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제가 가장 이해할 수 없는 트렌드가 있다면 바로 Dumb 디바이스 시장입니다. Dumb 디바이스는 스마트 디바이스의 대척점에 있으면서 스마트폰 중독을 치료하기 위해 최소한의 기능을 갖추고 있는 폰이나 컴퓨터 등을 의미하죠.
이런 디바이스들은 사용자들의 힐링과 디지털 중독 치료를 위해 최소한의 기능만 갖추고 있습니다. 대부분 전자 잉크 디스플레이를 사용하고 기능은 집중할 수 있도록 하나의 본질적인 기능에만 충실한게 특징입니다. 전화기라면 전화만 되고, 글 쓰는 용도라면 글 쓰는 것만 가능합니다.
이 분야의 선구자 중 하나인 라이트폰에서 최근 3세대 제품이 새로 나왔습니다. 근데 이 3세대 제품이 좀 재밌습니다.
1세대 라이트폰은 딱 전화만 가능했습니다. 메시지도 보낼 수 없었죠.
그러더니 2세대는 전자잉크를 탑재하고 터치스크린이 추가되었습니다.
그러더니 이번에 출시한 3세대는 전자 잉크를 버리고 흑백 OLED 디스플레이를 탑재했습니다. 카메라는 5000만 화소 카메라를 탑재했다고 합니다.
전자잉크를 버리고 OLED로 간 이유는 전자잉크의 느린 반응 속도에 대한 고객 불만이 주요 이유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화면에도 있지만 이젠 전화 기능 외에 음악 기능이나 핫스팟, 카메라, 지도 등의 앱도 실행됩니다.
이쯤되니 묻고 싶습니다. 뭐하는거죠?
최초의 라이트폰은 기기의 본질에 집중했고, 점점 세대를 거듭할 수록 스마트폰을 닮아가고 있습니다. 물론 라이트폰 측의 말에 의하면 이러한 앱은 원하면 삭제할 수도 있다고 합니다만 지금 제 주머니에 들어있는 아이폰도 원하면 모든 앱을 삭제하고 기본앱만 쓸 수 있습니다. 스크린이나 카메라, 기본 성능이 더 뛰어난건 말할 것도 없죠.
가격은 더 어이없는데 사전 예약 가격은 399 달러(55만원), 정식 출시 가격은 799달러(110만원)입니다. 훨씬 성능이 좋은 아이폰 SE 가격이 65만원입니다.
이런 디바이스는 더 있습니다. 바로 Daylight 라는 태블릿PC입니다.
Daylight는 조금 더 특이한데, 전자 잉크 디스플레이라면서도 상당히 빠른 입력 속도를 갖고 있습니다. 전자책을 보거나, 키보드를 연결해서 글을 쓰거나, 스타일러스로 필기를 하거나 하는 등 아이패드에서 하는 일을 똑같이 할 수 있습니다. 제조사에서는 사용자가 진정으로 집중할 수 있게 해주고, 사용자를 진정으로 생각하는 유일한 컴퓨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제품의 가격도 꽤 흥미로운데, 파운더스 에디션의 가격이 729달러(100만원)입니다. 가성비 떨어진다고 욕 먹는 아이패드가 53만원, 아이패드 에어가 90만원인걸 생각해보면 더욱 흥미로운 가격이죠. 근데 이것도 없어서 못 팝니다. 이 시점에 모든 사전 예약이 다 품절이거든요.
이런 Dumb 디바이스를 만드는 제조사를 보면 마치 람보르기니를 앞에 두고 자동차는 해로우니 바퀴부터 다시 만들어보자고 말하는 느낌입니다. 이미 완성형의 디바이스를 더욱 저렴한 가격에 살 수 있는데 불구하고 기존의 완성형 기기가 해롭다고 비난하면서 점점 세대를 거듭해갈 수록 그들을 닮아가고 있죠.
물론 이러한 노력이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람보르기니가 있어도 바퀴부터 다시 만들면서 마차도 만들어보고, 포드-T 같은 자동차도 만들다보면, 우리는 자동차라는 물건의 본질적인 가치를 다시 찾을 수 있습니다. 아마 사람들이 이런 물건을 좋아하는 것도 “본질”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일겁니다.
하지만 이러한 Dumb 디바이스들이 사람들의 착각을 먹고 살고 있다는 것은 문제가 됩니다. 스마트폰 중독으로 고생하고 있는 사람이 라이트폰을 구매하면 스마트폰 중독을 고칠 수 있을까요? 집중해야하는데 컴퓨터의 다른 기능 때문에 글을 못 쓰는 작가가 Daylight를 구매하면 글을 갑자기 잘 쓸 수 있을까요?
아마 라이트폰을 구매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능의 부족으로 인해 스마트폰으로 돌아가거나, 제조사에 기능을 추가해달라고 요구할겁니다.(이미 그랬구요) Daylight도 마찬가지일겁니다. 아이패드조차 컴퓨터를 대체하지 못한다고 욕 먹는 마당에 Daylight가 컴퓨터를 대체할 수 있을까요?
왜 사람들은 집중력의 부족과 중독 문제를 스마트폰이나 컴퓨터의 탓을 하면서 또 다른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를 사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할까요? 그것도 더 기능이 부족한 버전을 훨씬 비싼 가격에 말이죠.
만약 여러분이 스마트폰 중독으로 고생하고 계신다면, 라이트폰을 구매할 돈으로 전문적인 상담을 받아보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아마 라이트폰을 구매하는 것보다 10배는 더 좋은 효과를 거두실 수 있을 겁니다. 컴퓨터의 기능 때문에 글이 잘 안써진다면, Wifi를 꺼보세요. 장담하는데 100만원짜리 전자 잉크 태블릿PC보다 훨씬 쾌적하게 쓰실 수 있을겁니다.
스마트 디바이스의 여러 기능으로 고통 받고 계신다면, 지금 여러분의 주머니에 있는 장치는 여러분을 도울 수 있는 많은 기능이 들어있습니다. 이런 기능을 적극적으로 사용하신다면, 굳이 이런 멍청한 디바이스들을 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