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워치에 있는 타키미터(Tachymeter)란 기능을 아시나요?

기계식 시계 중 ‘크로노그래프(Chronograph)’는 스탑워치 기능과 시계 기능을 동시에 사용할 수 있는 시계를 부르는 명칭입니다. 대부분 스탑워치 기능이 탑재되어있어서 초단위로 시간을 잴 수 있죠.

하지만 요즘은 기계식 시계로 시간을 재는 사람들은 많지 않습니다. 스마트폰 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디지털 시계에도 스탑워치 기능이 들어가다보니 크로노그래프의 기능적인 니즈는 예전에 비해 크지 않은 편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크로노그래프 시계는 기계식 시계에서 꽤 전통적인 인기를 구가하고 있고 일반 시계에 비해서 가격이 훨씬 비싼 편입니다. 바로 특유의 디자인 요소 때문인데요, 크로노그래프는 일반 시계에 비해 많은 다이얼과 시침을 갖고 있어 특유의 복잡한 기계적인 디자인이 감성을 자극합니다.

작년에 릴리즈되었던 Watch OS 6에는 크로노그래프 프로라는 페이스가 있습니다. 기존에 있던 크로노그래프 페이스에 몇가지 기능과 함께 디자인을 개선한 워치 페이스입니다.

애플워치의 크로노그래프 프로도 기계식 크로노그래프처럼 시간을 재는 용도로 사용할 수 있지만 이미 애플워치에는 스탑워치 앱이 있기 때문에 기능적인 목적은 그다지 크지 않습니다. 애플워치에도 아날로그 감성을 그대로 유지하기 위한 목적이 더 크죠.

크로노그래프 프로 페이스는 30초를 재거나, 60초를 재는 등 단위를 별도로 설정할 수 있는데요, 그 중 타키미터(Tachymeter)라는 기능이 있습니다. 기계식 시계에 문외한인 저로서는 크로노그래프라는 이름도 낯설었지만 타키미터는 처음 듣는 이름이라 인터넷을 조금 찾아봤는데요, 꽤 재밌는 기능이었습니다.


타키미터란?

기계식 크로노그래프 시계 중 타키미터 시계는 속도를 재는 시계를 의미합니다. 속도 측정기가 따로 없던 시절, 레이싱 이나 경마에서 속도를 재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한 시계죠. 타키미터 시계 중 가장 대표적인 시계가 바로 오메가의 스피드 마스터 라인입니다.

현대에 와서는 아무도 기계식 시계로 속도를 측정하지 않습니다. 속도를 측정할 수 있는 수단이 많아졌고 시계로 측정한다고 해도 디지털 시계로 측정하는 편이 더 정확하기 때문이죠. 타키미터는 그래서 현대에 와서는 디자인 요소로 더 인기가 더 높습니다.

타키미터가 지원되는 크로노그래프 시계는 기본적으로 스톱워치의 기능을 겸하고 있기 때문에 시계의 다이얼에는 스톱워치의 시간을 표시할 수 있는 여러 서브 다이얼이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영구 초침(실제 초침), 30분 단위 측정 다이얼, 12시간 단위 측정 다이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렇게 페이스에 있는 복잡하게 생긴 여러 개의 서브 다이얼이 기계식 시계만의 멋을 더하는 것이죠.

시계로 속도 측정을 어떻게?

그럼 타키미터로 어떻게 속도 측정을 할 수 있을까요? 언뜻 생각하기에는 시계로 속도을 측정한다는 것이 쉽게 상상되지 않습니다. 타키미터가 시간을 측정하는 원리를 알기 위해서는 학창시절 물리 시간에 배웠던 간단한 공식 하나를 이용해야합니다

속도 = 거리 / 시간

이 공식에 따라 타키미터가 지원되는 시계는 아래와 같은 원리로 속도을 측정할 수 있습니다.

1. 먼저 1km를 이동한 다음 걸린 시간을 측정합니다.

2. 측정해보니 1km를 가는데 10초가 걸렸다고 가정해보겠습니다.

3. 이때의 속도는 위 공식에 따라 아래와 같이 계산할 수 있습니다.

1km/10초 = 0.1 km/sec

4. 하지만 우리에게 익숙한 단위는 초속이 아니라 시속이므로 초속을 시속으로 변환하기 위해 3600(1시간 = 3600초)을 곱해줍니다. 이렇게 계산해보면 저는 지금 시속 360km로 이동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죠.

0.1km/sec * 3600 = 360km/h

타키미터는 이와 같은 계산을 매번하긴 번거롭기 때문에 다이얼 겉면에 걸린 시간에 따라 단위 속도을 표시해놨습니다. 즉 크로노그래프의 초침이 해당 숫자를 가리키면 그게 곧 속도라는 것을 바로 알 수 있는 것이죠.

이 방식으로 타키미터는 속도 측정 수단이 마땅하지 않던 시절 레이싱 카의 시속을 계산할 수 있었습니다. 측정하는 사람이 1km 떨어진 곳에 서서 레이싱 카가 오는데 걸린 시간을 측정하면 시계를 통해 속도를 알 수 있었죠.

그런데 기계식 시계의 타키미터는 약점이 하나 있습니다. 다이얼 표현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초침이 한바퀴를 도는, 즉 60초 이상을 넘어갈 경우에는 정확한 측정이 어렵다는 것이죠. 즉 60km 이하의 저속 측정은 다이얼에 표시가 되지 않기 때문에 걸린 시간을 기반으로 따로 계산해줘야 했습니다.

애플워치에서는 기계식 시계처럼 겉면에 다이얼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단위/시간이 시계 페이스에 디지털식으로 출력되어 좀 더 정확하게 속도을 측정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기계식 시계와 달리 단위 속도 측정 표시에 한계도 없죠. 애플워치는 60초가 지나가도 단위 속도가 계속 표시되기 때문에 60km/h 이하의 저속 측정도 가능합니다.


속도 외에도 측정할 수 있는 것들

타키미터는 속도만 측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타키미터는 단위 속도를 측정할 수 있습니다. 어떤 단위 작업을 하는 시간을 측정하고 시간 당 얼마나 작업을 진행할 수 있을지 미리 측정해볼 수 있죠.

예를 들어 1km 이동이 아니라 특정 작업을 하는 시간을 측정한다고 가정해보겠습니다. 만약 제가 어떤 작업을 하는데 20초가 걸렸다고 한다면, 이때 타키미터로 측정한 시간은 180단위/시간입니다. 즉 저는 해당 작업을 한 시간에 180번 정도 진행할 수 있다고 볼 수 있죠.

즉, 어떤 일이나 과제를 하나 수행하는데 걸린 시간을 측정하면 시간 단위 속도로 환산하는게 가능합니다. 그래서 타키미터에 표시되는 내용도 속도를 표시하는게 아니라 ‘단위/시간’으로 표현되는 것이죠. 만약 1km를 간 시간이라면 km/h가 되는 것이고, 어떤 과제를 수행한 시간이라면 과제/시간이 되는 것입니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 제가 한 문단을 작성할 때 얼마나 걸리는지를 측정해봤는데요, 저는 한 문단을 작성할 때 2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되었습니다. 타키미터에는 30단위/시간이라고 써 있죠. 즉 저는 이 속도를 그대로 유지한다면 한 시간 당 30문단을 쓸 수 있는 셈이죠.(물론 불가능한 일입니다..)

마무리

타키미터는 재미난 기능이긴 하지만 사실 실용성은 다소 떨어지는 기능입니다. 애플워치를 차고 걷기만 해도 애플워치가 속도를 자동으로 계산해주고, GPS의 이동을 이용해 속도를 측정할 수 있는 세상에서 타키미터와 같은 방식으로 속도를 측정하는 것은 정확성과 편의성이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앞에서 몇번 언급한 것처럼 크로노그래프와 타키미터는 실용성을 위한 기능이라기보다 디자인을 위한 기능에 가깝습니다. 애플워치에서도 뭔가 실용적인 기능보다는 기계식 시계의 디자인을 차용한 디자인 중심의 워치페이스 같은 느낌입니다. 저도 디자인적인 매력 때문에 주력 페이스로 설정해놓고 쓰고 있는 중이기도 하죠.

하지만 애플워치의 타키미터는 디자인 요소에만 그치지 않고 기계식 시계의 기능을 그대로 계승하면서 디지털만 할 수 있는 기능을 보강해 재해석한 워치페이스입니다. 기계식 시계의 특성을 이해하고 그 전통을 계승하면서 자기 방식대로 승화해내는 애플워치만의 매력이 잘 나타나는 페이스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