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콜콜한 IT 회사 취업 이야기 – (1)

예전부터 써야지 써야지 하면서 못 쓰고 있었던 글입니다. 그 이유는 일단 이제부터 언급될 회사들은 입사를 거절했거나 불합격했거나 퇴사한 상황이고, 나름 해피엔딩이긴 하나 그렇다고 성공기도 아닌 그저 그런 이야기들을 쓴다는 것이 한편으로는 부담스럽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하지만 무엇보다 큰 이유는 귀차니즘..) 성공기라고 할만한 글도 아니고 어떤 교훈을 담고 있는 글도 아니니 그냥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즐겨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어쩌면 대부분 트위터에서 한번 이상 언급한 이야기들일지도 모르겠네요.때는 바야흐로 2011년 1월, Welcome to Ubuntu도 출간되고 그로 인해 나름 강의도 다니고(딱 한번-_-) 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애초에 우분투로 무언가 경제 활동을 한다거나 책 저술을 전문으로 한다는 생각은 없었습니다. 단순히 취미로 시작했던 우분투 활동이었고 그로 인해 책이라는 결과물 하나가 남았다는 것만으로도 분에 넘치는 행운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라고 하지만 맥북 에어라는 결과물이 남아서 이렇게 쓰이고 있긴 하네요-_-ㅋ)문제는 책을 쓰던 1년 6개월간 경제활동이 전혀 없었고, 책 관련한 수익도 맥북 에어와 함꼐 장렬히(?) 사라졌다는데 있었습니다. 이제야 본격적으로 먹고 사는 문제에 대해서 고민할 수 밖에 없게 된 것입니다. 게다가 졸업은 이제 한달 앞으로 다가와 있었죠. 조금 있으면 통계학적으로도 백수의 반열에 오르게 되는 상황이었습니다.물론 그 전에도 구직 활동이 없었던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의지가 없었던 것인지 제대로 풀리진 않았습니다. 제일 큰 문제는 이력서에 쓸 이력이 전혀 없다는 것(흔히 스펙이라고 하죠)과 자기소개서였습니다. 국내 포탈 D사에 지원할 때는 이력서를 올려놓고 한달 동안 서류를 수정하고 또 수정해서 겨우겨우 넣었을 정도였죠.(결국 결과는 낙방이었지만 말이죠.)이력에 대하여 저는 제 전공(경영학)을 가진 대학생이라면 흔히들 다 갖고 있는 그런 스펙을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애초에 쌓을 생각도 없었던 것이 그런 활동들은 제 흥미를 전혀 당기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_- 그 대신 Compiz 번역팀, 우분투 로컬팀, 국내 두번째 한글 우분투 서적 저자 같은 좀 신기하고도 생소한(?) 그런 스펙 아닌 스펙들만 있을 뿐이었습니다.이것은 이력서 뿐만 아니라 자기소개서에도 악재로 작용했습니다. 그냥 흥미 닿는대로 남들 다하는 스펙 걱정 안하고 살아온 것의 말로였다고 할까요-_- 제 전공과 관련되어있는 직군에서는 줄줄이 낙방이었습니다. 차라리 면접에서 떨어진다면 석패라고 할 수 있겠지만 서류에서조차 통과가 되지 않는 상황이니 기회조차도 오지 않았습니다. 분기별로 이력서를 거의 100장씩 썼다는 친구의 말이 실감되는 순간이었습니다.몇잔의 고배를 마시며 좌절감을 키워가고 있던 중 친구 회사에서 하게 된 연말 정산 아르바이트는 정말 좌절감을 극대 시켜주었습니다. 대기업 계열사-_- 특유의 경직된 문화와 이유 없이 사람을 깔보는 듯한 시선들은.. 연말 정산 관련 일도 힘들었지만 그것이 더 힘들었습니다. 8시 30분에 오면 부장님, 차장님, 과장님, 대리님, 정사원 순서대로 인사를 쭉 해야했지요. 업무보다도 그 당시 그 인사가 더 힘들었던 건 참 특이한 경험이었습니다. 자존심에 대한 상처라고 하는 것이 더 옳겠군요.어쨌든 그 당시 연말 정산 아르바이트 이후 그전엔 좀 설렁설렁 하던 구직활동을 본격적으로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어떻게든 구직 활동을 위한 경제적 여건과 시간을 벌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운 좋게도 학교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너무 좋은 사람들과 함께 일하면서 경제적으로도 조금 사정이 나아졌고, 무엇보다 구직 활동을 위한 시간을 벌게 되었죠. 어둠과 같은 시기에 내려온 동아줄과 같았습니다.학교에서 이력서를 준비하며 심기일전하여 다시 D모 포탈에도 이력서를 넣었지만 또 다시 낙방이었습니다. 이통사 K사, 핸드폰 제조사 P사, K사, L사 등 대기업에 다 넣어봤지만 전부 낙방이었죠-_- 아 이젠 이런 방법으로 안되는건가 싶어서 결국 인터넷 인력 시장(잡코리아 등)에 저를 포장하여 내어놓았습니다. 마치 팔리기를 기다리는 오픈 마켓에 진열된 상품처럼 말이죠.여러 회사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제일 처음 연락이 온 회사는 ‘KT돔닷컴’이라는 회사였습니다. 다른 회사들 가운데 이 회사만 실명을 거론하는 이유는 저와 비슷한 처지의 분들께 드리는 일종의 경고입니다. 구직 활동을 하는 구직자들의 절박함을 이용하는 이런 회사는 솔직히 지금도 괘씸하네요.인력 시장에 스스로를 올리면 가장 먼저 연락이 오는 회사가 이곳 아닐까 싶은데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이 회사는 KT와 아무 관련이 없는 회사입니다. 도메인 관련 영업으로 매우 악명을 떨치는 회사고, 거의 대부분의 신입 사원들이 한달을 버티지 못하고 떨어져나가지요. 뭔가 대기업 같지만 사실 회사형 다단계 회사랄까..-_- 그런 곳입니다.(이 곳의 악명을 경험하고 싶으시면 간단하게 구글링을 해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당연히 이 회사의 입사 제의는 거절하였습니다. 아무리 절박해도 이건 좀 아니다 싶더군요.어차피 제 전공과 관련된 분야로서는 구직 활동도 힘들고 해서 그 이후 구직 활동은 IT 기업, 그것도 ‘기획’이라는 분야에만 집중했습니다. 개발도 할 줄 몰랐고, 그렇다고 디자인을 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오직 갖고 있는 것이라곤 다양한 커뮤니티 활동 경험과 수박 겉핥기로 배운 IT 관련 지식들이었죠. 이런 것들을 쓸 수 있는 분야는 그나마 기획 하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두 기업에서 면접 제의가 들어왔습니다. 한 곳은 SW, 웹, 각종 문서 번역을 전문으로 하는 모 회사였고, 한 곳은 웹 에이젼시였습니다. 그동안의 번역 활동과 커뮤니티 활동이 그나마 인정을 받은 순간이었다고 할까요? 두 회사의 규모는 작았지만 거의 1년 동안의 구직활동에서 “처음으로 받은 면접 제의”라 솔직히 무척 기뻤습니다.(위에 KT돔닷컴과 인맥으로 면접을 보았던 곳도 있었지만 그 두 곳은 제외하고 싶네요-_-)일단 처음 면접을 본 곳은 번역 소프트웨어 전문 회사였습니다. 그간의 오픈소스 번역팀 활동이 인정을 받아 면접까지 보게 된 것이죠. 면접은 회사에서 면접관 다수에 저 혼자인 다대일 방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회사의 면접은 좀 이상했습니다. 나름 압박 면접이었는데 이상하게 면접관이 먼저 자폭을 하더군요-_- 가령,“연봉 관련해서는 회사의 내규를 따른다고 하셨는데, 사실입니까?”“네. 그렇습니다.”“오호, 집이 좀 사시나 본데요?”같은 식의 인신 공격에다“리눅스 관련 책을 쓰셨네요? 저희 회사는 주로 업무가 윈도로 이뤄지는데 윈도는 그럼 잘 못다루시겠네요? 맞나요?”라던지“HTML과 XML의 차이점에 대해서 설명해보세요.” ← 번역 회사에서 이 질문 자체가 좀 이상하지만..“네 HTML은 어쩌고.. XML은 어쩌고..”“…..그게 맞나요?”“네?”라던지-_-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압박 면접이었습니다. 나름대로 대처는 했지만 어떻게 대처했는지도 기억 나지 않습니다. 이 회사에 대한 이후 기억은 야근이 굉장히 많다. 우린 바쁘다, 우린 데드라인 지키는게 무엇보다 핵심이다, 오후 11시반 퇴근이 기본이다 등등-_- 뭐 이런 이야기를 들은 것 밖에 없었습니다.이 회사는 나중에 검색을 해보니 KLDP 등 개발자 커뮤니티에서도 좀 논란을 일으켰던 회사인데요, 이곳의 CEO 님은 “그렇게 고생 안하려고하면 이 나라 IT의 발전은 없다”라는 논지의 신문 컬럼까지 쓰셨던 분이더군요-_-두번째로 면접을 본 회사는 웹 에이젼시였습니다. 다만 웹 에이젼시인데 1인 창업 기업을 위한 서비스 유통 오픈소스 플랫폼(일종의 앱스토어 같은?)을 준비 중이었습니다. 저는 오픈소스 기획자로서 면접을 보게 된 것이었죠. 일단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오픈소스 기획자”라는 것이 일단 제 구미를 당겼고, 사장님의 말도 믿을만했습니다. 회사 건물은 찜질방과 골프 용품 가게가 같이 있는 이상한 곳이었지만 전 이곳을 택했습니다.게다가 연봉은 두 회사가 똑같은 금액을 제시했는데 두번째 회사는 그나마 정시 퇴근을 보장해주더군요-_- 똑같은 경제 유인이라면 당연히 일이 적은 쪽을 택하는 것이 인지상정이지요. 나중에 이 두 회사의 규모와 매출액 차이에 대해 알게된 어머니께 혼나긴 했지만 그땐 정말 그런 것들이 아무 상관 없었습니다. 현재는 작아도 미래를 보고 싶었고, 나름대로 그 미래를 함께하는 꿈도 그리고 있었달까요?(어찌보면 철이 없다고도 볼 수 있겠지만..)이런 저런 이유로 저는 두번째 회사를 택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곳이 저의 첫 직장이 되었죠. 나름 저는 꿈에 부풀어 있었지만, 돌이켜보면 사실 비극은 그때부터 시작이었습니다.–쓰다보니 글이 너무 길어졌네요-_- 모바일에서 RSS로 구독하시는 분들의 손가락 부담과 PC에서 보시는 분들의 지루함을 덜어드리기 위해 나누어서 연재 방식으로 올릴까 합니다. 이 글은 다음 글에서 바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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