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워치가 오마쥬한 클래식 워치들

애플워치가 처음 소개되었을 때만해도, 애플워치가 기존 손목 시계 시장에 어떤 여파를 미칠 것인지 전망해보는 글이 많았습니다. 그리 큰 타격을 입히지 못할 것이라는 반응도 있었고, 휴대폰 시장에서 아이폰처럼 기존 시장을 뒤흔들만큼 강력한 충격을 줄 것이라는 반응도 있었죠.

최초의 애플워치가 출시되고 8년이 지난 지금, 손목 시계 시장을 돌아보면 스마트워치는 스마트워치대로, 고가의 기계식 손목 시계 또한 나름의 시장을 구축하며 공존해가고 있는 모양새입니다.(물론 중저가 시장의 시계들은 사정이 좀 다른듯 합니다..)

애플워치는 에르메스를 통해 명품 시계 시장에도 기웃거리고 있고, 또 전통적인 스위스 시계 브랜드들도 자사의 브랜드를 달고 있는 안드로이드 기반의 스마트워치를 생산하며 경쟁하고 있죠. 각자가 잘하는 분야가 있기 때문에 아마 기계식 시계들과 애플워치는 상당 기간 동안은 공존해가며 나름의 영역을 구축할 것으로 보입니다.

애플워치를 전통적인 손목 시계처럼 분류해본다면 카시오의 G-Shock 같은 디지털 워치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비록 내부가 CPU, 램, 운영체제까지 사실상 손 목 위의 컴퓨터와 같은 구조를 갖고 있지만 크게 보면 그렇죠.

근데 애플워치는 디지털 워치이면서도 아날로그 시계를 흉내낸 페이스가 꽤 많습니다. 서드파티 페이스를 쓸 수 있는 다른 스마트워치와 달리 애플워치는 기본적으로 애플이 만든 페이스 밖에 사용할 수 없는데 애플은 좀 쓸데 없다 싶을 정도로 애플워치에 아날로그 페이스를 많이 넣은 편입니다.

왜 애플은 디지털워치인 애플워치에 이렇게 다양한 아날로그 페이스를 넣었을까요? 단순히 심미적인 요인도 있을겁니다. 갤럭시 워치를 비롯해 다른 스마트워치들도 명품 시계를 모방한 아날로그 페이스를 모방한 페이스를 많이 사용하니까요.

하지만 애플워치의 아날로그 페이스는 단순 심미적인 요인을 넘어 전통적인 손목 시계들에게 보내는 헌사이자, 오마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애플워치의 아날로그 워치 페이스는 명품 시계의 화면을 그대로 가져온게 아니라 전통적인 손목 시계 페이스의 본질을 재해석하고 디지털 방식으로 계승한 것이거든요.

이번 글에서는 애플워치에게 영향을 주었던 클래식 워치들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아마 보시고 나면 애플워치에 있는 아날로그 페이스들이 괜히 들어간게(?) 아니구나 하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오메가 스피드 마스터(레이싱 워치)

오메가 스피드 마스터는 스위스의 시계 브랜드 오메가의 가장 대표적인 모델입니다. 우주비행사들과 함께 달에도 다녀와서 “문워치”라는 별명으로 더 유명한 시계죠. 헤리티지(Heritage;제품 또는 브랜드와 얽혀있는 문화 유산 또는 스토리)가 특히 중요한 클래식 워치에서도 “달에 갔다온 시계, 달에서도 쓸 수 있는 시계”라는 훌륭한 헤리티지를 갖고 있는 모델입니다.

우주에서 쓸 수 있는 시계로 유명하지만, 사실 스피드 마스터는 레이싱 워치의 한 종류입니다. 레이싱 워치는 주로 레이서들이 많이 착용하던 시계로 속도를 측정할 수 있는 타키메터 기능이 탑재되어 있는게 특징입니다.

시계로 속도를 측정한다는 개념이 좀 생소하실 수 있을 겁니다. 사실 원리는 그렇게 어렵지 않습니다. 기초적인 물리학 공식을 이용하면 시간과 거리를 알면 물체의 속도를 측정할 수 있거든요.

고등학교 때 배웠던 공식인 “속도 = 거리 / 시간”을 떠올려보면 쉽습니다. 제가 만약 1km을 1분만에 이동했다고 한다면, 속도는 다음과 같이 될겁니다.

1km / 60 sec = 약 0.0167 km / sec

여기에 우리에게 익숙한 시속으로 변환하기 위해 3600(1시간 = 3600초)을 곱합니다.

0.0167 km / sec * 3600 = 60 km / h

즉 1km를 이동하는 동안 걸린 시간을 재는 방법으로 현재 속도를 쉽게 측정할 수 있는 것이죠.

오메가 스피드 마스터를 보면 시계의 배젤에 이런 방식으로 미리 계산된 속도가 있습니다. 시계의 타키메터 기능을 활성화해 타이머를 재면 다이얼에 있는 큰 바늘(초침이 아닙니다.)이 가리키는 곳이 곧 속도가 됩니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스피드 마스터라는 이름이 이해가 되죠.

오메가 스피드 마스터는 애플워치에서 “크로노그래프 프로”라는 이름으로 계승되었습니다. 크로노그래프는 타이머 기능을 내장한 기계식 시계를 통칭하는 의미인데 레이싱 워치도 크게 보자면 크로노그래프 시계입니다. 다만 속도 측정에 특화된 것이죠.

크로노그래프 시계는 기계식 시계에서도 가장 복잡한 메커니즘을 가진 시계로 유명합니다. 스피드 마스터도 작은 다이얼이 세개가 있고 모양 자체도 뭔가 복잡해보이죠. 애플워치의 크로노그래프 프로 페이스는 애플워치의 페이스 중 디지털이면서도 가장 기계적인 매력이 있습니다.

애플워치는 단지 스피드 마스터의 모양만을 따온게 아니라 기능적인 부분도 같이 가져왔습니다. 크로노그래프 프로 페이스도 스피드 마스터와 동일한 방식으로 속도를 잴 수 있는 것이죠. 시계 페이스를 클릭하면, 모양이 바뀌는데, 이때 초록색 버튼을 누르면 타이머가 시작됩니다. 타이머가 돌아가면서 큰 빨간색 바늘이 같이 돌아가는데요, 이 빨간색 바늘이 가리키는 곳이 바로 속도입니다.

제가 1km를 36초 정도만에 이동했다고 하면 전 시속 100km로 움직이고 있다는 뜻이죠.

애플워치는 레이싱 워치의 타키메터 기능을 디지털만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재해석했는데요, 바로 위에 나오는 숫자입니다. 스피드 마스터에서는 속도를 바늘이 가리키는 방향에 따라 봐야하지만 애플워치는 속도를 디지털 숫자로 바로 확인할 수 있도록 했죠.

디지털 방식으로 보완한 또 다른 장점은 바로 시속 60km 미만의 속도를 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기계식 레이싱 워치에는 구조적인 약점이 하나 있는데, 베젤에 표시되는 영역에 한계가 있다보니 60km/h 아래의 속도는 측정할 수가 없습니다. 60km 이하가 되면 바늘이 표시 가능한 속도를 넘어가 버리기 때문이죠.

하지만 크로노그래프 프로는 속도를 화면 위에 표시하기 때문에 60km/h 이하의 속도, 1km/h 이하의 속도까지도 정확하게 측정이 가능합니다. 레이싱 워치의 구조적인 문제를 극복한거죠.

물론 이건 애플워치의 화면이 디지털 방식이기 때문에 가능한 부분입니다. 그리고 애플워치는 사실 달리기나 걷기를 할 때 속도를 GPS를 이용해 측정합니다. 더 정확하고 진보된 방식이죠. 하지만 크로노그래프 프로의 이런 기능은 클래식 워치의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21세기의 기술로 기존 시계의 문제를 극복하는, 애플워치의 특징이 가장 잘 나타나는 사례입니다. 그리고 아래에서 소개할 다른 워치 페이스에도 나타나는 특징이죠.

롤렉스 GMT 마스터 (파일럿 워치)

오메가 스피드 마스터가 레이서들을 위한 (지금은 우주 비행사를 위한 워치로 더 유명하지만) 레이싱 워치라면 롤렉스의 GMT 마스터는 파일럿 들을 위한 워치입니다.

인류가 그리 먼 거리를 이동할 필요가 없었던 시절에는 서로 간의 시간이 다른 것이 큰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그냥 한 마을에서 약속된 시간만 맞으면 되었으니까요. 하지만 기차가 발명되고 마을과 마을을 이동하고, 비행기가 발명되어 나라와 나라를, 대륙과 대륙를 이동하게 되면서 출발지와 도착지의 시간대가 어긋나기 시작했습니다. 출발지와 도착지의 시간대가 다르다는건 큰 문제였습니다. 특히 정확하게 운행해야하는 파일럿들에게 더욱 말이죠.

파일럿들은 시간대가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일이 매우 많습니다. 비행을 할 때마다 출발지의 시간에서 도착지의 시간으로 시계를 조정해줘야 하는데 이건 매우 번거로운 일이죠. 사실 정확도도 떨어지고 말이죠.

GMT 마스터는 그런 고충을 해결하기 위해 나온 시계로 하나의 시계에서 두 시간대의 시간을 동시에 알 수 있도록 고안된 시계입니다. GMT라는 이름도 과거 세계 표준시였던 그리니치 표준시(지금은 UTC가 표준시)의 약자에서 따온 이름입니다.

사용법은 간단합니다. 다이얼에는 네개의 바늘이 있는데, 그 중 초침이 아닌 바늘(아래 사진 기준으로 빨간색 화살표)을 기준으로 배젤을 돌려서 해당 국가의 시간을 맞춰줍니다. 이렇게 하면 해당 바늘이 가리키는 시간이 현지의 시간이 됩니다. 해당 바늘은 24시간 동안 일정하게 움직입니다.

이 사진에서는 배젤을 현지 시간과 똑같이 맞춰놨는데 현지 시간과 동일한 20시를 가르키고 있는걸 보실 수 있습니다.

시계 테두리에는 어두운 색과 밝은 색(또는 파란 색과 붉은 색)이 있는데, 이건 해당 국가의 낮과 밤을 구분하기 위한 기능입니다. 가끔 머리로는 외국이 밤이라는 걸 알고 있어도 여기가 낮이면 낮일거라고 착각하곤 하는데 이러한 부분을 직관적으로 구분할 수 있게 해둔 것입니다.

“두 개의 국가”의 시간을 알 수 있다는 특징은 파일럿 워치라는 특성에서 기인합니다. 딱 출발지와 도착지의 시간을 알 수 있게 만들어 놓은거죠. 파일럿이 아니더라도 여행자나, 혹은 소중한 사람이 먼 곳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활용 가치가 높은 시계입니다.

롤렉스의 GMT 마스터 시리즈는 애플워치에서 “GMT”라는 페이스로 계승되었습니다.(WatchOS 7에서 추가됨) 첫 눈에 봐도 GMT마스터에서 디자인을 따온 것처럼 보이죠.

GMT 페이스도 GMT 마스터와 동일하게 다른 국가의 시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시계 페이스를 한번 터치하면 전 세계 도시를 선택할 수 있는데, 용두를 돌려서 시간을 알고 싶은 도시를 선택하면 시계의 테두리가 알아서 회전합니다. 이렇게 도시를 선택하면 끝이죠.

이 페이스는 여러모로 GMT 마스터를 직접적으로 오마쥬했다는게 느껴지는데요, 시계 페이스의 색상 조합을 GMT 마스터에서 인기있었던 색상 조합인 빨간색 + 파란색(a.k.a 펩시), 빨간색 + 검은색(a.k.a 코카콜라), 파란색 + 검은색(a.k.a 배트맨) 조합을 그대로 선택할 수 있도록 되어있습니다.

GMT 페이스도 다른 애플워치의 페이스처럼 클래식 워치를 그대로 계승하면서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보완하고 있습니다. 시계 페이스를 보면 빨간 바늘이 위치해 있는 곳에 해당 국가의 시간을 좀 더 직관적으로 알 수 있도록 숫자를 표시해주고 있는 깜찍한(?) 부분이 있죠.

또 테두리의 낮과 밤 표시를 실제 일출 시간 / 일몰 시간을 반영해 좀 더 정확하게 보정해주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같은 나라라고 해도 계절에 따라 낮과 밤에 길이는 달라지기 마련인데, 낮과 밤이 고정되어있는 GMT 마스터와 달리 애플워치는 각 국가별 일출, 일몰 시간 데이터를 받아와 이를 보정해서 표시해줍니다. GMT 마스터보다 좀 더 정확하게 낮과 밤을 구분할 수 있죠.

아래 사진을 자세히 보면 고정적으로 12시간(6과 18)에 고정되어 일출과 일몰을 표현하는 GMT 마스터와 달리 아래 애플워치는 해당 국가의 일출과 일몰 시간을 반영해서 동절기로 인해 밤이 좀 더 길어져 있는걸 보실 수 있습니다.

캘리포니아 다이얼 워치

캘리포니아 다이얼 워치는 기원에 대한 설이 분분하지만 최초의 특허는 롤렉스에서 2차 세계 대전 중에 냈다고 합니다. 롤렉스의 대표적인 세가지 라인, 오이스터 퍼페츄얼(Oyster Perpetual), 서브마리너(Submariner), GMT 마스터(GMT Master)의 기원이 된 가장 오래된 시계 중 하나로 알려져있습니다.

이미지 출처 : Flickr

캘리포니아 워치는 2차 세계대전 당시 군인들에게 보급되던 시계였습니다. 전쟁 중인 군인들에게 무엇보다 중요했던 건 내구성과 가독성이었죠. 캘리포니아 워치는 기존 손목 시계에서 가독성을 향상 시키기 위해 고안되었습니다.

이미지 출처 : Wikipedia

12시 방향에는 역삼각형 모양이 있고 3시와 9시 라인을 기준으로 위에는 로마 숫자가, 아래에는 아라비아 숫자가 기재되어있습니다. 위에 있는 로마 숫자는 1, 2, 10, 11인데 로마 숫자 중에서도 비교적 간단하고 가장 특징적인 모양을 한 숫자들이죠.

그리고 아래에는 4, 5, 7, 8의 숫자가 아라비아 숫자로 기재되어있습니다. 로마자로 표현하면 IV, V, VII, VIII 인데 각각 모든 글자에 비슷하게 V가 들어가서 좀 헷갈리죠. 즉 헷갈릴만한 숫자들은 아라비아 숫자로 표현하고, 헷갈리지 않을만한 숫자들은 당시에 익숙한 로마 숫자 기준으로 표시해서 가독성을 높인 것입니다.

그리고 최초로 야광 도료를 발라서 밤에도 시간을 볼 수 있도록 한 시계이기도 합니다. 캘리포니아 워치는 그야말로 가독성을 높이기 위한 모든 수단이 동원되었던 시계라고 볼 수 있겠네요.

캘리포니아 워치가 왜 “캘리포니아”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는지는 유래만큼 설이 분분한데, 위키 백과에서는 캘리포니아에 있는 딜러들이 캘리포니아 다이얼 스타일이 적용된 롤렉스의 리퍼 제품을 많이 팔았기 때문에 “캘리포니아”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합니다.

애플워치는 캘리포니아 워치를 “캘리포니아”라는 페이스(WatchOS 6에서 추가)로 계승하고 있습니다. 캘리포니아 워치는 높은 가독성이 주 기능이었던만큼 애플워치의 캘리포니아 페이스도 큼지막하게 숫자를 표시하고 있어서 시간을 알기 쉽게 만들어 놓은게 특징입니다.

앞서 소개했던 페이스들과 달리 캘리포니아 페이스는 원래 유래했던 시계처럼 시간을 보는 것 외에는 추가적인 기능은 없습니다. 다만 에르메스 에디션에서나 보던 사각 페이스의 시계를 일반 애플워치에서도 쓸 수 있기 때문에 나름대로 인기가 있는 페이스입니다.

특히 캘리포니아 페이스에 달 컴플리케이션을 배치해놓으면 문 페이즈 워치가 됩니다. 문 페이즈 워치는 달의 모양을 시계 하단 등에 같이 표시해주는 시계들을 의미하는데 달의 모양을 기계식으로 반영하다보니 엄청 복잡하고 그만큼 고가를 자랑합니다.

모노그램 컴플리케이션과 달 컴플리케이션을 캘리포니아 페이스에 조합하면 좋아하는 브랜드의 문페이즈 워치 기분을 내볼 수도 있습니다.

롤렉스 서브마리너(다이버 워치)

롤렉스의 시계 중 가장 유명한 모델을 하나 꼽자면 서브마리너를 꼽을 수 있을겁니다. 서브마리너(Submariner)는 잠수함(submarine)에서 따온 이름처럼 다이버를 위한 시계, 즉 다이버 워치입니다.

다이버 워치는 제조사마다 조금씩 달라도 몇가지 공통적인 특징이 있습니다. 일단 방수는 기본이고, 깊은 수심에서도 견딜 수 있어야 하고, 잠수를 위해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측정하는 기능이 들어가야 합니다. 모두 다이버의 생존을 위해 필수적인 기능들이죠.

서브마리너는 배젤에 있는 눈금을 통해 경과된 시간을 측정할 수 있습니다. 배젤의 다이얼을 돌려서 역 삼각형의 모양을 현재 시각의 분침에 맞추면 됩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최초 위치에서 점점 분침이 멀어지게 되면 해당 시점으로부터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를 직관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아니면 분침보다 뒤로 돌려서 시계를 맞추기 전까지 물 속에 있었던 시간을 보정해줄 수도 있죠.

시계의 다이얼을 돌려서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측정이 가능합니다.

크로노그래프 워치도 보통 스탑워치 기능을 내장하고 있지만 다이버 워치는 “특정 시점으로부터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를 직관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이 크로노그래프와 가장 큰 차이점입니다. 잠수를 하는 다이버에게는 물 속에 얼마나 잠수해 있었는지 직관적으로 볼 수 있는게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죠.

물론 손목에 착용하는 다이빙 컴퓨터가 발달한 요즘에는 서브마리너를 실제로 다이버 워치 용도로 쓰는 사람들은 많지 않을겁니다. 현대에는 그냥 명품 시계에 더 가깝죠. 하지만 그럼에도 서브마리너 라인에는 다이버 워치의 전통을 살려 모두 이 카운트 기능이 기본적으로 탑재되어 있습니다.

애플워치는 다이버 워치의 이런 기능을 “카운트업”(WatchOS 7에서 추가됨)이라는 페이스로 계승하고 있습니다. 카운트업 페이스 서브마리너처럼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테두리를 통해 측정할 수 있도록 되어있습니다.

카운트업 페이스에서 시계 화면을 탭하면 테두리에 있는 역삼각형 모양이 현재 분침의 위치로 이동합니다. 이 상태에서 “시작”을 한번 더 탭해주면 타이머가 시작됩니다.

타이머가 시작된 후 시간이 경과하기 시작하면 최초 분침이 있던 위치에서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를 볼 수 있습니다. 이 부분의 눈금이 서브마리너의 베젤에 있던 눈금과 비슷하죠.

만약 시작하는 시점에 이미 시간이 어느정도 경과한 시점이라면 타이머를 시작하기 전 용두를 돌려서 시작 시점을 조정해줄 수 있습니다. 현재 시점보다 앞으로 돌리면 경과한 시간을 타이머에 반영할 수 있고, 뒤로 돌리면 이미 60분이 지난 시점부터 카운트를 할 수 있습니다.

다른 애플워치처럼 카운트업 페이스도 다이버 워치의 전통과 기능적인 부분을 계승하면서도 디지털에서만 가능한 방식으로 기존 시계의 기능을 보완했는데요, 바로 시계 상단에 디지털 방식의 타이머를 보여준다는 것 입니다.

아날로그 다이버 워치의 경우 시간이 얼마나 경과했는지 직관적으로 볼 수 있지만 바늘과 눈금으로만 측정해야하기 때문에 초 단위의 정밀한 측정이 안된다는 약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카운트업 페이스는 디지털 방식으로 0.1초까지 보여주므로 좀 더 정밀한 측정이 가능하죠.

디지털 방식이므로 60분 이상의 시간도 측정이 가능하다는 것도 개선된 부분입니다. 아날로그 다이버 워치의 경우 원형 배젤을 기반으로 시간을 측정해야하기 때문에 60분 이상의 시간을 측정하기는 아무래도 어렵죠.

하지만 애플워치는 기본적으로 다이버 워치가 될 수 없습니다. 서브마리너는 수심 100m까지도 버티는 방수 성능을 갖고 있지만 애플워치는 얕은 수면에서 밖에 쓸 수 없는데다 방수 성능도 상당히 제한적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최근에 나온 애플워치 울트라는 40m까지 잠수가 가능하고 최대 수심 100m 까지 방수되는데다 다이빙 컴퓨터도 앱으로 탑재하고 있기 때문에 좀 더 다이빙 워치에 걸맞게 되었습니다.

월드타임 워치

월드타임 워치는 GMT 마스터와 비슷하게 다른 국가의 시간대를 보기 위한 시계입니다. 다만 GMT 마스터가 최대 두개 국가의 시간만 동시에 표시할 수 있다면, 월드타임은 전 세계의 시간을 한번에 볼 수 있다는게 차이점이죠.

사진은 파텍 필립의 5131R-001 월드타임 워치(출처 : Wikipedia)

월드타임은 파텍 필립이나 바쉐론 콘스탄틴과 같은 브랜드에서 처음 나온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두 브랜드의 월드타임 워치 모두 루이 코티에라는 시계 장인이 만든 시계입니다.

월드타임 워치는 GMT 마스터처럼 여러 나라를 이동하는 여행자들을 위한 시계입니다. 전 세계의 모든 시간을 손목 한번 보는 것으로 알 수 있다는 매력이 있죠. 아무리 스마트폰 시대라도 당장 알래스카는 지금 몇시인지를 알아내려면 검색을 하거나 시리에게 물어봐야 하는 등 시간이 걸릴 수 밖에 없습니다. 월드타임 시계가 있다면 손목을 한번 보는 것만으로도 다른 나라의 시간을 빠르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월드타임 워치는 다이얼의 테두리에 전 세계 도시들이 각 나라의 시간대 별로 나열되어 있고 중앙에 숫자가 표시되어있는 회전판이 시간이 흘러가면서 이동합니다. 각 도시에 위치해 있는 숫자가 곧 그 도시의 시간대가 되는 방식입니다. GMT 마스터처럼 낮과 밤을 구분하기 위해 해와 달이 표시되어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월드타임 워치는 전 세계의 모든 시간을 표시하다보니 다이얼에 너무 정보가 많고 복잡해보인다는게 단점이지만, 매번 설정해줘야 하는 GMT 시계와 달리 모든 나라의 시간대가 미리 설정되어있다는게 장점입니다. 그리고 오히려 이런 복잡한 기계적인 매커니즘이 매력적인 시계입니다. 그리고 그 정교한 매커니즘 때문에 가격도 상당히 비싸죠.

월드타임 워치는 애플워치에서 “월드 타임”(WatchOS 8에서 추가)이라는 페이스로 계승하고 있습니다. 월드 타임 페이스는 이름도 월드타임 워치와 동일한데 거의 모든 특성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습니다.

애플워치의 월드타임 페이스도 지구본을 중심으로 전 세계 주요 도시들이 나열되어있고 중앙에 위치한 판의 숫자를 통해 각 도시의 시간대를 알 수 있는 구조로 되어있습니다. 가운데 지구본은 북반구를 위에선 본 모습인데 각 도시는 북반구 위치에 따라 표시되어있어서 좀 더 쉽게(?) 찾을 수 있도록 해두었습니다.(아마 남반구 국가에 있다면 남반구로 나오겠죠?)

월드타임 페이스의 지구본을 탭하면 북반구 위치에서 현재 내 위치의 시간대를 표시하는 위치로 이동하는 기능도 있지만 보여주기 기능 외에는 별로 의미는 없는 기능인 것 같습니다.

월드 타임 페이스는 애플워치로서는 드물게 월드타임 워치의 기계적인 특성과 모양까지 거의 그대로 따온 페이스입니다. 하지만 월드 타임 페이스도 디지털 방식으로 월드타임 워치의 기능을 보완하고 있는데요, GMT 페이스처럼 각 도시의 일출과 일몰 데이터를 반영하여 각 국의 낮과 밤을 좀 더 정확하게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각 나라의 낮과 밤은 계절에 따라 서로 길이가 다르기 때문에 낮과 밤의 시간이 12시간 간격으로 고정되어있는 아날로그 식 월드타임 워치는 낮과 밤을 표시하는데 오차가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애플워치는 각 도시들의 일출 시간과 일몰 데이터를 알고 있기 때문에 이를 반영해 낮과 밤을 정확하게 표시합니다.

또 가운데 지구본에서 어두운 부분과 밝은 부분을 표시 해가 비치는 범위를 통해 어느 나라가 지금 낮인지 밤인지를 직관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월드타임 워치 페이스의 지구본을 보고 있다보면 일상적으로 마주하는 낮과 밤도 좀 더 다르게 다가오는 느낌입니다.

미키마우스 워치

이번에 소개하는 시계는 전세계 최강의 캐릭터 미키 마우스를 모티브로 만든 워낙 유명한 미키마우스 시계입니다. 미키마우스 시계는 특정 한 브랜드가 아닌 여러 브랜드에서 월트 디즈니와의 라이센스 계약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현재도 다양한 제조사에서 출시되고 있습니다.

미키마우스 시계를 처음으로 만든 곳은 ‘잉거솔’이라는 미국 시계 브랜드입니다. 당시 경영난에 빠져있던 ‘잉거솔’은 시계가 잘 안팔리자 캐릭터와 콜라보하는 방식으로 돌파구를 마련해보고자 했습니다. 마침 당시는 월트 디즈니가 1928년에 만든 단편 애니메이션 <증기선 윌리>에서 미키 마우스가 처음 등장했던 시기였었죠. ‘잉거솔’은 월트 디즈니에게 미키 마우스를 시계에 그려서 팔아보겠다고 제안했습니다.

이렇게 1933년에 등장한 최초의 미키 마우스 시계는 세계 최초의 ‘캐릭터 상품’이 되었고 경영난으로부터 잉거솔을 구원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어쩌면 여러 브랜드에서 유행하고 있는 ‘콜라보’의 조상격인 시계가 아닐까 싶네요.

‘잉거솔’ 이후로 롤렉스나 구찌부터 비교적 저렴한 브랜드까지 디즈니와 라이센스 계약을 통해 미키 마우스 시계를 만들어왔습니다. 미키 마우스를 모티브로 한 다양한 시계가 있지만 디자인 자체는 모두 미키 마우스의 양 팔이 시간을 표시하는 방식으로 동일하다는 것도 재밌죠. 워낙 많다보니 미키 마우스 시계 자체가 손목 시계의 장르가 될 정도 입니다.

기계식, 쿼츠 등 구동 방식에 차이는 있지만 가운데에 미키 마우스가 그려져있고 두 팔이 시침과 분침의 역할을 한다는 것은 모든 미키 마우스 시계가 가지는 특징입니다. 물론 시대나 제조사에 따라 미키 마우스의 디자인이 살짝 달라지기도 합니다.(최근 제럴드 젠타에서 나온 시계는 미키가 축구를 하고 있는 방식으로 다르게 구현했습니다.)

귀여운 디자인 때문에 아동용 시계로 인식되기 쉽지만, 브랜드에 따라 웬만한 명품 시계 부럽지 않은 가격을 갖고 있고, 대부분 고가 브랜드에서는 한정판으로 출시되기 때문에 꽤 비싸다는 것도 특징입니다.

Rolex에서 출시된 미키마우스 워치

애플워치의 미키마우스 페이스 역시 클래식한 미키 마우스 시계에서 컨셉을 따왔으면서도 디지털 워치만 할 수 있는 방식으로 개선했는데요, 바로 애니메이션을 가미한 것입니다. 기계식 시계의 미키마우스와 달리 애플워치의 미키마우스는 “살아 움직입니다”. 초침 대신 1초에 한번씩 발을 까딱거리기도 하고 수시로 자세를 바꾸기도 하죠.

그리고 미키 마우스를 미니 마우스로 전환할 수 있다는 것도 기존 아날로그식 미키마우스 페이스에서는 찾기 힘든 특징입니다. 특히 여러 시계 브랜드에서 많이 출시되는 미키 마우스와 달리 미니 마우스는 거의 아동용 시계에서만 볼 수 있어서 미니 마우스의 팬들은 이런 부분이 매우 반가울 것 같습니다.

애플워치 미키마우스 페이스만의 또 다른 특이한 점은 미키마우스 페이스에서 시계 화면을 터치하면 미키마우스가 시간을 말해준다는 것입니다. 미키마우스의 목소리는 전담 미키마우스 성우인 강수진 성우의 목소리라서(미니 마우스 목소리는 미니 마우스 전담 성우인 안소이 성우) 정말 미키마우스가 손목 위에서 말을 건내고 있는 느낌이 듭니다.

아르데코 스타일 워치

아르데코 디자인 양식은 1930년대 ~ 1940년대에 출연한 시각 디자인 사조입니다. 아르데코 스타일은 1930년대 프랑스에서 처음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산업 혁명 이후 인류의 산업 문명이 혁신적으로 발달함에 따라 기계화된 대량 생산 방식에 적함하면서도 기존 전통적인 수공예 예술 양식을 절충한 디자인 양식으로 유명하죠.

아르데코 디자인 운동에 영향을 받은 아르데코 스타일 워치는 단순하고 심플한 다이얼에 빈티지한 타이포그래피와 기하학적인 굵은 선으로 가독성을 살린 매력이 가장 큰 특징입니다. 그리고 명확하게 좌우 대칭을 이루고 있어서 심플하고 깔끔하면서도 멋을 챙기는 것이 아르데코 스타일 시계의 특징입니다. 그리고 원형의 시계도 있지만 애플워치처럼 사각형 스타일의 시계도 있습니다.

애플워치에서는 타이포그래피와 메트로폴리탄 워치페이스가 아르데코 스타일의 워치를 계승한 페이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둘 다 전통적이고 단순한 시계 모양을 하고 있지만 대칭형태인 특징을 띄고 있고, 시계의 숫자 폰트가 특징적인 페이스들이죠.

타이포그래피 워치 페이스는 아르데코 스타일의 손목 시계에서 많이 보이는 로마 숫자와 아라비아 숫자 폰트를 사용하여 좌우 대칭으로 멋을 낸 페이스입니다. 특히 다이얼 디자인을 모든 숫자가 다 나오도록 변경하는 경우 사각형 스타일의 아르데코 스타일 시계와 상당히 비슷해보입니다.

타이포그래피 워치페이스

WatchOS 8에서 추가된 메트로폴리탄 워치도 아르데코 스타일의 워치페이스입니다. 타이포그래피가 사각형의 아르데코 스타일 워치를 모티브로한 디자인이라면 메트로폴리탄은 원형 스타일의 시계가 모티브라고 할 수 있죠.

메트로폴리탄 워치 페이스

기본적으로 원형의 페이스에 상단과 하단에 컴플리케이션을 배치해서 클래식한 스타일이면서도 스마트워치만의 세련된 인상을 풍기는 것이 아르데코 스타일의 디자인적인 부분 뿐 아니라 정신적인 부분까지 잘 계승한 워치페이스입니다.

다른 워치 페이스처럼 메트로폴리탄 워치페이스도 클래식 시계에는 없는 기능을 보완했는데 바로 크라운을 돌리면 시계 다이얼의 폰트를 바꿀 수 있다는 것입니다. 디지털 크라운을 돌리면 폰트가 길게 늘어나거나 가로로 넓어지는데 크라운을 돌리는 것만으로도 시계 페이스의 이미지를 세련되게 바꾸거나 빈티지한 인상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애플워치(1995)

애플워치의 가장 직접적인 모티브가 된 시계는 디자이너 마크 뉴슨의 Ikepod으로 알려져있지만, 그보다 훨씬 오래 전에 “애플워치”란 이름의 시계가 애플에서 출시된 적이 있었습니다. 바로 1995년 애플워치입니다. 사실 저도 이 글을 쓰면서 처음 알게된 시계입니다.

이게 바로 1995년 작 애플워치입니다.
(이미지 출처 : Business Insider)

불과 얼마전까지 애플의 맥 컴퓨터에서 쓰이던 운영체제의 이름은 맥OSX였습니다. OSX의 X가 “10”이라는 숫자를 나타낸다는 것 혹시 알고 계셨나요?(아이폰X 처럼 말이죠) 즉 맥OSX는 애플의 10번째 맥OS입니다. 맥OS는 거의 20년 동안 10 버전을 유지하다가 최근 Big Sur에 이르러 11로 버전이 업그레이드 되었습니다. Big Sur 이후 부터는 아이폰이나 아이패드처럼 메이저 버전이 올라가면 버전도 같이 올라가고 있죠.

왜 갑자기 시계 이야기를 하다가 맥OS 이야기를 하냐면 바로 1995년에 나온 애플워치는 맥OS 7.5 출시를 기념해 프로모션 용으로 만들어진 제품이기 때문입니다.

92년에 출시된 시스템 7.0을 개선해 나온 맥OS 7.5는 새로운 운영체제를 구매하는 소비자들에게 판촉용 옵션으로 Conflict Catcher 3과 함께 애플워치라는 이름의 손목 시계를 옵션으로 제공했는데 이게 바로 1995년 오리지널 애플워치입니다.

1995년의 애플워치 광고(사실 System 7.5(맥OS의 옛날 이름)의 광고죠)
(이미지 출처 : Hodinkee)

아, 혹시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 중에는 운영체제를 돈 주고 산다는 개념이 익숙하지 않으신 분들도 계시겠네요. 90년대와 2000년대의 컴퓨터 운영체제는 돈을 받고 업그레이드를 제공하는게 일반적이었습니다.(심지어 아이팟 터치의 iOS도 소정의 비용을 받고 업데이트했었습니다.) 보안 업데이트는 어떻게 받을까요? 인터넷에 연결하는 컴퓨터도 일반적이지 않던 시절에 보안 업데이트는 사치였죠. 대부분 운영체제가 제공하는 새로운 기능이나 향후 호환성 때문에 운영체제를 돈 주고 구매했습니다.(Direct X 9.0 돌리려고 윈도를 반강제로 업그레이드 했던 시절이 새삼 떠오르는군요..)

그 당시 맥OS 7.5를 구매한 고객들이 애플워치와 Conflict Catcher 3 중 어떤 옵션을 더 많이 선택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Conflict Catcher는 운영체제 시스템 환경 설정과 소프트웨어간 충돌성을 해결해주는 소프트웨어로서 그 당시 가격이 67달러였던 고가의 소프트웨어였습니다. 이 소프트웨어와 택일하도록 제공되었던 애플워치도 이 정도 가격으로 추정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995년의 애플워치는 판촉용 물건 답게 별 다른 기능이 없고 비교적 단순한 Quartz 방식의 시계입니다. 크로노그래프 시계처럼 파란색 테두리에 시간을 표시해놨지만 크로노그래프 기능은 없습니다. 구동 방식은 특이할건 없지만 그보다 디자인이 상당히 눈에 띕니다.

이미지 출처 : Hodinkee

그 당시 애플 컴퓨터의 로고였던 무지개색 사과 로고가 정 중앙에 있고, 시침, 분침, 초침은 각각 특이한 도형의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1990년대의 누구가가 “창의성”을 형상화하기 위해 부던히 애쓴 것 같이 생긴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현대 미술 작품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앞의 다른 클래식 시계와 달리 이 “애플 워치”는 이름 외에는 애플 워치에서 그 흔적을 전혀 찾아볼 수 없습니다. 마치 애플조차 흑역사로 여기는 것 같이요. 그렇게 생각해보면 이 글의 제목인 “애플워치가 오마쥬한 시계”로서 이 애플워치(1995)는 부적절할지도 모르겠네요.

이 애플워치와 맥OS 7.5의 운명은 그렇게 밝지 않았습니다. 출시 후 두 달만에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운영체제의 슈퍼스타인 윈도우 95가 출시되었기 때문이죠.

이후 애플은 스티브 잡스가 복귀하여 유닉스 기반의 맥OSX를 만들고 대대적으로 맥 컴퓨터 라인업을 정비하기 전까지 어둠의 길을 걷게 됩니다. 이 시계도 마치 당시 애플의 앞 길처럼 약간은 어두운 세기말 디자인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제 눈에는 꽤 이뻐보여요.

마무리

지금까지 애플워치가 오마쥬한 다양한 클래식 손목 시계들과 이런 시계들을 애플워치가 어떻게 디지털적으로 계승했는지 살펴봤습니다. 애플워치는 개발 단계부터 개발자들과 엔지니어들이 오랫동안 스위스의 손목 시계 비즈니스에 대해서 연구했다고 들었는데, 과연 오랫동안 분석하고 전통적인 시계의 여러 요소들을 녹이고자 노력한 흔적이 역력합니다.

저도 이번 글을 준비하면서 손목 시계에 대해서 여러가지로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시계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손목 시계, 특히 기계식 시계의 세계는 상당히 깊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그리고 수억원을 호가하는 비싼 시계일 수록 정확한 시간보다는, 그 안을 이루고 있는 기계 시스템의 정교함과 그에 걸맞는 스토리 = 헤리티지(Heritage)가 매력을 결정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헤리티지가 있고 없고에 따라 같은 라인이라도 가격 차이가 수천만원의 차이가 나버리기도 합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애플워치는 기계식 시계 애호가들에게는 매력이 많이 떨어지는 시계인게 사실입니다. 애플워치는 손목 시계의 분류상 디지털 워치에 해당하고 또 그에 걸맞는 스토리, 즉 헤리티지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애플도 애플워치 에디션이라는 이름으로 애플워치를 고급 명품 시계와 비슷한 가격에 팔고자 했었지만 그러한 시도는 실패했죠. 지금은 에르메스 버전 정도만 살아 남았군요.

하지만 앞에서도 살펴본 것처럼 애플워치의 헤리티지는 여러 스위스 시계 브랜드들이 만들어온 시계 그 자체입니다. 클래식 시계에 대한 존경과 빈틈없는 벤치마킹이 현재의 애플워치를 만들어냈습니다. 이런 부분은 다른 회사의 스마트워치에는 찾아보기 어려운, 진정한 헤리티지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톱니바퀴는 없지만, 애플워치에게는 현세대 최고의 엔지니어들이 만들어낸 정교한 프로세서와 소프트웨어가 있습니다. 어쩌면 바로 이 프로세서와 소프트웨어가 21세기 스마트 워치의 정교한 톱니바퀴는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

이번 글을 준비하면서 여러 손목 시계에 대해서 공부하게 되었고, 그만큼 뽐도 커졌습니다. 물론 구매할만한 돈이 있느냐는 전혀 다른 이야기지만 -_-;; 정말 아름다운 손목 시계도 많았습니다. 롤렉스의 GMT 마스터나, 오메가의 스피드 마스터(스누피 에디션!)는 확실히 로망이더군요.

하지만 어디까지나 진성 너드인 제 손목에 가장 잘 어울리는 시계는 역시 애플워치인 것 같습니다. 우주의 위성을 통해 시간을 보정하는 세상에서 가장 정확한 시계라는게 매력적이기도 하고, 여러 시계 화면을 취향대로 바꿔가며 쓸 수도 있는데다, 운동과 여러 건강 기능까지 제 삶을 천천히 바꿔놓고 있거든요. 아무래도 제 손목은 오랫동안 애플워치가 차지하고 있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