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기업의 수평 문화

수평적 조직 문화를 가진 기업들의 인사 채용 후기에 보면 “처음 출근했는데 팀장님이 신입 사원인 저에게 의견이 어떤지 물어보시더라구요” 같은 후기들을 볼 수 있다. 나도 나름대로 수평 문화를 가진 기업에서 근무했었고 근무 첫날 저 질문을 똑같이 받았었다.

하지만 저 사건 자체가 그렇게 큰 의미는 없다. 일단 경력이든 신입이든 처음 들어간 회사의 사정을 알리가 만무하다. 의견을 들어보자고 하지만 사실 그 의견대로 해줄 생각도 없을 것이다.(내가 팀장이어도 그럴 것 같다.)

그러니 그렇게 큰 기대는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수평 조직을 갖춘 회사들의 구성원도 한국인이다. 수평 조직의 구성원들은 수직적인 관료제의 효율성이 더 낫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매우 많다.

대부분 관료제가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질 경우 무늬만 수평조직이지 거의 관료제나 다름 없이 돌아가는 경우가 많다. 우리만해도 결국 시간이 지나니 팀 내에서 중간 관리가 생기고 또 중간의 중간 관리가 생기고…

관료제가 나은 경우는 어떤 경우일까? 바꿔말해 수평 조직이 수평 문화를 유지하기 힘들어지는 시기는 언제일까? 내 생각엔 단위 조직의 팀 구성원이 많아지거나, 기능 단위로 팀을 분리할 경우인 것 같다.

일단 팀 구성원이 많아지면 기본적으로 관리하기가 힘들어진다. 게다가 기능 단위(기획팀, 개발팀, 디자인팀 등)로 팀을 조직할 경우 같은 팀이지만 옆에 있는 사람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는 경우가 왕왕 생긴다. 프로젝트 단위 팀에선 모두가 관련된 일을 하고 커뮤니케이션을 빈번하게 하지만 기능 단위 조직에서는 같은 팀보다 다른 팀과 일을 더 많이 한다.

팀장 입장에서 팀에 사람은 많은데 이 사람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는 팀장도 잘 모른다. 그러다보니 자연히 중간 관리자를 두고 싶은 욕구가 생길 수 밖에 없다.

이런식으로 “관료화된 수평 조직"의 문제는 관리자나 말단이나 모두 같은 직급이다. ~장 이 아니라 제어할 수도 없고 "설득"을 해야한다. 여기에서 관리자의 피로감이 점점 늘어난다. 팀장도 아닌데 팀장 일을 해야하는 경우도 생긴다.

스타트업이나 프로젝트 단위의 조직에서 수평 조직 문화는 매우 훌륭한 효과를 낸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많은 기업도 그런 문화를 도입하고 있는 추세다. 그런데 우리나라 경영자들은 프로젝트 단위 조직은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팀을 기능 단위로 묶고 프로젝트에는 마치 TFT처럼 각 팀에서 인원을 차출한다. 이쪽이 인력을 탄력적으로 사용할 수 있고 관리도 쉽기 때문이다.

사실 정답은 없다. 하지만 수평 문화를 유지하려 한다면 제대로 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적어도 한 팀이 100명이 넘어가거나, 그 팀이 "디자인팀"이란 이름으로 전사의 디자인을 다 맡고 있는 식이라면 내 생각에 그런 곳에서 수평 문화는 제대로 정착되기 힘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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