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회고

다사다난했다는 말조차 무색했던 2024년이 끝나가고 있습니다. 결산을 올해가 가기 전에 써야겠다고 벼르고 있었지만 12월의 마지막에 이르러 무거운 마음으로 결산을 하게 되었네요. 결산이라기보다는 회고라고 부르는게 더 맞을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도 여러 일이 있었던 2024년을 짧게나마 회고해보려고 합니다.

여행

올해는 본의 아니게 여행을 많이 다녔습니다. 부산, 제주, 강릉에도 갔었고 11월에는 한달의 휴가를 받아서 유럽에도 다녀왔습니다.

여행은 경험을 통해 사람의 인생관을 바꿔준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전 별로 믿지 않는 말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여행 다니면서 그래본 적이 별로 없었거든요. 하지만 올해 다녔던 여행지는 각자 나름대로 제 인생과 시야를 넓혀주고 마음을 좀 더 넓게 만들어주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에펠탑보다 비현실적이었던 타워브릿지

유럽 여행만해도 저한테는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게 해주었는데, 그게 고차원적인게 아니라 먹는 것과 싸는 것(?)에서 오는 것이었습니다. 독일 공항에서 고작 빅맥을 눈물을 흘리며 먹었고 -_- 몽마르뜨 언덕에서 화장실을 찾으려고 2시간 돌아 다니면서 웃기지만 한국에서 있었던 모든 것들을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공항에서 맛을 보고 감동해서 울었던 빅맥

여의도 집회와 같은 많은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도 화장실을 어디에서든 갈 수 있었고(그것도 공짜로!) 선결제 문화를 통해 어디든 음식이 풍족했던 것들을 보면서 참 감사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뿐 아니라 일상에서 당연한듯이 누리고 있는 것들에도 감사하게 되었습니다. 저차원적인 것에서부터 올라오니 그 모든 것들이 그렇게 느껴지더군요.

앞선 국내 여행도 각각 나름의 방식대로 저에게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부산은 올해만 두번 가면서 서울과 다른 대도시의 풍경과 삶을 볼 수 있어서 좋았고,

부산에서 귀여웠던 동백이

제주는 여러번 가봤음에도 이번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사실 이게 남들이 하는 방식이지만)으로 다녀와서 좋았습니다. 더위에 죽을 뻔 했지만 그것도 새로운 경험 중 하나였구요.

폭염주의보가 두번 내렸던 성산일출봉

강릉은 커피와 빵, 바다, 숲을 한번에 다 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그 유명한 강릉 커피

여러 여행을 다니며 앞으로 경험에도 많은 투자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불안

개인적으로 올 한해는 “불안”한 한해이기도 했습니다. 건강적 문제도 있었고 집안 문제도 있었습니다. 아 그리고 연말에는 나라 문제도 있었군요. 제 인생에는 여러가지 문제들이 산적해있었고 전 그에 맞서지 못하고 불안해하기만 했습니다.

아이고 불안아..

대부분 그런 불안들은 실존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나라 문제 빼고) 상당히 막연한 불안이었죠. 정체도 알 수 없고 결과도 알 수 없는 불안의 나날이 계속 되었던 한해였습니다. 위에서 말한 여행들도 사실은 이 불안으로부터 도망다녔던 것들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심리 상담을 시작하고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마음의 근육을 만들어가고 있는 중입니다. 모 광고처럼 “불안을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없다”지만 적어도 불안이 느껴졌을 때 그 불안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빨리 끝낼 수 있는 방법을 배워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다녔던 여행들이 이 마음의 근육에 도움이 되었구요.

아직 모든 문제들에 정면으로 맞서지는 못하고 있지만 이렇게 길러진 근육들이 더 자라면 맞설 수 있게 되지 않을까요? 2025년에는 그렇게 되길 바라봅니다.

당연한 것은 없다

올해가 지나가는 와중에 제 머리 속에 지금 남는 하나의 구절이 있다면 “당연한 것은 없다”는 것입니다.

유럽에서는 화장실이 당연한게 아니었고(자꾸 언급하는거 보면 정말 한이 맺히긴 한듯) 맛있는 음식도 당연한게 아니었습니다. 파리 디즈니랜드에서 웃지도 않고 묵묵히 일하는 불친절한(?) 직원들을 보면서 우린 너무 당연하게 과로하고, 또 서비스업을 하시는 분들에게 당연히 친절을 요구하고 있는건 아닌가 스스로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아가 제가 일하는 방식에 대해서도 돌아보게 되었구요.

생각해보면 당연히 그런 것은 하나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민주주의도 당연하게 얻어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최근의 내란 사태가 깨닫게 해주었고, 당연하게 오고 가는 일상과 시간도 당연하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지금 있는 이 자리도, 글을 쓰고 있는 컴퓨터도 모두 당연하게 주어진 것이 아닌거죠.

“당연한 것은 없다”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나니 마음이 좀 넓어진 느낌도 들고 그동안 느끼던 불안도 아주 조금은 작아진 것 같습니다.

“불안이 작아진다고?”

그리고 일상을 받아들이는 자세가 조금은 달라졌다고 할까요. 당연한 것은 없다보니 일상 자체가 소중해졌습니다. 매주 월요일마다 “아오 씨X 일하기 싫어”라고 맨날 되뇌었는데 “아오 씨X 그래 돈벌러 가자”라고 되뇌니 출근길이 조금은 다르게 느껴집니다. 가장 싫어하는 출근 길 자체도 아주 조금은 행복하다고 느낄 수 있게 된거죠.

당연한 것은 없습니다. 그래서 더 행복하고 감사하게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금 제가 바라는게 있다면 2025년에도 이 감정을 제발 좀 오랫동안 유지했으면 좋겠다는 겁니다. -_-세월의 흐름 속에 또 금방 잊어버릴까봐요.

짧게 쓰려고 했는데 또 길어졌네요. =_=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이 계시다면, 2025년에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