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팀OS에 대한 잡설

맥북 에어에 거실에 있는 52인치 TV로 HDMI 출력을 걸어놓고 엑스 박스 패드를 연결하여 포탈2를 하다보니 문득 스팀OS가 다시 생각났다. 리눅스 기반의 이 운영체제는 게임을 위해 최적화 되어있으며 일반적인 범용 운영체제라기보다 거실 환경에서 TV 등에 연결되는 PC를 위한 운영체제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사실 거실에서 노트북이나 데스크탑에 TV를 연결하여 PC 게임을 하는 것과 큰 차이는 없다.

등장 배경은 MS의 컨텐츠 시장 정복 야욕에 대항하여 윈도로부터 독립할 플랫폼을 독자적으로 구축하려는 의도와 스팀이라는 플랫폼을 거실로 진출시키려고 한 의도 두가지였을 것이다. 리눅스 기반이기 때문에 리눅스용으로 출시된 게임들을 전부 실행할 수 있고, 더불어 스팀OS 덕분에 리눅스 게임도 유례 없는 호황을 누리고 있다. 때문에 나는 스팀OS에 대해 여전히 긍정적인 입장이다.

다만 생각을 조금만 바꿔서 만약 내가 거실에서 스팀 게임을 할 생각으로 컴퓨터를 맞춘다면, 좋은 부품을 사용하여 맞춘 컴퓨터에 스팀OS를 설치할까? 아님 윈도를 설치할까? 나는 높은 확률로 윈도를 택할 것 같다. 게임에 있어서 윈도는 타이틀 수에서도 비교가 안될 정도인데다, 드라이버의 성능도 리눅스보다 훨씬 최적화 되어있다.

타이틀의 수나 성능은 스트리밍으로 해결할 수도 있지만 거실에 게임용 PC를 만들기 위해 또 다른 PC를 구축해야하는건 말이 안된다(…) 결국 게임만을 위한다면 나는 윈도 머신을 선택할 것 같다.

이렇게 지금 기준을 봤을 때 스팀OS에 가장 위협적인 것은 어쩌면 엑박이나 플스 같은 콘솔보다 스팀을 실행하며 거실에 연결되어있는 윈도PC일거 같다. 그리고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위에서 본 것처럼 드라이버(특히 그래픽 카드)의 성능 확보돠 타이틀 수 확보가 우선이 되어야 한다.

생태계 조성이라는건 생각보다 어렵다. 그나마 지금 밸브에게 희망을 걸 수 있는건 스팀이라는 훌륭한 기존 플랫폼이 있기 때문이다. 이 플랫폼을 무기로 갖고 있다면 가능성이 없지만은 않다.

예전에 비해 멀티플랫폼 개발 환경이 좋아진건 사실이지만 여전히 많은 게임 개발사에게 리눅스 개발 환경은 매우 어려울 수 있다. 이를 위해 SteamOS라는 단일 운영체제는 게임 최적화와 테스트 환경의 단일화라는 측면에서 도움이 될 수 있다.

밸브는 스팀 뿐 아니라 직접 게임을 만드는 개발사이기 때문에 기존 하드웨어 벤더들과의 협력 또한 기대해볼 수 있다. 특히 Nvidia는 지속적으로 스팀과 협력해오고 있기 때문에 리눅스용 드라이버의 게이밍 성능이 비약적으로 향상된 상태이다.(AMD Fxxk You)

만약 스팀이 타이틀 수의 부족 문제나 리눅스 드라이버의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면 거실 콘솔의 왕자 자리는 어렵지 않게 차지할 것이라고 본다. PC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은 여전히 매우 많고, 이들은 연쇄 할인마 스팀의 본모습을 알고 있다. 나 같아도 스팀 라이브러리에 있는 게임들을 활용하기 위해서라도 다른 콘솔보다는 스팀을 실행할 수 있는 콘솔을 우선적으로 택할 것이니까.

하지만 만약 스팀이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실패한다면 어떻게 될까? 그렇게 되면 스팀OS와 스팀 머신은 자체 게임 실행 능력보다 스트리밍을 강조하는 비교적 저사양을 갖춘 콘솔로서 인기를 끌 것 같다. 내 방에는 PC를 켜놓고 네트워크 스트리밍으로 거실에서 스팀 게임을 즐기는 것이다. 게임을 스트리밍으로 즐기는데는 그렇게 높은 사양이 필요하지 않다. 따라서 가격도 저렴하게 책정할 수 있다. 아마 크롬 캐스트나 애플 TV 정도의 가격으로도 가능하지 않을까? 아니면 좀 더 저렴하게 직접 부품을 조합해 조립할 수도 있다. 스트리밍을 중심으로 한다고 해도 내 방에서 즐기던 스팀을 그대로 거실로 가져온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게임 자체 실행’ 쪽 시나리오가 해결해야할 과제들을 봤을 때 이쪽이 지금 같아서는 가장 현실적인 시나리오로 보이긴 한다.

스팀OS와 스팀 머신은 현재 게임 자체 실행 + 스트리밍 두가지 방향의 실험을 모두 진행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스팀 머신의 가격도 400달러 ~ 5000달러로 매우 다양하게 구성되어 있다. 내가 보기엔 어느 방향이든 승산이 있다. 나는 그래서 스팀OS의 콘솔 진출 계획을 비교적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아마 내가 거실용 게임 콘솔을 산다고 하면 스팀머신이든 아니면 스팀을 실행하는 PC든 스팀과 관련된 콘솔을 사게 될 것 같다.(이래놓고 엑박원을 샀다는 포스팅이 올라올지도 모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