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워치 시리즈 1 사용기

다소 늦은 애플워치 시리즈 1 사용기입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저는 원래 페블 타임라운드를 사용하고 있었습니다.(페블 타임 라운드 사용기) 페블 타임라운드는 개인적으로는 정말 만족스러운 스마트워치였습니다. 스마트워치라고 해서 스마트워치스러운 디자인(?)은 정말 싫었거든요. 페블 타임라운드는 정말 그야말로 시계 같은 디자인을 하고 있어서 만족스러웠습니다.

하지만 그러던 차에 페블이 핏빗에 인수되면서 망했죠. 페블 타임라운드의 최신 펌웨어는 이런저런 버그가 많은 상태였습니다. 수정해야할 버그는 많은 상태지만 페블은 모든걸 정리하고 핏빗의 소프트웨어 부서로 넘어가 더이상의 지원은 없습니다. 게다가 최근들어 충전이 10번 꽂으면 7번은 안될 정도로 불안정한 상태였는데 이를 수리해줄 제조사도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올초에 본의 아니게 병원 신세를 져야했던 일도 있었습니다.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어 본격적으로 애플의 건강 기능을 활용해볼까 싶었는데 페블로는 할 수 있는게 많지는 않더군요. 페블 앱 자체가 애플 플랫폼에서는 권한이 많이 제한되어있기도 하고, 또 페블의 피트니스 트래킹 기능이 다소 약한 측면도 있습니다. 언젠가 트위터에도 썼지만 페블의 건강 기능은 남들도 있으니까 있는 수준이었거든요.(사실상 만보계 밖엔 없습니다.)

애플의 건강 기능을 좀 더 활용하기 위해(애플의 건강 앱 및 건강 생태계와 관련한 글은 다른 글에서 좀 더 자세히 다루겠습니다.) 애플워치를 다시 사야하나 하는 고민에 빠졌습니다. 예전에 애플워치를 샀다가 아직은 여러모로 시기상조라는 생각이 들어서 반품하고 페블로 왔었기 때문에 선뜻 구매할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스마트워치 업계에서는 독보적인 1위를 달리고 있고, 아이폰을 쓰는 입장에서는 페블이 망한 이상 별다른 대안도 없기 때문에 애플워치를 다시 구매하기로 하였습니다.

애플워치는 어느덧 2세대에 이르렀는데 사실 겉모습만 봤을 때는 예전에 사용했던 애플워치와 별로 달라진게 없습니다. 시계치고 상당히 두꺼운 외형을 갖고 있고 사각형의 시계 모양도 그대로입니다. 듀얼코어 채용, 향상된 방수 등급, GPS 내장 정도로 내부적인 개선만 이루어졌습니다. 2세대는 그 중에서도 시리즈 1과 시리즈 2로 나뉩니다. 시리즈 1은 애플워치 1세대와 동일하지만 프로세서만 2세대와 동일한 듀얼코어 프로세서를 씁니다. 개인적으로는 애플워치 시리즈 2의 기능까지는 필요없어서 시리즈 1을 구매했습니다.

애플워치로 다시 돌아오고 나니 새삼 애플이 왜 스마트워치 시장에서 1위를 하고 있는지 알 것 같았습니다. 사실 애플워치는 아직 제가 시계에서 바라는 많은 점이 부족합니다. 디자인은 너무 두꺼워서 스마트워치인 티가 팍팍 나고, 시계 화면은 거의 꺼져있어서 특정한 제스쳐를 취하거나 화면을 터치해야만 볼 수 있습니다. 시계를 흘끗 보는 방식으로 시계를 볼 수 없는 것이죠. 게다가 배터리도 하루를 가기가 힘들어 매일 충전을 해줘야 합니다.

애플워치의 이런 부분과 페블은 완벽히 정 반대에 있습니다. 페블 타임 라운드는 일반 아날로그 시계만큼 얇고 시계 화면은 항상 켜져있어서 일반 시계처럼 흘끗 보는 식으로 시계를 볼 수 있습니다. 게다가 배터리도 애플워치에 비하면 오래가는 편이죠. 페블 타임 라운드는 배터리 지속 시간이 1일 ~ 2일 정도이지만 그래도 애플워치보다는 오래가는데다가 충전 속도도 빨라서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페블은 이런 시계로서의 특징 외에는 스마트워치로서 아쉬운 점이 많았습니다. 서드파티 앱 중 쓸만한게 상당히 적은 편이었고 피트니스 기능은 앞에서 말한 것처럼 있어야하니까 있는 수준이었습니다. 또한 페블은 스마트폰에서 오는 알림을 단순히 전달만하기 때문에 뭔가 건강을 위한 사용 패턴을 바꾼다는 본래 목적에는 부합하긴 좀 어려운 부분이 있었습니다.

애플워치는 당연하게도 애플이 만드는 시계다보니 애플의 생태계에 자연스럽게 녹아듭니다. 아이폰만큼은 아니지만 애플워치도 엄청난 수의 앱이 있고 이런 양질의 서드파티 앱을 활용하는 것은 페블에서 느낄 수 없었던 즐거움 중 하나였습니다. 건강과 관련된 기능도 Waterminder로 하루에 물을 얼마나 마시는지 기록한다거나 운동앱으로 얼만큼의 운동을 하는지 매일 체크하는 것도 즐겁습니다. 또한 조용하던 페블에 비해 애플워치는 끊임없이 잔소리를 해대어 사용자의 사용 패턴을 바꿔놓습니다. 아이폰의 건강 기록을 체크해서 매주 적당한 운동량을 정해주기도 합니다. 여러모로 애플워치는 소소하지만 삶을 변화시킨다는 생각이 듭니다.

처음 애플워치를 사용했을 때는 사실 이 관점에서 보지는 못했습니다. 어쨌거나 애플에서 만든 새로운 라인의 제품이고 이 제품이 기기적으로 얼마나 완성되어있고, 디자인은 얼마나 이쁜지, 시계로서는 얼마나 좋으며 얼마나 혁신적인지에만 초점을 맞췄던 것 같습니다.

애플워치는 이 관점에서 보자면 여전히 아쉬운 제품인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다른 관점에서 다시 본 애플워치는 스마트워치 시장에서 유일하게 단순한 것들을 천천히 바꿔나가며 사용자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제품이었습니다. 물론 이건 애플이 만들어놓은 생태계와 밀접하게 결합한 결과겠지만 말이죠. 단순한 기기 하나가 삶을 바꿔가는 경험을 준다는 것은 흔한 일은 아닙니다.

물론 애플워치 시리즈 1은 여전히 아쉬운 점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속도 부분인데요, 애플워치 시리즈 1은 애플워치 1세대에 비해 듀얼코어 프로세서를 탑재해서 많이 빨라졌다고 하지만 개인적으로 체감은 되지 않았습니다. 애플워치 1세대는 정말 많이 느렸고, 시리즈 1도 시리즈 2와 같은 프로세서를 쓴다고 하지만 여전히 느립니다. 시계라는 물건이 장시간 팔을 들고 사용하긴 힘들기 때문에 말그대로 터치 한번으로 실행해서 “힐끗” 지나쳐 볼 정도로 빨라져야 합니다.

다행히도 Watch OS 3은 이런 부분에서 많은 고민이 보였습니다. WatchOS 3은 그 중심을 앱으로 바꿔놓은 것 같습니다. Dock을 통해 자주 쓰는 앱을 미리 로딩해놓기 때문에 앞에서 말한 속도 문제도 WatchOS 3에서 어느정도 해결된 느낌입니다. 사실 애플워치를 아무리 다양하게 쓴다고 해도 자주 쓰는 앱은 정해져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여전히 동그라미가 모여있는 형태의 앱 런쳐는 개선되어야할 것 같습니다. 아이폰의 스프링보드에 비해 직관성도 떨어지고 찾기도 힘들기 때문입니다.

애플워치에서 한가지 더 아쉬운 점을 꼽는다면 여전히 두꺼운 두께인 것 같습니다. 최근의 스마트워치 경향으로 본다면 애플워치는 오히려 얇은 편에 속하지만 여전히 셔츠 소매에 잘 안들어가는 크기입니다. 이 두께 부분은 애플워치 시리즈 2의 경우에는 오히려 더 두꺼워졌는데, 이 부분은 다음 세대에 해결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덧. 개인적으로 애플워치에서 가장 잘 쓰고 있는 앱 중 하나는 포켓몬 고입니다. 애플워치 구매를 고려하는 가장 강력한 요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아이폰이 켜져있지 않아도 걸음수가 기록된다는 점이 가장 크고 포켓스탑 등에서 아이템을 아이폰에서 앱을 실행하지 않고도 받을 수 있다는 점이 좋습니다. 포켓몬고를 제대로 즐길 수 있는 아이템이 아닐까 싶습니다.(물론 전용 아이템인 포켓몬고 플러스보다 10배가 비싸다는 점이 함정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