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기적인 관점에서 바라본 Apple Watch 사용기

저는 원래 손목 시계를 차지 않습니다. 습관도 안되어있고 손목에 무언가 감겨 있는 느낌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러다 언젠가 꽤 비싼 손목 시계를 선물 받았습니다. 그때 느낌으로는 정말 비쌌던 시계였던지라 부지런히 차고 다녔습니다. 급하게 나가다가 땅에 떨어뜨린 이후로 망가져 버렸지만(…)

어쨌든 그 때 이후로 손목 시계에 관심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옷을 제대로 사입어 본적이 손에 꼽을 정도로 패션과는 정말 거리가 멀지만 그래도 백화점 등에 가면 눈에 띄는 시계가 없나 한번 둘러볼 정도가 되었죠. 하지만 오토매틱이니 쿼츠니 스위스 쿼츠니 시계의 방식이나 정밀함을 추구할 정도는 아니고 그냥 적당한 가격에 이쁜 디자인의 시계에 관심이 쏠렸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스마트폰을 쓰다가 손목에 감겨 있는 이 시계가 좀 더 똑똑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쩌면 전화기보다도 나랑 밀접해 있는 기계인데 시간을 알려주는 역할보다  좀 더 다양한 일을 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던 즈음 스마트워치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만약 다음에 손목 시계를 산다면 반드시 스마트워치로 사야겠다고 생각했죠.

아이폰을 비롯해 애플 디바이스에 휘감겨 사는지라, 안드로이드 웨어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어차피 쓸 수도 없고 말이죠. 개인적으로 가장 관심이 갔던 제품은 페블이었는데 페블은 안타깝게도 한글을 지원하지 않았습니다. 비공식 펌웨어로는 지원하지만 신제품은 아직 한글 펌웨어가 나오지 않은 상태이기도 했죠.

그러고보니 남은 선택지는 애플워치 밖에 없었습니다. 네모난 형태의 페이스는 취향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스마트워치 중에 가장 나은 디자인을 갖고 있었고 가격 또한 독보적으로 비쌌습니다. 도저히 초기 출시 가격으로는 살 수 없을 것 같아 관심만 가고 있었는데 얼마전 애플의 3월 이벤트에서 6만원 정도가 내렸죠. 드디어 애플 워치를 영접할 때가 된 것이죠. 가격이 내리고 최후로 한 3일을(..) 더 고민을 해본 다음에 바로 질러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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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워치는 이렇게 긴 박스에 들어있습니다. 사실 패키징이 이렇게 길줄은 몰랐는데.. 애플워치 스포츠 모델이라 이렇습니다. 애플워치 같은 경우는 보석함 같은 케이스에 들어있죠. 애플워치 스포츠는 시계라기보다는 저가형 운동 밴드나 캐쥬얼 시계로 보는 느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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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산 모델은 스페이스 블랙 + 우븐 나일론 블랙 밴드 모델입니다. 이로서 아이패드도 검은색, 아이폰도 검은색, 시계도 검은색인 삼위일체를 완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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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븐 나일론 밴드는 이번 애플 이벤트에서 새로 발표된 시계줄입니다. 소재가 나일론인데다 천으로 되어있어서 실리콘 밴드보다 싸보이진 않을까 걱정했는데 기우였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실리콘 밴드보다 좀 더 시계 같은 느낌이어서 마음에 듭니다. 자세히 보면 4가지 색상의 나일론 실을 천처럼 엮어서 만들었습니다. 생각보다 고급스러우나, 천이기 때문에 물이 닿으면 젖는다는 문제가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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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 워치를 착용하면 이런 느낌입니다. 제 손목이 좀 얇은편이라 42mm 모델은 좀 커보이긴 하네요. 제품 자체의 마감은 훌륭한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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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전은 시계 뒷편의 마그네틱 포트로 무선 충전됩니다. 손목에 감겨 있는데다 땀도 나고 수분도 들어가고 하는 시계에 충전 포트가 열려 있어서 좋을건 하나도 없겠죠. 두꺼워지는데 일조하긴 했지만 이런 충전 방식은 꽤 똑똑한 방식인 것 같습니다.

애플워치를 받기 전만해도 전 흥분에 들떠있었습니다. 그날 하루가 행복할 정도였죠.(돈을 쓰는건 즐거운 일인거죠) 그런데 시계를 차고 이것저것 만져보면서 고민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도통 이 물건을 어떻게 봐야할지 혼란스러웠던겁니다.

이건 시계일까요? 전자제품일까요?

이 물건에 대한 리뷰를 써봐야겠다고 생각했을 때, 전 이것을 시계의 관점에서 봐야할지, 전자제품의 관점에서 봐야할지 꽤 고민했습니다. 실제로 애플워치에 대한 리뷰를 검색해보면 시계로서 본 사람도 있고, 전자제품으로 본 사람도 있습니다.

애플은 이 물건을 시계라고 생각하고 있고, 시계로서 팔려는 것 같지만 전 시계보다는 그나마 전자제품 쪽에 대해서 좀 더 많이 글을 썼죠. 이번에도 이 물건은 전자제품으로서 보는게 맞을 것 같습니다.

기억하시는 분들이 계실지 모르겠지만 전 예전에 한번 중국산 스마트워치에 대해 글을 썼던 적이 있었습니다. 6만원대에 그 자체로 전화기능까지 갖추고 있었던 그 시계와 비교해볼 때 애플 워치는 한 20년 후의 미래에서 온 제품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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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쿡은 애플워치를 발표하면서 “어디까지가 하드웨어이고 어디까지가 소프트웨어인지 알 수 없다”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그때는 그냥 애플의 특성을 추상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시계 화면을 보면 어디까지가 화면이고 어디까지가 배젤인지 알 수 없습니다.

시계의 배터리를 아끼기 위해 OLED를 탑재했기 때문에 실제로 화면에서 움직이는 부분만 색이 있고 나머지 검은 영역은 완전히 검기 때문에 배젤의 검은색과 화면이 구분되지 않는 것입니다. 예전 노키아의 Pure Black 디스플레이가 생각나네요. 검은 영역만 보자면 애플의 디바이스 중에 가장 검습니다

처음에 애플워치를 받아들고 시계 페이스를 바꾸지 못해서 매우 헤맸습니다. 아무리 옵션을 뒤져봐도, 아이폰에서 봐도 시계 화면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이 없었죠. 시계 화면을 조금 세게 눌러야 페이스를 바꾸는 부분이 나온다는 것은 나중에 인터넷을 검색해보고 알았습니다.

바로 아이폰6s에서는 3D 터치라는 이름으로 업그레이드된 Force Touch가 탑재되어있기 때문인데요. 화면을 세게 누르는 동작은 확실히 좁은 시계 화면에서 유용합니다. 별다른 인터페이스를 구현하지 않아도 되죠. 하지만 세게 눌러보기 전까지는 도대체 어디에 무슨 기능이 있는지 알 수 없다는 문제도 있습니다. Force Touch의 인식율은 괜찮았지만 터치 인터페이스에서 많이 쓰이는 롱터치 동작과 Force Touch가 대체 어떤 부분이 다른길래 넣은건지 전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전 보통 신제품을 사면 며칠을 집중적으로 갖고 놀고 만져보고 하는 편입니다. 그런데 애플워치는 처음에 세팅을 완료한 후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지 알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중국산 시계보다도 설정을 만져본 시간을 더 적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애플의 모든 제품이 그렇듯 초기에 웬만한 것들을 다 세팅해주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정말 갖고 놀게 없습니다. 이 제품의 진가는 누워서 이것저것 눌러볼 때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손목에 차고 있을 때 드러나기 때문이죠.

일주일 좀 넘게 차고다니니 이 제품의 주요 용도는 활동 추적 기능과 알림 받기 기능이라는 것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 이외의 용도로 쓰기에는 어색한 상황이 많이 연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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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추적 기능과 건강 관련 기능은 애플에서도 많이 강조했고 기기의 존재 이유라는 생각마저 듭니다. 손목에 항상 채워져 있고 사용자와 항상 밀착되어있는 기기이니 이보다 더 적합한 용도는 떠오르지 않습니다. 기기는 손목에 차고 있는 동안 수시로 심박수를 체크하고, 걸음수를 체크하고, 사용자가 서있는지 앉아있는지를 체크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건강 데이터를 빠짐없이 아이폰에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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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림 기능 또한 이 기기의 존재 이유입니다. 많은 스마트 워치들은 바로 이 알림 기능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스마트폰보다 시계 형태의 웨어러블이 사용자에게 알림을 전달하기가 좋습니다. 역시 항상 사람과 붙어있기 때문이죠. 애플워치의 탭틱 엔진에서 주는 진동은 상당히 기분 좋습니다. 아이폰처럼 알림을 보라고 드르륵하며 으르렁하지 않고 살짝 손목을 “건드립니다”. 이 느낌이 생각보다 좋습니다.

하지만 건강 기능은 Fitbit 같은 4분의 1도 안되는 가격의 제품으로도 충분히 체크할 수 있고, 알림 기능 또한 이렇게 비싼 기계로 받을 이유가 없습니다. 애플워치 덕에 스팸 문자와 메일을 놓치지 않고 받게 되었다는게 장점이라면 장점이겠네요. 하지만 이 제품은 “스마트”워치입니다. 무언가를 더 보여줘야 합니다. 그래서 앱을 설치해봤습니다. 아이폰처럼 애플워치에도 앱이 설치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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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목 시계로 트위터를 해보는 건 어떨까요? 키보드는 없지만 음성 인식이나 이모티콘으로 트윗을 올릴 수 있습니다. 또한 트윗을 보면서 리트윗이나 마음 표시 등을 할 수도 있죠. 시계 화면 옆에 있는 디지털 용두를 통해 트윗을 쉽게 스크롤 할 수 있습니다. 바로 옆에 아이폰이 있지만 시계로 하는게 뭔가 더 간지납니다. 애플워치는 트잉여를 위한 최고의 손목 시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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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에 앉아있다가 뭔가 궁금한 노래가 나오면 이렇게 Shazam 앱을 이용해서 음악을 즉석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역시 바로 옆에 아이폰이 있지만 시계로 하는게 뭔가 더 빠를 것만 같고 간지납니다.

뭔가 이상한 점을 느끼셨나요? 애플워치의 옆에는 항상 아이폰이 있어야 합니다. 애플워치의 스마트 기능은 거의 대부분 아이폰에서 데이터를 받아옵니다. 애플 워치에는 네트워크도 없고 GPS도 없습니다. 심지어 Shazam 앱에서 음악을 체크할 때도 아이폰에 있는 마이크를 사용합니다.

대부분의 데이터를 아이폰으로 받아오는데 그마저도 상당히 느립니다. 제 아이폰이 오래되서 느린 것일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평균적으로 3~4초 정도는 기본으로 걸립니다. 심한 경우는 10초가 걸려도 데이터가 표시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럴 경우엔 차라리 아이폰을 꺼내서 보는게 훨씬 빠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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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문제는 굳이 왜? 좁은 화면으로 앱을 사용하는가 입니다. 애플워치는 스마트하기 때문에 Flipboard나 뉴욕 타임즈 앱으로 기사를 볼 수 있지만, 왜 그렇게 봐야할까요? 주머니에 손만 뻗으면 아이폰이 있는데 말이죠. 4인치 아이폰도 좁다고 느껴지는데 좁은 시계 화면으로 봐야하는 이유는 더더욱 없습니다.

일주일동안 이것저것 만져보긴 했지만 앱 활용에 있어서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앱스토어에는 3,000개가 넘는 애플워치용 앱이 있다고 하지만, 대부분 뉴스를 좁은 화면에 보여주거나, 무언가를 원격 조작하거나, 타이머이거나, 조악한 게임이거나 길찾기 앱이거나 입니다. 이 유형을 벗어나는 앱은 거의 없고 제가 생각하기에도 현재 폼팩터에서 더이상 활용할만한 앱이 없을 것 같습니다.

현재 애플워치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이것입니다. 애플워치로 하는 모든 작업은 스마트폰으로 하는게 훨씬 빠르고 훨씬 쾌적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아이폰이 근처에 없으면 애플워치는 멍청해집니다.

사실 이건 애플워치 뿐 아니라 많은 스마트워치가 갖고 있는 문제입니다. 모든 면에서 훨씬 더 나은 스마트폰을 두고 시계를 사용할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시계에서 하는게 더 나은 작업들도 분명 있지만 이 가격이 그 작업들을 하는데 적당한 가격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떤 제품들은 스마트폰의 악세사리가 아니라 스마트폰을 아예 대체하려고 하기도 하지만, 스마트폰과 경쟁한다면 당연히 스마트폰에게 밀릴 수 밖에 없습니다. 굳이 왜 사야할까?라는 질문이 남게 되는 것이죠. 제가 스마트 워치 시장을 부정적으로 보는 이유도 그중 하나입니다.

애플워치를 이런 기기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절대 이 가격으로 주고 살만한 물건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스마트폰으로 알림도 거의 안오고 건강 체크 기능도 별로 중요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분명 돈낭비가 될 수 있습니다. 어디까지나 기기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말이죠.

덧. 많은 사람들에게 문제로 지적 받는 배터리 문제는 의외로 별로 신경쓰이지 않았습니다. 아이폰에 비하면 확실히 오래가고, 아이패드에 비교하자면 좀 짧지만 그래도 전혀 아쉽지 않았습니다. 다만 시계를 매일 충전하는 습관이 되어있지 않은 사람이라면 충전하는데 고생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