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기준 유럽에서 본 테크 이야기(애플 페이, 스마트폰 등)

이번에 유럽 여행을 20일 정도 다녀오면서 많은걸 봤지만 역시 관심사가 관심사라서 유럽 사람들이 많이 사용하는 기기나 애플 페이 같은 주변 환경이 눈에 많이 들어오더군요. 그래서 오늘은 여행기에서 미처 정리하지 못했던 유럽에서 본 테크 이야기들을 따로 정리해 보려 합니다. 물론 이건 20일동안 본 단편적인 경험이라 주관적인거라는 점 미리 말씀 드립니다.

이번에 다녀온 유럽 국가들은 모두 서유럽으로 파리, 런던, 독일(프랑크푸르트, 쾰른, 하멜른, 베를린) 순서로 다녀왔습니다. 모두 기술 환경이 잘 갖춰져 있는 선진국들이죠. 하지만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인프라는 역시 아직 한국(특히 서울)이 훨씬 좋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유는 좀 이따가 설명드리겠습니다.

애플페이

먼저 애플페이 이야기를 안할 수가 없습니다. 한국에서는 애플페이가 출시된지 이제 1년 정도 밖에 안되었고 아직도 안되는 곳이 거의 대부분이지만, 위에 다녀온 저 세 국가에서는 애플페이가 안되는 곳을 찾는게 더 힘들었습니다. 아, 딱 한군데 있었는데 독일의 중소도시인 하멜른의 전통 빵집에서는 안되더군요. 근데 그 곳은 신용카드도 안되는 곳이었습니다.

이건 유럽에 있는 모든 상점의 카드 기계가 컨택리스를 지원하는 기계라서 가능한 것 같습니다. 애초에 기존 MST 방식처럼 카드를 긁는 방식의 카드기를 찾는게 불가능할 정도였어요. 마트에서도, 식당에서도, 심지어 유료 화장실(유럽은 아직도 화장실이 유료입니다)에서도 애플 페이가 되었습니다. 비상시를 대비해 항상 신용카드를 갖고 다녔지만 실제로 쓴 적은 한번도 없었습니다.

한국에서는 항상 맥세이프 지갑을 아이폰에 붙여서 다니는데 유럽에서는 현금 아니면 지갑 자체를 들고 다닐 필요가 없었습니다. 애플 페이 방식이 일반적인 세상은 정말 편하구나 싶었습니다. 결제 스트레스가 덜어지니 돈을 더 쓰게된 것은 좋진 않았지만요.

참고로 저는 사전에 외국 결제가 가능한 현대카드를 애플 페이에 등록해서 가져갔습니다. 해외 결제가 가능한 현대 카드라면 외국에서도 제한 없이 애플페이 사용이 가능해서 그것도 좋더군요.

애플페이 교통 카드

애플페이 교통카드 이야기도 안할 수 없죠. 세 나라 모두 애플 페이가 일반적인 나라인데 교통 카드 방식은 모두 다르다는 것도 재밌습니다.

일단 세 나라 모두 기후 변화로 인한 친환경 이슈가 화두라서 기존 오프라인 교통 카드나 티켓 같은 것은 발급을 지양하는 추세입니다. 그래서 애초에 티켓 머신이 없는 경우도 꽤 있었습니다. 아예 적극적으로 애플페이 같은 전자 방식의 교통 패스를 더 권장하고 있습니다.

일단 프랑스(파리) 같은 경우는 애플 페이로 교통카드가 됩니다. 애플 지갑 자체 앱에서 단일 교통권이나 나비고 교통 패스(하루)를 바로 구매할 수 있습니다. 일본이랑 거의 똑같습니다.

특히 나비고 패스의 경우 특정 기간 동안 파리 교통 수단을 무제한으로 타고 다닐 수 있는 패스라서 관광객들에게는 거의 필수나 다름없는 패스이죠. 오프라인에서 발급하려면 증명사진 들고 가서 구매해야하는데 애플 페이로는 아이폰 내에서 별다른 절차 없이 바로 구매할 수 있어서 편했습니다.

파리에는 버스 탈 때 지하철 탈 때 모두 개찰구가 있는데 개찰구에 아이폰이나 애플워치를 갖다 대기만하면 바로 사용이 가능합니다. 익스프레스 모드로 교통권을 지정할 수 있는데 폰을 켤 필요도 없어서 정말 좋더군요.

영국(런던)도 애플페이로 교통카드가 되는데, 여기는 파리처럼 뭔가 따로 구입할 필요 없이 현재 사용중인 신용카드를 그대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원래 한국과 프랑스, 일본에서는 신용카드를 애플 페이의 익스프레스 모드에 지정하는게 불가능한데, 영국에 도착하면 이 기능이 해금(?) 됩니다. 신용카드로 찍고 다니다가 다음날 한번에 교통요금을 결제하는 방식입니다.

그래서 훨씬 편하게 쓸 수 있긴 한데, 문제는 나비고 패스 같은게 없어서 교통 요금 자체는 훨씬 비싸다는게 함정이랄까요. 패스의 좋은 점이 언어의 장벽이 있는 관광객 입장에서는 갑자기 버스가 서버리거나 지하철이 서비스를 중단하는 경우가 생기면(유럽에는 이런 일이 정말 많았습니다.) 내리고 갈아타야하는데 이때 교통 요금이 또 청구됩니다. 물론 자기네 이슈라면 사정을 감안해서 결제하긴 하지만.. 제가 잘못 탄 경우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교통 요금 자체는 여러모로 런던이 훨씬 비쌌습니다.

독일은 애플페이로 교통카드를 이용할 수 없습니다. 애초에 주 별로 도시 자체의 개성이 강해서 교통 체계 자체도 도시마다 다 틀리다는게 특징입니다. 하지만 상황은 이래도 친환경을 위해 스마트폰으로 교통권 발급 받는걸 권장하는데 각 도시마다 앱을 따로 따로 받아야 합니다. 프랑크푸르트는 RMVgo, 베를린은 BVG 같은 식이죠. 이 앱에서 교통권이나 패스를 결제하면 QR 코드가 나오고 이걸로 탑승할 수 있습니다.

독일의 교통 시스템은 좀 특이한데, 어느 나라나 버스탈 때 찍고, 지하철 역에 들어갈 때 찍고 하는게 일반적인데 독일은 가봤던 도시 모두 개찰구라는게 없었습니다. 기차를 타도, 버스를 타도, 지하철을 타도 찍고 들어가는게 없습니다. 그냥 탑니다. 프랑크푸르트 중앙역은 그래서 역에 들어가자마자 기차 플랫폼이 보입니다.

역에 들어가면 그냥 이렇게 기찻길이 나와요

일단 타면 그 다음에 직원이 돌아다니면서 검표하는 방식인데 걸리면 벌금이 60배 정도입니다. 1회 교통 요금이 우리 돈으로 3천원 ~ 4천원 정도로 겁나 비싸기 때문에 독일 사람들은 대부분 패스를 이용합니다. 그래서 그런건지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건지 몰라도 한국인 기준에서는 처음엔 적응하기 어려운 엄청 특이한 시스템이었습니다.

스마트폰 사용

유럽에 돌아다니면서 사람들 손에 들려있는 스마트폰에도 관심이 가더군요. 주로 평일 아침에 대중교통으로 이동했다보니 우연찮게도 현지인의 출근길이랑 많이 겹쳤는데, 이 때 정말 다양한 스마트폰을 봤습니다.

일단 제가 돌아다닌 곳이 대부분 대도시라서 그런지 몰라도, 체감적으로는 아이폰이 80%, 그 외 안드로이드가 20% 정도였던 것 같습니다. 정말 아이폰 엄청나게 쓰더군요.

재미있는 점은 아이폰이 많긴한데 프로 모델 아이폰이 많지는 않다는거였습니다. 프로모델은 카메라가 세개, 일반 아이폰은 카메라가 두개인걸로 간단하게 구분이 가능한데 제가 다니면서 본 아이폰 프로 모델은 총 다해서 다섯 대 정도? 그것도 관광객들이 썼던 경우도 있었을테니 그 많은 아이폰 중에 프로 모델의 비중은 정말 적었습니다. 대부분이 일반 아이폰이나 아이폰 플러스 모델이라는 점이 재밌었습니다.

예전에 어떤 글에서 유럽인은 출근할 때 스마트폰을 대부분 보지 않고 책을 본다는 글을 본 적이 있었는데 그 이유는 익히 아시는 것처럼 전철에서 핸드폰 전파가 잡히지 않기 때문입니다. 파리 지하철은 대부분의 경우 잡혔는데 런던 지하철은 아예 안되는 구간이 거의 대부분이었습니다. 런던에서 아이폰의 위성 아이콘을 처음 봤을 정도였으니까요.

물론 지하철이라 쓰고 싶어도 위성도 안되었겠죠. 그래도 위성 서비스가 되는 영국에 오니 저런 위성 아이콘도 보고 신기했습니다.

예전에 봤던 글에서는 유럽인은 대부분 지하철에서 책을 읽는다고 했는데 2024년 11월에 본 유럽인들은 전파가 안잡히는 지하철에서도 어떻게든 스마트폰을 보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었습니다. 파리나 런던 지하철 출근길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인터넷 연결 필요 없는 모바일 게임을 하거나 다운 받아둔 것으로 보이는 쇼츠나 틱톡 영상을 보는 모습이 어쩐지 친근했습니다. 물론 이북 리더기로 책을 보는 사람들도 꽤 있었지만요.

우리나라에서는 5g가 제 속도가 나오지 않아서 많은 욕을 먹지만 유럽에서는 아예 5g건 4g건 전파가 안잡히다보니 여전히 이런 인프라는 우리나라, 특히 서울이 좋긴 하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우리의 스마트폰 중독도 이런 환경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_-

유럽에 가기 전 20기가 짜리 데이터 USIM을 구입해 갔는데, 20일 동안 10기가도 못 쓰고 왔습니다. 뭐가 잡혀야 많이 쓸텐데.. 워낙 느리고 잘 안되다보니 대부분 오디오 가이드 같은 것도 숙소의 무료 Wifi로 다운로드해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스마트워치

요즘 한국에는 어딜가든 사람들 손목에 애플워치나 갤럭시 워치가 있죠. 아이폰 사용이 거의 대부분인만큼 유럽에서도 거의 모든 사람들의 손목에 애플워치가 있을 것 같은데 신기하게도 스마트워치를 찬 사람 자체가 별로 없었습니다. 이것도 한 10 명 정도 봤나 싶을 정도?

그렇다고 아날로그 시계를 차고 다니는거냐면 그것도 아닙니다. 파리에서 일부 멋쟁이들(…)은 아날로그 시계를 차고 다니기도 했지만 런던이나 독일에서는 대부분 시계 자체를 안 차고 다니는 느낌이었습니다. 일부러 사람들의 손목을 유심히 보고 다녔지만 다들 휑한 느낌. 애초에 스마트워치 시장이 작은 것도 이런 이유인가 싶었습니다.

키오스크

유럽에서 음식 때문에 고생을 좀 했기 때문에 맥도날드를 많이 갔었는데, 맥도날드 같은 곳에서도 제대로 주문하기에는 언어의 장벽이 있다보니 주로 키오스크를 썼습니다.

그래도 빅맥은 맛있었다

예전 트위터에서 우리나라 키오스크의 여러가지 문제를 지적했던 글을 봤던 것 같은데 제가 써본 바로는 유럽 키오스크도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진 않았습니다.

맥도날드랑 프랑스의 퀵 기준으로 보면 처음 키오스크에서 1) 멤버십이 있냐고 먼저 물어보는데 없다고 하면 2) 가입하라는 QR 코드가 나옵니다. 3) 멤버십 없이 주문하겠다고 하는 버튼이 아주 작게 표시되어있습니다. 여기에 4) 메뉴를 단품으로 주문할 때마다 세트로 추가하겠냐고 물어보고, 5) 세트를 추가해도 사이즈업이나 토핑 같은걸 추가하겠냐고 물어봅니다. 주문을 다하고 나면 6) 다른 메뉴를 추천하는 화면을 보여주고, 다시 한번 7) 멤버십 가입 유도를 한 다음에야 결제 화면으로 넘어갑니다. 뭐 이정도면 한국이랑 다를바 없다고 봐도 될 것 같아 보입니다.

어차피 자본주의 하에서 서비스업의 노동을 소비자에게 전가시키는 의도는 똑같기 때문에, 한국이 다소 빨랐을 뿐 이런 추세는 전세계적인 흐름인 것 같습니다. 오히려 유럽 쪽은 한국에 비해 선택지가 더 많고 추천해주는 것도 많다보니 점원 대신 노동하는 느낌이 더 강하게 들었습니다.

친환경 이슈

유럽에서 친환경 이슈는 한국보다 훨씬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애플이 왜 그렇게 친환경 친환경 하는지도 조금 이해가 갔다고 할까요?

일회용품의 메카일 것 같은 맥도날드에서도 Reusable 용기에 대한 옵션을 제공하고 있고, 박물관이나 기차, 대중교통도 일회용 티켓보다 NFC나 QR 코드 같은 전자적인 방식을 더 권장하는 것은 인상적이었습니다. 독일 같은 경우는 “판트”라고 하여 페트병을 보증금으로 바꿔주는 제도도 활발하게 운영 중이었구요.

하지만 약간 코스프레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맥도날드는 Reusable 용기를 제공하지만 Reusable 옵션이 더 비쌉니다.(물론 보증금이 포함된 값) 그리고 여전히 일회용 용기 옵션을 선택할 수 있고 많은 사람들이 일회용 옵션을 선택합니다. 차라리 매장에서 먹을 때는 다회용 용기를 주도록 강제하는 한국 방식이 차라리 더 나아보였습니다.

독일의 “판트”도 상당히 좋은 제도이긴 한데, 이게 잘 자리잡았다는 독일조차 관리가 제대로 되고 있진 않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일단 판트를 할 수 있는 기계 자체가 많이 없습니다. 수도인 베를린에서도요. 대형 마트 정도는 가야 볼 수 있었습니다. 있다고 해도 망가져 있는 곳도 꽤 많았습니다. 대형 마트의 판트 기계는 거의 노숙인들이 전세내고 있는 판국이었습니다. -_- (보증금 환급 때문에 노숙인들이 페트병을 많이 노리고 있음)

그리고 티켓의 전자화는.. 말이 좋아 종이를 아끼는 거지 앞의 키오스크 사례처럼 노동을 소비자에게 외주화 시키는게 더 주요한 동기인 것 같아서 이것도 좋게만 보이진 않더군요.

하지만 코스프레라도 신경을 쓴다는 것은 또 다른 일이니까요. 한국보다는 확실히 사람들이 환경 이슈에 대해 받아들이는 온도는 훨씬 높았습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또 좋은 제도들이 나오고 기업들도 그에 맞춰서 움직일 수 있겠죠.

마무리

저도 나름대로 유럽병에 걸려있던 환자였는데 이번에 다녀오면서 많은 것들이 깨지기도 했고 또 어떤 것들은 배워오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이번 유럽에 다녀보면서 느꼈던건 세가지였습니다. 1) 애플페이가 널리 쓰이게 되면 진짜 편하겠구나 2) 친환경 코스프레라도 엄청나게 신경 쓰는구나 3) 그래도 인프라는 한국이 정말 잘 되어있구나 하는 점이었죠.

특히 한국에서 마음에 안들었던 것들, 특히 키오스크 같은 것들이 유럽이라면 뭔가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방식으로 다르겠지 싶었지만 결국 다르지 않고 오히려 더 심한 모습들을 보면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람 사는게 다 거기서 거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024년 기준으로 보자면 유럽보다 한국이 기술적인 인프라는 더 나은 것 같습니다. 세상에서 인터넷이 가장 빠른 나라가 아니게 된지는 좀 되었지만 그래도 공용 무료 Wifi는 엄청나게 빠른 편이고, 전국 어디에서나 핸드폰이 잘 된다는 것도 정말 새삼스럽지만 대단합니다. 진짜 국뽕이 차오를 정도.

애플페이, 특히 교통카드만 해결된다면 정말 좋을 것 같습니다. 타지에서 온 말 안통하는 관광객 입장에서는 아이폰에서 교통카드를 바로 구매할 수 있다는 메리트가 정말 좋거든요. 애플페이에서 교통카드가 지원된다면 아이폰 사용하는 내국인 뿐 아니라 외국인들에게도 엄청난 메리트가 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