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폰 11 프로 1년 사용기

오늘은 1년 후에 리뷰를 올리는 이 블로그의 전통에 따라 아이폰 11 프로 사용기를 써볼까 합니다. 이 블로그를 보시는 분들이라면 아시겠지만 저는 이런저런 기기를 좋아해서 많이 갖고 있습니다. 최대한 안 겹치도록 슬림하게 유지하려 해도 벌써 스위치, 아이패드, 아이폰, 맥북, 게임 데스크탑, 애플워치 등 물욕의 화신이 되어있는 상태죠.

이렇게 이런저런 기기를 갖고 있다보니 이중 가장 필수적이면서도 사용 비중이 가장 낮은 물건이 바로 스마트폰입니다. 스마트폰은 일상의 많은 것들을 담당하고 있지만 저 같은 경우 장시간을 요하는 작업(웹서핑이나 동영상 등도 포함해서)은 다른 기기에서 합니다. 그렇다보니 스마트폰은 항상 갖고 있지만 오히려 사용 비중은 낮은 편이죠.

사실 제가 아이폰 11 프로를 구매할 이유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스마트폰의 카메라를 많이 이용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전문적인 수준으로 사용하는 것도 아니었으니까요. 구매 가격(146만원..ㄷㄷ)만해도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맥북 에어(129만원)보다 훨씬 비쌌으니.. 쉽게 말해 돈 ㅈㄹ이었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폰 11 프로를 구매한 이유는 특유의 디자인 때문이었습니다. 특히 뒷면이요. 출시 당시에는 카툭을 전면에 내세운 만큼이나 욕도 많이 먹었던 디자인었지만 전 한눈에 반했습니다. 무광의 스페이스 그레이 마감과 메카닉한 카메라 렌즈 세개의 디자인 배치가 좋았죠.


디자인

저는 반했던 디자인이긴 하지만 아이폰 11 프로의 디자인은 조금 오래된 디자인입니다. 전반적인 디자인은 아이폰X부터 내려온 노치 형태의 동그란 디자인을 그대로 따르고 있습니다. 이 디자인은 아이폰 12 시리즈에 와서야 아이패드 프로 같은 플랫한 디자인으로 변경되었죠.(언제부턴가 4년에 한번씩 디자인을 바꾸는 애플..)

위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아이폰 11부터는 카메라를 가리지 않고 오히려 대놓고 강조하는 형태의 디자인을 갖추고 있습니다. 특히 프로 시리즈는 그 강도가 더욱 강하죠. 다른 제조사들이 카메라를 숨기거나 본체와의 일체감을 주기 위해 여러 트릭을 사용하는 것과 상반된 디자인입니다.

사실 그 덕분에 국내 외에서는 많은 호불호를 일으켰습니다. ‘인덕션’이라 불리며 여러모로 패러디 되기도 했죠. 뛰어난 마감 덕분에 실제로 보면 그렇게까지 흉한 디자인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거부감이 든다는 반응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애플은 아이폰은 12 시리즈에도 이 디자인을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으니.. 이젠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디자인이 되었죠.

가장 유명한 코만도 패러디(…)

아이폰 11 프로는 무광의 마감을 도입했습니다. 특히 스페이스 그레이 컬러를 좋아하는 저로서는 아이폰 11 프로의 마감은 첫눈에 반했죠. 사실 이 이유 하나 때문에 아이폰 11 프로를 구매했습니다. 제가 한 가장 비합리적인 소비였죠. 하지만 지금도 만족도만큼은 매우 큽니다.

아이패드 프로와도 깔맞춤
맥북 에어와도 깔맞춤

이 무광 디자인은 아이폰 12 프로 시리즈에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아마 아이폰 11 프로를 구매하지 않았다면 아이폰 12 프로의 퍼시픽 블루나 그래파이트 마감을 샀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만큼 아이폰 11 프로에서 가장 좋아하는 부분입니다.

카메라

아이폰 11 시리즈부터 ‘프로’라는 제품 라인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애플의 ‘프로’ 라인은 뭔가 전문적으로 쓸 수 있는 물건들을 의미하죠.(물론 요즘은 그냥 고급형 제품을 의미하는 느낌이긴 합니다만..) 아이폰 11 프로에 프로가 붙은 이유는 프로 페셔널한 레벨로 사용할 수 있다는 카메라 때문이었습니다.

아이폰 11 프로는 소개할 때부터 카메라로 시작해서 카메라로 끝날만큼 카메라 성능을 엄청 강조한 스마트폰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도 일반 모델과 ‘프로’ 모델을 구분할 정도로 카메라 성능이 그렇게 차별화되었던 것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반면 아이폰 12 프로에 와서는 몇가지 프로 다운 기능이 들어가서 제대로된 차별화를 보여줬죠.(일반 사용자들은 쓰지 않을 기능들이라는 점에서 더욱)

아이폰 11 프로의 사진 성능은 한번 보시는게 몇가지 설명보다 더 빠르겠죠. 제가 그동안 아이폰 11 프로를 들고 다니면서 찍었던 사진들을 첨부해봤습니다. 대부분 리사이징 정도만 진행한 사진입니다. 저처럼 취미 레벨이라면 메인 디지털 카메라로서도 손색 없는 성능인 것 같습니다.

아이폰 12 프로도 그렇고 아이폰 11 프로도 그렇지만 일반 모델과 가장 두드러지는 차이는 망원 렌즈의 유무입니다. 일반 모델에는 망원 렌즈가 없고 광각 렌즈와 초광각 렌즈만 존재하죠. 사실 저는 아이폰 11 프로의 카메라 중 망원 렌즈를 가장 많이 사용합니다. 망원렌즈는 다른 렌즈에 비해 사물을 덜 왜곡 시키기 때문입니다.

일반 광각 렌즈로 찍은 사진. 스마트 키보드 하단 부가 길쭉하게 왜곡되어 보입니다.
망원렌즈로 찍은 사진에서는 왜곡이 크게 없어집니다.

이런 망원 렌즈의 특징 때문에 다음 아이폰도 프로 라인을 쓰게 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듭니다.

아이폰 11 프로 카메라에서 주목할만한 또 다른 기능은 딥퓨전입니다. 딥퓨전은 사진의 디테일을 몇 배 상승 시켜 상당히 인상적인 사진을 찍을 수 있게 해줍니다. 아이폰 11 프로에서는 실내 조명과 망원 렌즈 조합에서 동작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딥퓨전은 항상 동작하는게 아니라 동작 여부를 알기가 좀 어렵습니다.) 주로 망원 렌즈를 사용해서 촬영합니다. 딥퓨전으로 찍은 사진들을 보면 확실히 일반 아이폰 사진에 비해 디테일이 잘 살아있죠.

주로 이런 질감이 드러나는 사진에서 딥 퓨전의 장점이 더 잘 살아납니다.

배터리

아이폰 11 프로는 처음부터 끝까지 카메라 성능이 가장 강조된 스마트폰이었지만 사실 아이폰 11 프로를 쓰면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배터리였습니다.

워낙 스마트폰의 사용 비중이 낮긴해도 지금까지 쓰면서 50% 이하로 내려간걸 별로 본적이 없을 정도입니다. 지금까지 썼던 아이폰들은 퇴근하고 나면 배터리를 충전해줘야했지만, 아이폰 11 프로는 자기 직전에만 한번 충전 해주면 충분했습니다.

아이패드 시리즈가 배터리가 오래가기로 유명하지만 아이폰 11 프로는 같이 사용하고 있던 아이패드 프로보다 체감상 더 오래 지속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아이폰 11 프로의 배터리 성능의 비결은 사실 간단합니다. A13 프로세서에 저전력 기능이 들어가긴 했지만 물리적인 배터리 용량 자체가 많았습니다. 결국 저전력 기술도 배터리 용량에는 이길 수 없는 걸까요, 벤치마크에서도 아이폰 12 프로에 비해 더 오래가는 성능을 보여줬죠.

하루하루의 배터리 성능도 인상적이었지만, 배터리 수명이 더욱 인상적이었습니다. 2020년 1월에 구매하고 2021년 1월까지 아이폰 11 프로의 배터리 성능 상태는 100%였습니다. 그러다가 2021년 2월에 98%로 내려왔죠. 현재는 98% 상태로 쭉 이어지고 있는 상태입니다.

하루 종일 밖에서 헤비하게 써도 잘 닳지 않는 배터리는 쓰면서 많은 안정감을 주었습니다. 내가 폰으로 무슨 짓을 해도 하루 종일 버텨준다는 안정감이요. 덕분에 항상 가방에 있던 외장 배터리를 두고 다닐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내구성

아이폰 11 프로는 146만원짜리 고가의 스마트폰이자 카메라이기 때문에 당연히 애플 케어 플러스를 들었습니다.(정작 맥북과 아이패드에는 안듦) 하지만 애플 케어 플러스를 들어놓고 아직 한번도 교환을 받거나 수리를 받은 적이 없습니다. 어쩌면 앞으로도 못 쓰지 않을까 하는 불길한(?) 예감마저 듭니다.

아이폰 11 프로는 지금까지 썼던 아이폰 중 내구성이나 마감면에서 이렇다할 말썽이 없었던 유일한 아이폰이었습니다. 그동안 썼던 아이폰 들은 다 이래저래 내구성 이슈가 있었거든요.

아이폰 5는 처음 구매부터 색상 벗겨짐과 변색이 어느정도 있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LCD 테두리가 점점 녹색이 되는 현상이 있었습니다. 지금 아이폰 5를 켜보면 가운데 작은 영역을 제외하곤 전체가 다 녹색이 된 상태더군요.

그 다음 아이폰이었던 아이폰 7 플러스는 악명 높은 제트블랙을 썼었죠. 제트블랙이 약했던 스크래치 문제는 사실 각오하고 있었기 때문에 큰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도장이 점점 벗겨지는 문제는 좀 심각했죠. 이 벗겨짐 문제는 아직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아이폰 11 프로는 지금까지 한번도 내구성 측면에서 문제가 없었습니다. 색이 벗겨지거나 디스플레이가 이상해지거나 스크래치가 난다거나 하는 문제가 없었죠.(참고로 전 케이스나 액정 보호 필름 없이 사용합니다.) 아이폰에서 이런저런 내구성 문제가 생기지 않는게 좀 낯설긴 하지만 매우 마음에 드는 부분입니다.

무게

배터리 용량 깡패인데다 내구성도 좋았지만 그로 인해 아이폰 11 프로의 가장 큰 문제는 무게였습니다. 아이폰 11 프로는 크기 자체는 과거 일반 아이폰 사이즈이지만 무게는 패블릿인 아이폰 7 플러스와 같은 무게를 지니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크기에 비해 무게가 엄청나게 증가한 것이죠.

배터리를 비롯해 여러 장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무게는 손에 들고 사용하는 스마트폰으로서는 치명적인 부분이었습니다. 장시간 손에 들고 사용하다보면 확실히 피로감이 이전의 아이폰들과는 차원이 달랐습니다.

이후에 나온 아이폰 12 시리즈는 이런 단점을 보완해서 상대적으로 가볍게 출시되었습니다. 아이폰 11 프로에 비하면 비슷한 사이즈의 아이폰 12 mini나 아이폰 12 pro의 무게는 깃털처럼 느껴지더군요.(물론 배터리 용량이 줄어든 탓이긴 합니다.)

이 무게 때문에 사실 아이폰 12 시리즈가 나왔을 때 아이폰 12 mini로의 기변을 심각하게 고민했었습니다. 하지만 구매한지 얼마 안된 상태라 포기했죠. 그렇지만 그런 이유가 아니라고 해도 망원 렌즈 때문에 이후에라도 프로 라인을 버릴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마무리

아이폰 11 프로는 저한테는 스마트폰이자 동시에 메인 디지털 카메라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아마 당분간은 계속 유일한 카메라로서 역할을 해줄 것 같습니다.

무게가 늘어나는 주범이지만 대용량의 배터리 자체는 아이폰 11 프로를 쓰는데 있어서 많은 안정감을 주었습니다. 아무리 많은 사진을 찍고 폰에서 보정하고 다시 찍고 보정하고 음악을 듣고 게임을 하는 등의 여러가지 작업을 해도 하루종일 버텨줘서 따로 외장 배터리나 충전기를 갖고 다니지 않게 되었죠.

아이폰에 ‘프로’라는 이름이 붙은 최초의 모델이었지만 사실 프로라고 할만한 기능들을 많이 보여주지 못했던 모델이기도 합니다. 12 Pro에서는 좀 더 전문가들이 많이 사용할 수 있는 기능들이 들어갔죠.

하지만 전체적으로 봤을 때 아이폰 11 Pro와 아이폰 12 Pro의 차이는 디자인을 제외하면 아직 적은 편입니다. 즉 아이폰 11 프로를 쓰고 있다면 아직 아이폰 12 Pro로 넘어갈 만한 이유(와 핑계 거리)가 적다는 뜻이죠.

지금 애플 스토어에서는 공식적으로 단종된 모델이지만, 아이폰 11 프로는 지금 기준에서도 충분히 추천할만한 모델입니다. 카메라의 성능은 지금봐도 상당히 좋은 편이고, 물리적인 배터리 용량이 커서 아이폰 12 시리즈보다 더 오래가는 배터리 성능을 보여주기 때문이죠. 구매 가격이 비쌌던만큼 앞으로도 오랫동안 옆에서 제 역할을 해주었으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