컵헤드 (2017)

인간의 학습 능력이란 정말 대단하구나 하고 느끼게 되는 게임들이 있습니다. 엄청나게 난이도가 높은걸로 유명한 게임들이지만 계속 반복해서 하다보면 또 어떻게든 클리어하게 되는 그런 게임들이죠. 지난 번에 리뷰한 아머드코어6가 그랬고, iOS에 있는 Grid Autosport 도 그랬습니다. 제가 1,870번 정도 죽었던 VVVVVV도 그랬죠.

단순히 난이도가 높은 게임을 반복해서 플레이한다고 될 문제는 아닙니다. 재시도를 할 수 있는 도전 정신을 일깨워야 하고 플레이어의 학습 곡선을 유도할 수 있도록 치밀하게 설계 되어야 하죠.

이번 스팀 가을 세일에 구매한 컵헤드가 그런 게임입니다. 처음에는 비쥬얼 때문에 구매했고 높은 난이도 때문에 좌절하여 환불할까 생각했지만 묘한 중독성 때문에 계속 플레이하게 되고 그러다보니 환불 시점을 지나서 어느덧 조금씩 클리어해나가는 자신을 보면서 인간의 학습 능력에 또 한번 감탄하게 됩니다.

딱 봐도 50년대 만화 스타일의 향수가 묻어나는

처음에 눈에 띄는건 비쥬얼인데 1950년대 미국 만화 스타일의 화질과 작화를 하고 있습니다. 실제 게임 그래픽도 대부분 셀화 기법을 이용해 수작업으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이런 슈팅 게임이 그렇듯 스토리는 별로 의미가 없습니다. 악마에게 영혼을 빼앗길 위기에 처하게 된 컵헤드와 그의 형제 머그맨이 악마에게 빚진 채무자들을 찾아다니면서 혼내 주는(?) 그런 내용의 게임입니다. 어떻게 보면 사채업자이자 심부름센터랄까요.

게임은 전체적으로 슈팅 장르를 띄고 있고 메가맨(록맨)의 오마쥬가 여기저기에서 묻어납니다. 기본적인 게임 스타일도 메가맨이랑 상당히 비슷합니다.

차이가 있다면 다짜고짜 보스전으로 돌입한다는겁니다. 원래 이런 슈팅 장르는 스테이지를 진행하게 되고 스테이지 끝에서 보스 전을 시작하는데 이 게임은 대부분이 보스전입니다. “강행돌파” 같은 스테이지가 있긴 하지만 비중이 많지 않습니다.

이런 보스전은 컵헤드의 특징이자 가장 큰 매력입니다. 보스전 중심의 구성은 난이도가 높은 게임의 특성상 어느정도 난이도를 낮춰주는 역할도 합니다. 메가맨 시리즈처럼 일반적인 슈팅 게임은 보스전에서 죽으면 스테이지 전체를 다시해야하지만 컵헤드는 보스전만 다시 플레이하면 되니까요.

보스들의 비쥬얼도 뽀빠이나 펠릭스 같은 고전 미국 애니메이션에서 본 것 같은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상당히 기괴한 모습입니다.

일단 쉬운 난이도로 클리어하면 보통 난이도에서는 보스의 속도가 빨라지거나 새로운 패턴이 추가되는 식입니다. 힐다 베르그의 경우 쉬운 난이도에서는 위의 비행기 모습이다가 보통 난이도에서는 아래와 같은 흉칙하게 생긴 달 모양으로 변신해 플레이어를 압박합니다.

여러가지로 유명한 보스 힐다 베르그

이 보스들이 위에서 이야기한 악마에게 빚을 진 채무자들입니다. 쉬운 난이도로 클리어해도 게임 진행이 가능하지만, 채무자들에게 빚을 돌려 받기 위해서는 보통 난이도로 클리어해야 합니다. 즉 진짜 엔딩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보통 난이도로 클리어해야한다는거죠. 자연스럽게 쉬운 난이도로 클리어를 유도했다가(참고로 쉬운 난이도도 겁나 어렵습니다) 보통 난이도를 해보도록 유도하는 방식이죠.

보통 난이도로 클리어해야 채무자들에게 빚을 받을 수 있다

저도 처음 구매했을 때는 쉬운 난이도도 클리어하지 못하고 마구 죽었는데 한 3일 정도 하니 첫 스테이지의 보스들은 보통 난이도로 클리어가 가능했습니다.

스테이지 중간에 보면 얼마나 죽었는지 카운트 해주는 호수가 있습니다. 저도 몰랐는데 엄청나게 죽었었네요.

요즘 게임들은 플레이어들의 진입 장벽을 낮추기 위해 난이도를 낮게 설정하는 편이지만, 난이도가 어려운 게임들만의 매력이 있습니다. 다만 그게 잘 설계 되었을 때만 보이죠. 그런 의미에서 컵헤드는 비쥬얼로 사람을 현혹시킨 다음 잘 설계된 구성으로 빠져들게 하는 게임입니다.

어쩌다보니 환불 시간이 지나버려 어쩔 수 없이 플레이하게 된 게임이었지만, 후회하지 않습니다. 역시 유명한데는 이유가 있었네요. 혹시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현재 스팀에서 30% 세일 중이니 구매하실 수 있습니다.(참고로 할인 진짜 잘 안하는 게임입니다.)

덧. 스팀덱 세팅 관련

컵헤드는 스팀덱 완벽 호환 등급의 게임입니다. 개인적으로 스팀덱에서 하는걸 추천하는데, 컵헤드는 오브젝트가 엄청나게 많기 때문에 한눈에 안들어오는 대형 TV에서 하는 것보다 작은 화면의 스팀덱에서 하는게 더 유리하기 떄문입니다.

다만 스팀덱에서 플레이할 경우 한가지 문제가 있는데, 게임 특성상 총알 버튼인 “X” 버튼을 계속 누른 상태로 점프나 회피 등의 동작을 해야 하는데 스팀덱은 버튼이 작아서 이런 플레이가 어렵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저는 스팀덱 세팅에서 R2 트리거를 “X” 버튼으로 대체하는 세팅을 해줬는데 트리거를 누른 상태로 조작을 하니 훨씬 편하더군요. 만약 스팀덱에서 컵헤드를 하신 다면 추천합니다.(일반 엑박 컨트롤러에서도 이 구성이 편하긴 하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