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저를 고민하게 만들고 있는 기기 중 하나는 바로 2013년 12월에 산 아이패드 미니 레티나 입니다. 2010년 12월에 맥북 에어를 사고 고민했던 것처럼, 아이패드 미니도 저에게 새로운 고민 거리를 안겨주고 있습니다. 바로 용도에 대한 고민이죠.
전자 제품도 그렇고 어떤 물건을 살 때 가장 한심한 일은 물건을 사놓고 용도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애플의 물건은 어디에 필요한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사야될 것 같은 마력을 풍기는 것으로 유명하죠. 저도 구입 당시에는 확실한 용도가 있을거라 생각하고 구매하였으나 생각보다 그 용도를 찾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결국 저도 합리화였을 뿐 물건을 사놓고 용도를 찾는 일을 시작하게 된 것이죠.
일단 제가 아이패드를 사려고 했던 이유는 1. iOS 용 게임을 아이폰보다 좀 더 커다란 화면에서 즐기고 싶다. 2. 노트북 반입이 금지된 회사에서 회의록 작성 용도 이렇게 딱 두가지였습니다. 그 중 아이패드 에어가 아니라 아이패드 미니를 택한 것은 순전히 맥북 에어 11인치와의 충돌을 우려해서 였었죠. 아이폰 – 4인치, 아이패드 에어 – 9.7인치, 맥북 에어 – 11인치 보다는 아이폰 – 4인치, 아이패드 미니 – 7.9인치, 맥북 에어 – 11인치 쪽이 그림이 더 자연스러울 것 같기도 했죠.
일단 아이패드 미니를 택한 것에는 후회는 없습니다.
아이패드 미니를 사고 난 다음 아이폰이나 맥북 에어보다 아이패드 미니를 사용하는 시간이 월등하게 늘었습니다. 사실 사고나서 매우 잘 쓰고 있는 편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갖고 있는 고민은 아이패드 미니 자체보다는 아이패드라는 제품군에 대한 고민이라고 보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바로 이러한 고민의 흔적들..
아이패드는 팀쿡의 말에 의하면 맥북과 아이폰 사이의 중간에 놓여있는 기기입니다. 맥처럼 완전한 형태의 PC라고 볼 수는 없고, 아이폰처럼 전화나 SMS 기능을 갖추고 있는 기기가 아닙니다. 그렇지만 아이폰보다 컨텐츠를 즐기거나 생산하기에 적합하고, 맥보다는 훨씬 간편한 사용성과 기동성을 갖추고 있습니다. 아이폰의 화면이 커진다고 해도 아이패드 미니의 7.9인치까지 커지긴 어렵고, 맥북 에어가 아무리 가벼워진다고 해도 아이패드 미니나 에어의 무게보다 가벼워지긴 힘들겁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전화의 비중이 줄어들고 있다고 해도 우리는 어딘가에 갈 때는 반드시 핸드폰을 챙길 수 밖에 없습니다. 만약 카페에서 글을 쓴다거나 회사에서 일을 할 때는(저희 회사 같은 곳은 예외겠지만) 노트북을 반드시 챙길 수 밖에 없습니다. 아무런 짐도 없이 가볍게 외출할 때는 아이폰만 챙겨갑니다. 어딘가에 장기적으로 이동해있을 때, 작업 반경 자체를 이동해야하는 경우에는 아이패드만으로는 커버가 안되기 때문에 맥북 에어를 챙깁니다.
결국 노트북과 스마트폰은 갖고 다니지 않을 수 없는 필수적인 존재입니다. 서로 용도를 침범하지 않으며, 하는 일도 명확하게 구분되어있습니다. 노트북이 못하는 것은 스마트폰이 할 수 있고, 스마트폰이 못하는 일은 노트북이 할 수 있습니다. 극한의 휴대성, 극한의 생산성이라는 두가지 카테고리가 명백히 구분되죠.
그런데 여기에 아이패드가 끼어들게 되면, 기존에 같은 장치로 하던 것들이 뭔가 불편해지기 시작합니다. 아이폰으로 동영상이나 게임을 하는 것이 너무 작게 느껴지고,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맥북을 꺼내고 뭔가를 하는게 부자연스러운 행동처럼 느껴집니다. 바로 이러한 것들에 가장 적합한 기기가 아이패드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아이패드의 포지셔닝이 분명해집니다. 아이폰과 맥북 사이에서 교집합처럼 존재하는 그 “무언가”. 이것이 바로 아이패드가 갖는 정체성입니다. 그래서 애플은 우리에게 각자 용도에 맞는 기기를 잘 써라, 한마디로 다 “갖고 다녀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스티브 워즈니악이 아닌 이상 대부분의 사람들은 동시에 갖고 다니는 기기가 최대 두대를 넘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그이상 되면 동시에 쓰기도 어려워지고, 휴대하기에도 부담스럽습니다. 그래서 손안에서 모두 해결되는 컨셉의 아이폰이 큰 인기를 끌었던 것이겠죠. 디카, 아이팟, PDA, 핸드폰을 하나로 합친 장치였으니까요.
그런데 결과적으로 아이패드가 나온 이후로는 다시 들고다니는 기계가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위에서 본 것처럼 아이패드 또한 나름의 영역이 있기 때문에 안갖고 다닐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스마트폰 역할을 하는 것도 아니고 노트북 역할을 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세개를 다 짊어지고 다녀야하는 일이 발생하게 된 것이죠.
물론 예전에도 들고다니는 기계수가 세대를 넘어가는 일은 많았습니다. 저만해도 대학교 때 핸드폰, MP3 플레이어, 전자사전, DMB수신기(?) 같은 것들이 가방에 있었죠. 그런데 이 녀석들은 각자의 한계와 할 수 있는 일이 명확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스마트폰, 노트북, 태블릿은 거의 같은 기능(인터넷, 동영상, 게임, 음악 등등)을 갖고 있습니다. 한가지 차이라고 한다면 사이즈나 물리 키보드의 유무 정도의 차이가 날 뿐이죠. 이 세가지를 다 들고 다니기엔 너무 많은 기능이 중복되고 낭비되고 있다는 생각마저 듭니다.
그런데 여기까지는 사실 애플 생태계 내에서의 일이고, 눈을 바깥으로 돌려본다면 어떻게 될까요?최근엔 Phablet이라고 하여 갤럭시 노트와 같은 커다란 스마트폰이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안드로이드 진영에 있는 대부분의 태블릿은 전화 기능이 가능합니다. 물론 아이폰보다 휴대하기 불편하고, 아이패드보다 컨텐츠 감상하기엔 화면이 작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어느정도의 불편함”을 감수한다면 스마트폰 하나로 모든걸 해결할 수도 있습니다.
최근엔 노트북도 갈수록 경량화되고 있고, 아키텍쳐의 발전으로 초 절전형 컴퓨터가 등장하고 있습니다. 즉각적인 반응(Instant ON), 가벼운 무게, 오래 지속되는 배터리 같은 태블릿의 특성을 가진 노트북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습니다. 아이패드가 아무리 생산성이 뛰어나다고 해도 기존의 작업환경과 완전하게 호환되는 PC 운영체제를 대체하기엔 여전히 무리가 있기 때문에 이런 형태의 장치들이 인기를 끌고 있죠.
이런 장치들의 가장 큰 장점은 동시에 갖고 다녀야하는 기기 수를 줄여준다는데 있습니다.(또한 구매 비용도 그만큼 줄어들겠죠) 이런 장치들의 발전이 결국 아이패드를 대체하게 될 정도가 된다면, 아이패드의 입지는 빠르게 줄어들거라 생각합니다.
그런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아이패드가 아니면 안되는 이유나 상황에 대한 답을 내릴 차례이지만, 그 답은 애플조차도 모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애플은 그 몫을 앱 개발자들에게 맡겨놓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명확한 답이 나왔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Post PC라는 단어 자체도 참 모호합니다. PC를 대체하겠다는 것인지? PC를 대체할 수 없다는 뜻인지?) 아이패드 쓰는 사람들에게 “아이패드 갖고 뭐하니?” 라고 물어보면 그러는 “너는 컴퓨터로 뭐하니?” 란 대답이 돌아오지만 사실 “아이패드가 아니면 안되는 이유”에 대해서는 사용하는 사람들도 명확히 답을 내리긴 힘들겁니다.
물론 아이패드에겐 아직 틈새가 있습니다. 만약 엄청나게 무거운 노트북을 쓰고 있다면, 아이패드는 가방을 가볍게 해주는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 만약 스마트폰이 없거나 블랙베리를 쓰고 있다면, 아이패드는 이동 중에 뛰어난 작업을 할 수 있는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 집에서 컴퓨터를 잘 모르는 어른이나 아이들이 있다면 아이패드가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
다만, 아이폰이나 갤럭시 같이 뛰어난 스마트폰이 있고, 맥북 에어 같이 가벼운 노트북을 항상 휴대하고 다닌다면, 아이패드에 대해서는 다시 생각해보시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어쩌면 저처럼 세개 다 짊어지고 다녀야 하는데에 대해서 불평을 할 수도 있고, 장농 어딘가에서 처박혀 굴러다니게 될 수 있으니까요. ㅠㅠ저는 이미 늦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