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패드 프로 3세대 리뷰 : PC와 조금은 다른 “컴퓨터”


제 첫 애플 제품은 맥북에어였습니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그야말로 홧김에 질렀죠. 맥북으로 뭘하겠다는 확신이 있던 것도 아니고 딱히 맥북이 필요했던 상황도 아니었습니다. 그냥 말 그대로 “질렀던” 셈입니다. 금액이 금액인지라 명동 프리스비에 가서 들고 온 다음에도 확신을 하지 못해 그날은 뜯지 못하고 고민하다가(리셀러는 개봉 후 반품이 불가능하므로) 크리스마스 아침에야 포장을 뜯었던 기억이 납니다. 자신을 위한 크리스마스 선물이었던 셈이죠.

그로부터 8년이 지난 이번 크리스마스 시즌에도 자신을 위한 크리스마스 선물을 준비하며 맥북에어 때와 비슷한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아이패드 프로 3세대를 사면서부터입니다. 맥북을 아이패드 프로로 대체할 준비를 하면서도 이게 과연 맞는 일인지, 아이패드 프로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은 계속 되고 있습니다. 사놓고 이런 고민을 하는 것도 웃긴 일이죠.
언젠가 아이패드 프로를 쓰는 친구를 보면서 이런 이야기를 한적이 있었습니다. “아이패드 프로는 너한테 잘 어울려. 하지만 역시 나 같은 사람은 맥북이 더 낫지.” 이 때 말했던 “나 같은 사람”이란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아이패드를 꽤 좋아하는 저로서도 아이패드는 절대 맥북을 대체할 수 없는 그런 디바이스이며, ‘내가 하던 일은 절대로 아이패드 같은 장난감으로는 대체할 수 없다’는 생각에 추가로 묘한 잘난척이 깔려있는 이야기였습니다.
하지만 아이패드 프로 3세대를 쓰고 있는 지금은 오히려 맥북이어야만 했던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습니다. 아이패드 프로는 제가 맥북 에어로 하고 있던 일들을 충분히 해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건 아이패드 프로가 발전한 탓보다는 제 컴퓨터 사용 패턴이 예전에 비해 많이 변한 탓도 있을겁니다. 제 컴퓨터 사용 패턴에 아이맥이 들어오면서 더이상 맥북에어를 잘 켜지 않게 된 부분도 있죠.
긴 고민 끝에 저는 기존에 사용하던 맥북에어를 처분하고 아이패드 프로를 선택했습니다. 이건 “아이패드 프로가 맥북을 대체”했다고 하기보다는 저한테 “최강의 아이패드가 필요”했기 때문이 맞을 것 같습니다. 아이패드 프로는 아이패드가 필요한 작업에서는 맥북보다 훨씬 뛰어난 퍼포먼스를 보여줍니다. 이번 아이패드 프로 리뷰에서는 아이패드의 장점과 함께 아이패드가 맥북을 대체할 수 있는지에 대한 부분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제가 구매한 모델은 11인치 스페이스 그레이 모델입니다. 일반적으로 애플은 출시일에 맞춰서 주문을 받은 다음 배송하는데 이번엔 특이하게도 공식 출시일보다 이틀먼저 주문 페이지가 열렸죠. 덕분에 공식 출시일에 받아보는 신기한 일을 경험했습니다.


아이패드 프로의 구성은 완전 심플합니다. 본체와 상단에 보이는 충전기, 케이블 그리고 아무도 읽어보지 않는 설명서가 끝이죠. 애플의 포장은 해가 갈수록 심플해지고 있다지만 이번은 더욱 심플합니다. 노트북 가격의 “컴퓨터”를 팔면서 구성품은 단촐하기 그지 없습니다. 당연히도(?) 키보드와 애플펜슬은 별매입니다.


아이패드 프로 11인치는 아이패드 미니와 비교해봤을 때 크기 차이가 얼마 나지 않는 것 같습니다. 크기는 거의 달라지지 않고 화면만 커졌기 때문이죠.


아이패드 프로 11인치와 비슷한 화면 크기인 맥북에어 11인치와 비교해봤습니다. 인치 자체는 맥북에어가 11.6인치로 좀 더 크지만 화면비율 때문에 실제 면적은 아이패드 프로가 좀 더 큽니다. 물론 베젤은.. 맥북에어의 광활한 베젤과는 비교가 안됩니다.

아이패드 프로 12.9인치(2세대)와 화면비교입니다. 면적으로 보나 화면 크기로보나 아이패드 프로 11인치가 훨씬 작습니다. 물론 그만큼 무게가 가볍다는 장점이 있죠. 참고로 12.9인치 모델은 전세대와 화면 크기는 같은데 화면 크기를 줄여놓았습니다.

이번 아이패드 프로의 가장 큰 특징은 전면이 모두 화면이라는 점입니다. 아이폰X처럼 전면에 베젤을 최소화하고 홈버튼마저 날려버린 디자인이죠. 베젤이 없다곤 하지만 아이폰

X처럼 테두리까지 몰아친 베젤리스는 아닙니다. 모던 맥북 수준의 좁은 베젤 테두리가 있습니다. 그 덕분에 아이폰X의 노치 디자인과 달리 전면 카메라와 페이스타임 카메라가 자연스럽게 가려집니다.

디자인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이라면 바로 완전히 새로워진 마감입니다. 예전 아이패드 들은 끝이 유선형의 디자인으로 마감되었었는데 이번 아이패드는 직각으로 떨어집니다. 아이폰4에 많이 비유되곤 하는데, 제 생각엔 맥북 프로의 하판과 좀 더 비슷해 보입니다. 특히 스페이스 그레이 마감은 맥북 프로의 스페이스 그레이랑 색도 같아서 더더욱 그런 느낌을 줍니다.

이번 아이패드 프로는 정말 얇습니다. 아이패드 미니 4(6.1mm)도 얇다고 생각하고 쓰고 있었는데 아이패드 프로 3세대는 그보다 더 얇은 5.9mm입니다. 너무 얇아서 휘어지진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아니나 다를까 요즘 벤딩 게이트로 핫하죠. 애플은 제조공정에서는 휘어진채로 배송될 수 있지만(…) 사용하면서 휘지는 않을거라고 했는데 어떨지는 좀 더 두고봐야겠습니다.

이번 아이패드 프로는 USB-C를 탑재하고 있습니다. 라이트닝 포트를 버리고 iOS 기기가 USB 표준 규격을 탑재하다니 놀랄 일이죠. 맥북 제품군은 이미 USB-C를 탑재하고 있으니 애플은 어지간히도 아이패드가 컴퓨터라고 주장하고 싶은 것 같습니다. USB-C의 장점은 악세사리 비용의 절감입니다. 예전에는 아이패드 프로에서 악세사리를 쓰려면 이미 갖고 있는 악세사리의 라이트닝 버전을 추가로 구매해야했지만 USB-C 악세사리는 수 없이 많습니다. 사진처럼 다이소에서 파는 2천원짜리 USB-C to USB-A 젠더로도 충분히 아이폰을 연결하여 충전할 수 있죠.

아이패드 프로는 홈버튼이 없어서 터치 아이디가 없습니다. 다만 페이스 아이디가 있죠. 페이스 아이디는 여러모로 제약 조건이 많아서 별로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이패드랑은 꽤 잘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터치아이디는 스마트 커버를 열고 지문인식을 별도로 해줘야했지만 페이스 아이디는 커버를 열자마자 바로 잠금이 해제되버립니다. 아이패드에 탑재된 페이스 아이디는 가로 세로 방향도 가리지 않으니 책상에서도 스페이스를 두번 누르면 자동으로 잠금이 해제되버립니다. 이 정도 사용성이라면 맥북이나 아이맥에 탑재되도 좋을 것 같습니다.

물론 이런 것이 가능해진건 덤이죠.


아이패드 프로의 구성품은 앞에서도 보셨지만 상당히 단촐합니다. 아이패드 프로와 이제 떨어지면 아쉬운 애플펜슬과 스마트키보드는 놀랍게도 별매입니다.

별매인 이유는 마진쿡(…)이 아니라 아이패드를 용도에 맞게 쓸 수 있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어떤 사람은 본체에 커버만으로 충분할 수 있고 어떤 사람은 키보드만, 어떤 사람은 펜슬만 필요할 수 있겠죠. 용도에 맞는 악세사리만 사도록 해서 쓰지도 않을 악세사리에 불필요한 비용을 지불하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물론 그럼에도 악세사리 자체가 쓸데없이 비싸다면 무슨 소용인가 싶습니다만..)

스마트 키보드 폴리오는 제가 이번 아이패드 프로를 산 가장 직접적인 이유입니다. 아이패드 미니에서 키보드를 쓰기 시작하면서 쉽게 탈착할 수 있는 키보드가 절실했는데 서드파티 키보드들은 이 기준을 깔끔하게 만족시키는 키보드가 없었습니다. 스마트 키보드는 애초에 탈착을 고려하고 만든 악세사리인만큼 정말 마음에 듭니다.

이번 스마트 키보드 폴리오는 커넥터가 아이패드 프로 뒷면과 연결되도록 되어있습니다. 뒷면의 커넥터를 보고 세로 화면으로 타이핑하는 아이패드 프로 루머가 나오기도 했었죠. 지금 생각해보면 참 미친 루머였습니다만..

덮은 모습은 깔끔합니다. 2세대의 복잡한 종이접기 같은 구조가 사라진 덕분에 앞면이 완전 깔끔해졌습니다.(심심할 정도..) 뒷면도 보호되는 키보드라 전세대와 달리 뒷면도 존재하는데요, 뒷면을 보호해주는 것의 가장 큰 장점은 카툭튀를 저렇게 감싸준 다는 것입니다. 덕분에 바닥에 놔도 평평함을 유지합니다. 하지만 이 케이스를 든 상태로는 키보드를 내려뜨리지 않고서는 카메라를 찍을 수 없기 때문에 카툭튀 방지 외에는 왜 카메라 구멍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스마트 키보드 폴리오를 결합하면 이렇게 노트북 같은 외관이 됩니다.


이번 스마트 키보드 폴리오에서 마음에 안드는 점은 바로 이 부분입니다. 전세대의 스마트 키보드는 이렇게

뒤로 접은 상태에서 키보드를 깔끔하게 숨길 수 있었지만 이번 스마트 키보드 폴리오는 저렇게 키보드가 뒤로 오도록 접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뒤에 계속 키가 눌립니다. 물론 저 상태에서는 키 입력이 안되긴 하지만 그립감에는 방해 받습니다. 대신 2세대 키보드에 비해 접는 구조가 훨씬 쉬워진 장점이 있습니다만..

그리고 11인치 아이패드 프로의 스마트 키보드 크기는 매직키보드보다 작습니다. 전체적인 기기 크기 차이 때문에 매직키보드와 맥북에어 11인치의 키 크기는 비슷하지만 아이패드 프로 11인치 키보드는 꽤 작습니다. 적응이 좀 필요한 크기이고 오랜 시간 타이핑시 피로가 올 수 있는 구조입니다.

각도가 두가지 각도로 지원되기 때문에 타이핑에 적합한 130도 각도와 동영상과 (컨트롤러를 사용한) 게임 에 적합한 110도 각도 두가지로 나눠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애플펜슬은 구매를 끝까지 망설였었습니다만, 회사에서 팀장님이 회의 자료에 필기를 해가면서 설명하는 모습을 보면서 비슷하게 사용할 수 있지 않을까해서 걍 질렀습니다.

그림에서도 보이는 것처럼 전 글씨도 그림도 못그리기 때문에 애플펜슬은 괜히 샀는가하는 후회가 들고 있습니다.

이번 세대 애플 펜슬은 전체적인 마감이 무광입니다. 그리고 완전히 동그랗지 않고 일부분이 각져있죠. 전세대는 볼펜 같았다면 이번 애플 펜슬은 정말 연필 같습니다. 어떻게보면 플라스틱 쪼가리(…) 같아져서 뭔가 예전 노트북에 쓰던 플라스틱 스타일러스 같기도 합니다.

전세대 애플펜슬과 비교해보면 길이가 좀 더 짧아졌습니다. 무게 자체는 차이가 체감되지 않지만 길이는 꽤 체감됩니다. 전 짧아진 지금이 더 마음에 드는 것 같습니다.

각진 부분은 아이패드와 자석으로 결합하는 부분입니다. 아이패드도 각진 디자인으로 바뀌었기 때문에 저 평평한 부분에 찰칵하고 결합합니다. 이번 애플 펜슬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입니다. 전 세대 애플 펜슬은 아이패드랑 같이 휴대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별도 악세사리로 부착해놓지 않으면 잊어버리기 일수였죠. 이젠 저렇게 자석으로 부착해서 휴대하면 됩니다. 자석 결합도는 강해서 웬만해서 떨어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단순히 휴대용으로 붙는게 아니라 붙는 즉시 무선 충전도 됩니다. 예전에 아이패드의 라이트닝 포트에 꽂아서 부채꼴 모양으로 충전했던 모습은 이제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사실 원래 이랬어야 했던 것처럼 자연스럽습니다. 스마트 키보드 폴리오도 그렇고 애플펜슬도 그렇고 자석 장인 애플이 다시 돌아온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제 경우는 애플펜슬은 거의 안쓰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림이랑은 전혀 연관이 없다보니 아직까지 크게 활용도를 못 찾고 있습니다. 위에서도 말했듯 애플이 악세사리를 별도로 판매하고 있는 이유는 다 사라는게 아니라 용도에 맞게 사라는 의미일겁니다. 저처럼 목적 없이 풀세트를 갖추기보다(- _-;;) 악세사리는 용도에 맞게 현명하게 구비하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제가 보름 동안 아이패드 프로를 써보면서 느낀 아이패드 프로의 장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가성비

사실 가성비라는 단어는 아이패드 프로랑 가장 안 어울리는 단어라고 생각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이패드 프로는 본체만해도 노트북의 가격인데 여기에 애플펜슬이나 스마트 키보드 등의 악세사리를 더하면 거의 맥북 급의 가격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전 아이패드 프로는 가성비 측면에서 밸런스가 꽤 잘 잡힌 컴퓨터라고 생각합니다.
맥북에어의 신봉자였던 제가 이번에 새로 나온 맥북에어를 선택하지 않은 이유는 사실 맥북에어 특유의 좋은 밸런스가 무너졌기 때문입니다. 무려 10년이나 이어져온 맥북 에어의 별명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노트북(The notebook people love)였습니다. 그리고 그 인기의 원천은 바로 가성비였죠. 맥북에어는 적당한 성능에 좋은 디자인, 그리고 (맥북 치고) 저렴한 가격 덕분에 많은 인기를 끌었습니다.
이번 맥북에어도 이런 맥북에어의 인기를 끌고가고자 밸런스 부분에 신경을 많이 쓴 것이 티가 납니다. 하지만 그 밸런스라는 것이 어쩐지 조금 어정쩡 합니다. 인텔 8세대 CPU를 탑재하여 성능의 향상이 있었지만 전세대에 대비하여 그렇게 큰 폭의 성능 향상이 있지는 않았고, 무게도 크게 가벼워지진 않았습니다. 레티나 디스플레이가 탑재되었지만 최신 디스플레이 기술인 트루톤 등의 적용은 제외되었죠. 그에 비해 가격은 맥북이나 맥북 프로 부럽지 않게 비싸졌습니다. 최저 가격이 159만원이니까요. 같은 구성에 가격이 129만원 ~ 139만원 정도였다면 정말 완벽한 밸런스였을 텐데.. 제가 너무 많은걸 바라는 걸까요?
그에 비해 아이패드 프로는 맥북에어에 비해 여러가지 애플의 신기술이 집약되있습니다. 일단 디스플레이만 해도 당연히 레티나인데다 120Hz의 주사율과 트루톤 디스플레이가 탑재되어 있어 맥북에어보다 좋은 디스플레이를 탑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애플이 밀고 있는 최신 보안 방식인 페이스 ID를 탑재하고 있습니다. 그에 비해 맥북은 아이폰이나 아이패드에서 서서히 사라져가고 있는 터치아이디를 탑재하고 있습니다. 여러모로 애플의 최신 기술은 맥북보다는 아이패드에 먼저 탑재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컴퓨팅 성능은 애플이 밝힌 바에 의하면 92%의 랩탑보다 빠르다고 했는데 이 92%의 랩탑에는 맥북들도 포함됩니다. 아이패드 프로는 긱벤치상 맥북 프로를 제외한 다른 맥북보다 훨씬 빠른 속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거의 맥북 프로급의 성능을 보여주지만 아이패드 프로는 맥북 프로의 절반 가격 정도 밖에 안됩니다. 실제로 같은 작업을 해보면 기존에 사용하던 맥북 에어나 심지어 아이맥(!)보다도 쾌적한 성능을 보여줍니다.


팬도 없는 컴퓨터에서 이런 그래픽의 게임이 실행되는걸 보면 정말 감동적입니다.

맥북 프로급의 성능과 최신 기술을 탑재한 컴퓨터가 팬도 없고 무게도 절반 이상 가벼운데 가격까지 맥북 프로의 절반 정도 밖에 하지 않는다면 이 컴퓨터는 누구나 가성비가 좋은 컴퓨터라고 생각할겁니다. 아이패드라는 점을 빼고 순수하게 컴퓨터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아이패드 프로는 역대급의 가성비를 갖추고 있습니다. 키보드와 애플펜슬 같은 악세사리들을 더한다고 해도 말이죠.


워라밸(Working Life Balance)

컴퓨터를 순수하게 일하거나 업무하는데 사용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요? 최근엔 컴퓨터로 즐길 수 있는 컨텐츠가 너무도 많기 때문에 컴퓨터로 노는 것은 일상적인 일이 되었습니다. 아이패드는 워낙 컨텐츠를 소비하는데 있어서 가장 뛰어난 기기 중 하나였고, 아이패드 프로는 여기에 생산성을 더해 워라밸을 잡아냈습니다.
물론 일반적인 노트북도 업무와 동시에 놀 수 있습니다. 맥북 프로는 훌륭한 생산용 컴퓨터이긴 하지만 동시에 뛰어난 넷플릭스 머신이죠. 또 드물지만 맥에서 실행되는 PC 게임을 실행할 수도 있습니다. 동영상과 게임 등에서는 노트북 컴퓨터도 훌륭하게 컨텐츠를 소비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컨텐츠를 침대 위에서 누워서 즐긴다면 어떻게 될까요? 만약 게임, 동영상 외에 만화책을 비롯한 전자책을 소비한다면? 노트북은 일할 때뿐 아니라 놀 때도 특정한 자세와 위치(주로 무릎 또는 책상 위)에서만 가능하지만 아이패드는 자세와 장소의 제약을 받지 않습니다. 침대에 누워서 전자책을 보거나 침대에 누워서 게임을 하거나 침대에 누워서 동영상을 보거나….잠깐, 근데 왜 다 눕는거지? 아무튼 아이패드가 가진 유연성 덕분에 다른 컴퓨터와는 차원이 다르게 놀 수 있습니다.
워라밸은 최근의 개인적인 사용 패턴과 밀접하게 관계가 있습니다. 예전 테크 잉여 시절에는 일은 거의 맥북으로만 했지만 지금은 일은 회사에서 하고 퇴근 후엔 대부분 컴퓨터를 끼고 놀고 있습니다. 맥북은 이런 사용 패턴에서는 상당히 제한적일 수 밖에 없죠. 아이패드 프로를 끼고 놀고 있는 지금은 맥북보다 이런 목적에 더 알맞아 만족스럽게 사용하고 있습니다.

신경쓸게 전혀 없는 컴퓨팅 환경


전 개인적으로 컴퓨터 운영체제란 그 존재감이 커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사용자가 컴퓨터 시스템 자체의 유지보수에 신경을 쓰지 않게 하고 그저 용도대로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운영체제의 궁극적인 목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전 맥OS(구 OSX)를 좋아합니다. 맥OS를 쓰면서 제가 컴퓨터로 별다른 일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죠. 윈도를 쓰던 시절에는 온갖 바이러스와 악성코드들로부터 보호하기 바빴죠. 우분투는 바이러스나 악성코드 같은 외부적 위협으로부터는 안전했지만 드라이버 지원 등이 완벽하진 않아 운영체제를 돌아가게 하기 위한 온갖 삽질을 해야했습니다.(그땐 그마저도 즐거웠지만요)
하지만 맥OS를 쓰면서부터는 그런 시스템 자체를 돌아가게 하는데 들어가는 노력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 때문에 오히려 심심할 지경이었죠. 오히려 컴퓨터를 사용하는 목적이나 용도 자체에 집중하게 되어 많은 시간과 자원을 절약할 수 있었습니다.
아이패드에서 실행되는 iOS는 맥OS 보다도 더 신경쓸 것이 없습니다. 맥OS가 신경쓸게 별로 없다고 해도 그 근본은 PC 운영체제이기 때문에 여러모로 신경쓸 것들이 조금은 있는 편입니다. 특히 최근에는 맥키퍼(Mackeeper) 등의 악성코드도 늘어나면서 예전보다는 신경쓸 것들이 조금은 많아졌죠. 하지만 스마트폰과 동일한 운영체제인 iOS는 여러가지 제한된 환경 덕분에 컴퓨터를 사용하는데 있어서 정말 아무것도 신경쓸게 없습니다. 바이러스나 악성코드도 워낙 생태계가 제한 되어있어 전무하죠. 심지어 앱을 깔았다가 삭제했다가 해도 전혀 속도에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이런 iOS의 특성 덕분에 사용자는 아이패드 프로를 사용하면서 컴퓨터를 쓰는 목적 이외의 것들을 전혀 신경 쓰지 않게하여 본래 목적에 집중할 수 있습니다. 물론 iOS 덕분에 사용성에 많은 제약이 있는 것도 사실이긴 하지만 말이죠. 위에 아이패드 프로를 쓰던 친구에게 아이패드가 어울린다고 했던 이유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컴퓨터 자체에 지식이 없는 사람들도 아이패드는 아무 무리 없이 사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패드 프로가 당장 모든 사람들의 책상에서 노트북을 치우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만약 아이패드 프로를 구매함으로서 노트북을 “교체(Replace)”한다는 생각을 갖고 계신다면 전 다음의 이유 때문에 말리고 싶습니다.


iOS

만약 아이패드 프로로 노트북을 대체하려고 한다면 운영체제를 주의하는게 좋습니다. iOS는 아이패드 프로가 가진 장점이자 가장 큰 단점 중에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는 유명한 통제광(Control freaks)이었다고 합니다. 뭐든지 자기 손으로 다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었다고 하죠. 지금은 팀 쿡의 영향으로 생산을 중국에 외주하고 있지만 애플은 전통적으로 컴퓨터를 스스로 생산설비를 갖춰서 직접 생산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통제광적인 성격은 소프트웨어에도 영향을 미쳐서 맥OS나 iOS는 애플이 아닌 다른 회사에서 만든 하드웨어에 설치되지 않습니다. 그 뿐 아니라 iOS는 한술 더 떠 앱도 애플이 승인한 것 외에는 설치할 수 없고 악세사리도 애플이 일일이 인증(Mfi)한 것 외에는 쓸 수가 없습니다.
이런 iOS의 환경은 다양한 환경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다른 노트북에 비해 상당히 큰 제약입니다. 그나마 아이패드 프로는 라이트닝 포트 대신 USB C를 탑재하여 악세사리의 연결성을 높였습니다. 전세대는 라이트닝 포트가 있어서 호환성이 크게 떨어졌지만 이젠 USB-C 포트를 갖고 있어 맥북 정도의 호환성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USB-C로 연결되는 모든 디바이스가 연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iOS에 호환이 될지 안될지 다 꽂아봐야합니다. 지금까지 알려진 것으로는 유선 키보드, 유선랜, 아이폰, USB-C 모니터 정도입니다. 그에 비해 외장하드, 유선 마우스, MFI 미인증 컨트롤러는 연결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외장하드를 연결하면 파일 앱에 자동으로 나오면 정말 좋을텐데 말이죠.

맥OS나 윈도에 비해 멀티태스킹 인터페이스가 부족한 것도 iOS의 단점 중 하나입니다. 아이패드 프로는 하나의 앱이 전체화면을 차지하거나, 최대 세개 정도의 앱을 동시에 띄우는 정도의 멀티 태스킹 밖에 되지 않습니다. 여러 앱과 창을 띄워놓고 일을 처리하는 멀티태스킹 형태의 컴퓨팅 스타일이라면 iOS는 별로 적합하지 않을 것입니다.


아직은 아이패드에 최적화되지 않은 작업 환경

아이패드 프로는 결코 맥북보다 생산성이 떨어지지는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아이패드 프로를 위해 설계된 앱들은 워크플로우를 오히려 맥에서의 작업보다 더 간단하게 할 수 있도록 설계한 앱도 많이 있습니다. 자잘한 작업을 도와주는 전문 앱의 갯수도 맥보다 훨씬 많이 있기 때문에 특정한 케이스에서는 오히려 맥보다 훨씬 높은 생산성을 발휘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건 앱이 잘 되어있을 때의 이야기이고.. 대부분의 경우는 아이패드 프로에서 하는 작업이 맥에서 하는 작업보다 현저히 느립니다. 그 이유는 아직 아이패드 프로를 둘러싼 작업 환경이 아이패드 프로에 최적화되어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당장 지금 쓰고 있는 글도 아이패드 프로로만 작성하고 있습니다만 이 글을 블로그에 올리기 위해서는 엉망인 아이패드용 이글루스 앱을 이용해서 올려야합니다. 아이패드 사파리로 올리는 방법도 있겠지만 아이패드 사파리는 이글루스에서 매끄럽게 동작하지 않습니다. 분명 이 작업은 아이맥이나 맥북으로 하는 것보다는 비효율적일 것입니다.
즉 아이패드 프로가 생산성을 갖추려면 사용자의 워크플로우에 있는 서비스나 앱들이 아이패드에 최적화되어있어야 합니다. PC에서도 마우스에 맞는 환경이 갖춰지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그 전까지는 윈도나 GUI는 지금의 아이패드가 듣는 것처럼 장난감이라는 평가를 받아야했죠.) 언젠가는 마이크로소프트 오피스나 포토샵 등 핵심적인 작업환경들이 아이패드에 최적화되고 있고 언젠가는 대부분의 작업 환경이 터치스크린 작업에 최적화될 날이 오긴 하겠지만 그게 지금은 아닙니다.

아이패드용 오피스는 간단한 문서를 만들기엔 부족함은 없는 것 같습니다.

이런 서비스나 앱들이 최적화되지 않은 상태라면 갤럭시 탭처럼 기존 작업환경에 어울리는 마우스나 키보드를 지원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아이패드 프로에는 마우스를 연결해도 동작하지 않습니다. 아예 iOS에 마우스 포인터 비슷하게 생긴 것조차도 없는 현실이죠. 만약 하고자 하는 작업이 아이패드에 최적화되어있지 않다면 아이패드 프로는 다시 생각해보시는 것이 좋습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한국 환경에서는 맥도 아이패드 못지 않게 최적화된 작업 환경이 없는 실정이라 이 부분은 한국 환경에 국한해서 맥이랑 아이패드가 똑같은 수준이거나 아이패드가 조금 더 나은 것 같기도 합니다. 저는 아이패드로 하는 작업이 글 쓰는 것과 회의록 작성, 사진 보정 등이라 현재까지는 별 무리 없이 적용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마무리

애플은 아이패드 시리즈를 컴퓨터로 포지셔닝 하고 싶은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아이패드 프로 라인은 그동안 아이패드에 취약한 부분이라고 평가되던 생산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아이패드가 아이폰과 동일한 프로세서와 운영체제를 쓰고 있기 때문에 컴퓨터보다는 여전히 모바일 디바이스라고 생각합니다. 아이패드 프로가 다른 컴퓨터와 비교해 여러모로 메리트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생산성에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는 것은 이런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아이패드 프로를 보름 가량 써본 결과 기대보다 훨씬 훌륭한 “컴퓨터”라는 생각이 듭니다. 구매한 후에도 한참을 고민하곤 했지만 이 정도면 제가 포터블 컴퓨터를 쓰는 목적을 충분히 대체할 수 있습니다. 오히려 어떤 부분에서는 맥북보다 훨씬 훌륭하게 목적을 수행하기도 합니다. 전 그래서 고민 끝에 아이패드 프로를 구매한 후 기존에 사용하던 맥북 에어 11인치를 처분했습니다.
아이패드 프로가 완벽하게 기존 노트북을 대체할 수 있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위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아이패드 프로로는 아직 최적화되지 않은 작업들도 많기 때문에 맥이든 윈도 컴퓨터든 기존 형태의 PC 하나쯤은 반드시 있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저도 아이맥이 버티고 있기 때문에 포터블 환경은 아이패드 프로로 올인할 수 있었죠.
아이패드 프로가 대체할 수 있는 환경은 메인 노트북보다는 예전에 미니 노트북 또는 서브 노트북 포지션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서브노트북 포지션은 성능이 다소 떨어지는 대신 무게가 가볍고 배터리가 오래가는 이동성이 뛰어난 특징을 지니고 있죠. 예전 맥북에어의 포지션과 비슷하죠. 여전히 아이패드 프로는 메인 작업용 디바이스로서는 추천하기 어렵지만 작업용 무거운 메인 노트북(또는 데스크탑)과 아이패드 프로를 보조 용도로 조합하는 것은 충분히 추천할만한 것 같습니다.
(이 글은 100% 아이패드 프로로만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