거리가 멀어보이는 사람들조차 즐길 수 있죠.
클래식 게임은 가족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애플 아케이드의 포용성을 한층 더 넓혀줄 것으로 기대됩니다. 사실 어린이나 10대 청소년, 20대 청년 등 게임의 ‘주 고객’이 아닌 연령 층도 모바일에서는 이런 류의 보드 게임을 많이 하는 편입니다. 고스톱 게임 같은 것들은 플랫폼을 가리지 않고 베스트 셀러 반열에 들기도 했으니까요.
윷놀이나 민화투, 고스톱과 같은 한국에 최적화된 보드게임(?)도 이 카테고리에 업데이트 된다면 재밌을 것 같네요. 애플 아케이드는 인앱 구매도 할 수 없으니 아마 구독자도 엄청 늘어날 겁니다.
갑자기 바뀐 공기의 흐름
이번에 진행된 애플 아케이드 업데이트는 달라진 애플의 전략을 내비치고 있습니다. 일단 애플 아케이드에 있는 모든 게임이 모든 디바이스에서 실행되어야한다는 방침을 수정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번에 애플 아케이드에 추가된 게임 중 앱스토어 걸작 게임 카테고리와 클래식 게임은 아이폰과 아이패드에서만 실행할 수 있습니다.
또한 다른 앱스토어에 출시되지 않은 완전히 새로운 독점 게임만 나와야한다는 방침도 수정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번에 추가된 게임 중 ‘Monument Valley +’나 ‘Don’t Starve +’ 와 같은 게임은 이미 안드로이드에도 출시가 되었던 게임들입니다. 이런 ‘검증된’ 유명 모바일 게임이 애플 아케이드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죠.
이 두가지 전략이 잘 먹힌다면 애플 아케이드는 애플 플랫폼에서 상당히 이상적인 서비스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모바일 중심의 게임 전략을 펼치면서 가장 사용자 비중이 많은 아이폰과 아이패드 쪽에 집중하고, 또한 검증된 유명 게임을 플랫폼에 유치하여 더 많은 사용자들을 구독으로 모을 수 있겠죠.
관건은 이 흐름이 얼마나 유지될 것이며, 특히 ‘App Store 걸작 게임’ 카테고리가 업데이트 되는 속도는 얼마나 될 것이냐겠죠. 이번주에는 독점 게임 두가지와 기존 앱스토어 걸작 게임인 “Leo’s Fortune”이 업데이트 될 예정인데, 한주에 하나씩 추가되는 것보다는 좀 더 빨라야하지 않나 싶네요.
마무리
개인적으로 애플 아케이드를 출시 전부터 기다리고 있었고, 또 그만큼 실망했던 상태였습니다. 한 달에 유료 게임 하나 정도 구매할 돈을 들여서라도 안정적으로 게임을 공급(?) 받고 싶은 생각이 있었지만 그동안 애플 아케이드에 있던 게임들은 영 실망스러웠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번 애플 아케이드의 업데이트는 개인적으로 환영하는 부분입니다. 모든 디바이스에서 동일한 게임을 잘 실행할 수 있는 것도 좋지만 그보다는 최적화된 디바이스에 적합한 게임들 실행하는게 더 좋기 때문입니다.
애플 아케이드가 이번 업데이트를 대거 확장해서 컨트롤러에 최적화된 독점(오리지널) 게임들을 비롯해 모바일과 터치에 최적화된 모바일 게임으로도 대거 확장되면 좋을 것 같습니다. 거기에 더해 앱스토어 걸작 카테고리를 통해 기존에 구매를 해야했던 유료 게임들이나 인앱 구매가 필수적이었던 iOS 게임의 아케이드 버전을 볼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이상적일 것 같습니다.
만약 기대대로 간다면 애플 아케이드는 애플 플랫폼에서는 좀 더 막강한 서비스가 될 것 같습니다. 또 누구에게나 친숙한 ‘모바일 게임’이라는 강점을 등에 업어 그 어떤 서비스보다 넓은 사용자 층을 포괄하는 서비스가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다만 게임 플랫폼마다 말아먹은 애플의 전적으로 볼 때 여전히 불안한 점은 남아있긴 하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