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패드 프로(2018) 한달+ 사용기

요즘 아이패드 프로로 재밌게 놀고 있습니다. 맥북에어 처음 샀을 때 이것저것 앱을 깔아보면서 써봤던 것처럼 아이패드 프로도 비슷하게 쓰고 있습니다. 웃기게도 애플이 “프로”라는 이름을 붙여놓으니 아이패드 미니 쓰던 때와는 다르게 생산적인 용도를 찾아보면서 써보게 됩니다. 확실히 예전보다 앱스토어를 기웃거리는 비중도 늘어났죠. 아이패드 프로를 쓴지 어느덧 한달이 넘어 거의 두달 정도 되어가는 것 같습니다. 어떤 것이든 한달 써보고 사용기를 올리는 이 블로그의 특성대로 아이패드 프로 사용기를 써볼까 합니다.






디자인과 디스플레이



아이패드 프로의 가장 큰 장점은 디자인인 것 같습니다. 그동안 아이패드는 2014년에 나왔던 아이패드 에어2 이후로 다 비슷비슷한 디자인을 채용하고 있었습니다. 아이패드 프로 1세대와 2세대는 새로운 라인이었지만 아이패드 프로 2를 늘려놓은 형태에 불과했고, 2017년부터 새로 등장한 일반 아이패드 라인은 아이패드 에어1의 디자인을 재탕한 것이었죠.

이번 아이패드 프로는 모든 것을 바꿨습니다. “바꾸지 않은 것은 그 이름 뿐”이라는 아이패드 프로의 광고 카피처럼 디자인만 봤을 때는 같은 기기인지 모를 정도로 바뀌었습니다. 새로운 아이패드 프로의 디자인은 애플이 아이패드 프로를 어떤 위치에 놓고 싶은지를 노골적으로 나타냅니다. 각진 디자인과 스페이스 그레이, 실버의 색상 마감은 기존의 아이패드 보다는 맥북 프로에 가까운 느낌입니다. 포트도 라이트닝을 쓰던 전세대 제품과 달리 맥북처럼 USB-C로 바뀌었죠. 여러모로 새 아이패드 프로는 디자인적으로 애플의 랩탑 PC에 가까워졌습니다. 애플은 디자인 언어적으로 아이패드는 랩탑 PC다라고 말하고 싶은 것처럼 보입니다.


개인적으로 모던 맥북 프로의 디자인을 좋아했기 때문에 아이패드 프로에 맥북 프로의 디자인이 채용된 것은 정말 좋은 것 같습니다. 다만 디자인이 각지게 되면서 아이패드 프로가 바닥에 놓여있을 경우 잡기가 조금 불편해졌습니다. 예전엔 모서리가 둥근 부분을 잡고 들어올리면 그만이었지만 지금은 틈을 찾아(…) 들어올려줘야 합니다. 그리고 각진 디자인 때문에 잡기가 약간 불편해지고 잡는 자세에 공간이 생기지 않아서 쉽게 땀이 찹니다.

일반 아이패드가 애플 펜슬을 지원하게 되면서 아이패드 프로와 아이패드를 구분하는 가장 중요한 정체성은 디스플레이가 되었습니다. 아이패드 프로의 디스플레이는 지금까지 봤던 디스플레이(레티나 아이맥을 포함해서) 중 가장 좋은 것 같습니다. 아이패드 미니4의 디스플레이(아이패드 에어 2와 동일)를 쓰면서 더이상 LCD를 쓰는 이상 아이패드 디스플레이가 좋아질 수 있을까 싶었는데 아이패드 프로의 디스플레이는 한층 더 뛰어난 화질을 보여줍니다.


아이패드 프로의 화질을 잘 느끼려면 아이패드 프로에 독점적으로 있는 기본 배경 화면을 사용해보시면 됩니다. 복잡한 패턴일 수록 더 뛰어난 화질로 보이는데, 기본 배경화면을 보고 있자면 화면이 아니라 마치 종이에 인쇄된 것처럼 보입니다. 이런 느낌을 받는건 아이폰4에서 레티나 디스플레이가 도입된 이후로 처음 느껴보는 것 같습니다.

전세대 아이패드 프로에서 탑재되었던 디스플레이 기술은 그대로 탑재되었습니다. 120hz의 주사율의 프로모션 기술과 주변광에 따라 색감을 바꾸는 Truetone 디스플레이 기술 때문에 아이패드 프로의 디스플레이는 화면이 아니라 정말 종이 같습니다. 애플 펜슬로 써보면 종이에 쓰는 것 같은 착각이 듭니다.(물론 질감은 빼고)



애플펜슬



아이패드 프로 이야기를 하면서 애플 펜슬을 이야기 안할 수 없죠. 주변에 아이패드 프로 사용자들을 보면 공통적인 고민이 애플펜슬을 어떻게 충전할 것인가, 애플펜슬을 어떻게 휴대할 것인가였습니다. 충전은 아이패드 뒤에 꽂아서 부채꼴(…)로 충전해야했고, 약한 자력이 있긴했지만 그다지 방법이 없었습니다. 이번 애플펜슬 2세대와 아이패드 프로 3세대는 그 두가지 고민을 한방에 날려버렸습니다. 아이패드 프로 옆 면에 자력으로 붙이면 자동으로 무선 충전하는 방식으로 바뀌면서 충전도 좀 더 자연스러워지고, 휴대도 해결되었죠. 자석 장인 애플 다운 해결 방법입니다.(왜 진작에 이렇게 안하고..)


예전 리뷰에도 썼지만 전 애플 펜슬을 거의 안씁니다. 아티스트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노트 필기를 주로 하는 학생도 아니죠. 회의할 때 회의록 기록을 위해 아이패드를 주로 사용하긴 하지만 전 그때도 주로 키보드를 씁니다. 어디에 뭔가를 쓰는 것을 지독히도 싫어합니다. 이게 애플펜슬이라고 다를리 없습니다. 그렇다보니 애플펜슬은 항상 아이패드 옆면에 붙어있는 상태로 그냥 달고 다닙니다.

그러다가 마침 회의 중에 우연히 아이패드로 그림을 그리면서 설명하는 장면을 봤는데 그 장면에 순간 혹해서 아이패드 프로와 함께 애플 펜슬을 구매해버렸습니다. 직업상 다이어그램을 그릴 일이 많은데 회의 때 즉석으로 그린 다이어그램으로 발표하는 모습을 꿈꾸면서 말이죠. 하지만 종이로도 그림을 못 그리는 사람이 아이패드 프로를 쓴다고 잘 그릴리 없습니다. 오히려 종이보다 미끄럽기 때문에 더 그림이 날라가더군요.

만약 아이패드 프로를 구매한다면 저처럼 애플펜슬을 그냥 무작정 지르기보다 사용 패턴에 맞는 소비를 추천드립니다. 많은 유투버나 블로거들이 리뷰에서 아이패드 프로는 애플 펜슬이 없으면 의미가 없다고 하는데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이패드는 애플펜슬 없이도 뛰어난 기기입니다. 아티스트거나 쓰는걸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애플 펜슬은 정말 의미없는 소비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도 기왕 샀으니 애플 펜슬을 쓰기 위해 여러가지 시도를 해보고 있는데요, 그 노력의 일환으로 도형을 자동으로 인식해서 그릴 수 있는 Paper 53 같은 툴을 써보고 있습니다. 그림을 못 그리긴해도 컴퓨터로 도형을 불러와서 그리는 것보다 직접 선으로 그리는 편이 훨씬 빠르게 그릴 수 있는데 도형 인식 같은 기능이 있다면 저 같은 못 그림러에게도 훨씬 도움이 됩니다.

이번 아이패드 프로에서 애플 펜슬 충전과 휴대 방식이 크게 개선되긴 했지만 쓰다보니 한가지 문제가 있었습니다. 애플펜슬은 아이패드와 항상 연결되어있는 구조라 사용하지 않더라도 배터리를 항상 소모하고 있는데 아이패드 옆에 붙어있을 때도 연결은 유지하고 있어 배터리가 소량이나마 계속 소모됩니다. 문제는 아이패드가 애플펜슬로 계속 전력을 보내고 있는 상태라 애플 펜슬을 붙여놓은 상태로 아이패드의 배터리가 지속적으로 소모된다는 것입니다. 이 소모율은 생각보다 꽤 됩니다. 8시간 정도 애플펜슬을 한번도 쓰지 않은채로 일하다보면 100% —> 88% 정도까지 닳습니다.

이런 충전 문제는 에어팟 초기에 배터리 누수 문제와 비슷합니다. 에어팟이 케이스 안에서 100% 이후에도 계속 충전되면서 계속 케이스의 배터리를 갉아 먹고 있었던 문제였죠. 이후에 에어팟도 펌웨어 업데이트로 해결되었으니 이 문제도 조만간 해결되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비슷한 문제를 또 만나니 별로 달갑진 않습니다.



생산성



애플의 기기들은 바라보고 있으면 창의성이 자극되는 것 같은 희한한 효과를 갖고 있습니다. 창의성 자극을 넘어서 어쩐지 창의적인 일에 쓰지 못하면 죄책감(?) 같은 것도 들죠. 애플의 기기들을 볼 때 창의성에 불타는 이유는 특유의 디자인이나 광고 등의 마케팅 효과도 있겠지만 비싼 가격도 한 몫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보통 전문가용 장비는 비싸죠. 전문가들은 그 비싼만큼 그 이상의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에 기꺼이 장비를 구매합니다. 아이패드 프로는 후덜덜하게 비쌉니다. 이 장비로 구매 가격만큼의 생산 가치를 뽑아내지 못한다면 죄책감이 드는게 당연할지도 모르죠.

저는 주로 아이패드로는 그림 그리기보다는 글을 쓰곤 합니다. 최근에 작성한 블로그 글들도 전부 아이패드 프로로 작성하고 사진 찍고 편집한 것들이죠. 아이패드 프로 + 스마트 키보드 폴리오 조합으로 글 쓰기는 생각보다 좋습니다. 맥북에어 11인치도 글쓰는데 최적이었지만 아이패드 프로 11인치는 그보다도 더 가볍죠. (키보드 포함 700g 정도) 공책만한 크기의 아이패드 프로를 꺼내서 어디에서든 펴서 글을 쓴다는 것은 즐거운 일입니다.

아이패드 프로의 생산성은 앱이 많이 좌우하는 것 같습니다. 물론 맥이나 PC도 마찬가지이지만 아이패드 프로는 멀티 태스킹 환경이 제한적이라 주로 하나의 앱이 많은 기능을 담고 있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앱의 역할이 훨씬 중요합니다. 윈도우 모드가 기본인 맥 앱과 달리 아이패드 프로의 앱은 모든 앱이 전면에 전체화면으로 실행되는 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에 글 쓰는 앱을 하나 띄워놓고 작업을 하니 작업 집중도도 (본의 아니게) 좋아집니다.

아이패드 프로에서 글을 쓸 때는 주로 Workflowy를 이용합니다. 원래는 리스트나 개요를 만들어주는 아웃라이너 앱이지만 어느정도 제대로된 글을 쓸 때도 적합합니다. 초반에 개요를 리스트로 만든 다음 각 항목을 문단 단위로 나눠서 글로 채워나가는 방식을 씁니다. Workflowy는 리스트를 지우거나(일시적으로) 옮기는게 쉬워서 문단 단위로 날리거나 순서를 재배치하는 편집 작업도 무척 쉬워집니다. 이런식으로 하면 글의 원고(초안)을 쉽게 완성할 수 있죠. 바로 이렇게 말이죠.


그 외에도 아이패드 프로에서 MS 오피스나 iWork 같은 오피스 스위트도 본격적으로 사용해보고 있습니다. MS 오피스는 PC에서도 많이 사용하고 있지만 iWork는 본격적으로 사용해본적이 거의 없었습니다. 써보니 둘이 비슷해보이면서 지향점이 완전히 다른게 재밌더군요. MS 오피스는 PC에서도 익숙한지라 iOS에서도 익숙하게 사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워드로 장문의 보고서를 작성해보니 생각보다 만족스럽더군요. 이런 기능이 있어? 싶은 것들도 찾아보면 다 있습니다. 찾아야한다는게 문제지만요.


iWork는 주로 개인적인 일에 사용해보고 있는데 맥에서도 애플에서 만든 앱 답게 심플하지만 iOS에서는 지나치게 심플한게 문제입니다. 웬만한 것들은 다 숨겨져있거나 아이콘으로만 표시되어있어서 원하는 기능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내는데 애를 먹었습니다. Numbers로 파이 차트를 지원하는 가계부를 하나 만들어봤는데 엑셀에서는 금방할 것을 Numbers에서는 몇 시간씩 걸리더군요. 하지만 오히려 익숙해지니 한 페이지에 멀티로 스프레드 시트를 띄워놓거나 스프레드 시트와 따로 차트를 구성할 수 있는 등 엑셀에 비해 조금 독특한 장점들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노력(?)으로 아이패드 프로를 생산적인 작업에 투입하여 써보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아이패드 프로의 생산성은 PC에 비해서는 부족한 편입니다. 적어도 글 쓰거나 문서 작업에서는 PC가 더 낫습니다.(일러스트 작업 등 아이패드 프로가 더 나은 부분도 있겠습니다만..) 같은 작업을 하더라도 아이패드 프로에서는 익숙해지기 위해 노력해야하고 더 나은 방법이나 앱을 찾아야합니다. PC로 처음 일하기 시작했던 시절의 시행착오를 똑같이 겪는 느낌입니다.

아이패드 프로 생산성의 문제는 단지 익숙해지지 않아서만은 아닙니다. 같은 앱이라고 해도 iOS 앱이 다소 열등하다는 것도 문제입니다. 위에서 언급했던 Workflowy만 해도 아이패드 커서로 위 아래 항목을 이동할 수 없다는 제약이 있습니다. 여러 항목을 선택해서 한번에 옮기는 기능도 없죠. MS오피스나 심지어 애플에서 만든 iWork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작업은 PC에서는 간단하지만 아이패드 프로에서는 도전으로 느껴집니다. UI 개선으로 해결되겠지만 아직은 Workflowy처럼 기능 제약을 갖고 있는 앱들이 적지 않습니다.(아직은..이라고 하기에 아이패드는 벌써 9년차입니다만.)

아직은 아이패드 프로가 모든 작업에 어울린다고 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전통적으로 키보드나 오피스 스위트를 사용하는 간단한 작업일수록 말이죠. 하지만 맥이나 PC를 적절히 보조 수단으로 사용한다면 아이패드 프로로도 생각보다 충분히 생산적인 일은 가능합니다. 데스크탑이나 고성능이지만 휴대성이 떨어지는 랩탑과 조합한다면 정말 괜찮은 생산성 조합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굳이 아이패드 프로여야할 이유



이번 아이패드 프로 3세대는 국내외 여러 리뷰에서 혹평을 면치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주로 비싼 가격과 약한 내구성이 원인이지만 또 다른 주요한 원인은 “근사하지만 그래봐야(?) 아이패드”라는 점 때문일겁니다. 사실 아이패드 프로는 뛰어난 프로세서와 다양한 주변 악세사리를 더했지만 본질적으로 아이패드와 다르지 않습니다. 아이패드가 애플펜슬을 지원하는 지금으로서는 아이패드 프로여야할 이유도 많이 반감된 것도 사실입니다.

만약 과거에 노트북을 아이패드로 대체해보려고 했다가 실패했거나 아이패드라는 장치 자체가 사용 패턴과 맞지 않았다면? 아이패드 프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이패드 프로는 아이패드라는 디바이스의 한계를 크게 벗어나지 못합니다. 반면 아이패드 프로가 할 수 있는 것은 아이패드도 할 수 있죠. 이런 상황에서 아이패드 프로가 경쟁해야하는 상대는 랩탑 같은 전통적인 PC 뿐 아니라 형제인 아이패드도 포함됩니다. 과연 아이패드 프로가 이런 경쟁상대들을 제치고 선택 받아야할 이유가 있을까요?

제가 아이패드 프로를 선택한 주요 이유는 스마트 키보드 때문이었습니다. 특허라도 걸려있는지 스마트 키보드처럼 깔끔하게 탈부착이 가능한 키보드는 다른 메이커에서는 나오지 않더군요. 만약 스마트 키보드와 비슷한 악세사리가 로지텍이나 벨킨에 있었다면 그냥 아이패드를 구매했을 것입니다.

랩탑과 아이패드 프로 사이에서 굳이 아이패드 프로를 선택한다면 제 생각에 그것은 애플 펜슬 때문일 것 같습니다. 아티스트나 디자이너 등 특정 직업 군에서는 애플 펜슬 덕분에 별도의 장치 없이 빠르게 디지털 환경에서 스케치와 디자인이 가능하겠죠. 이건 분명 랩탑에 비해 아이패드 프로가 가지는 경쟁 우위입니다.

이런 사례들을 볼 때 굳이 아이패드 프로를 써야할 이유는 여전히 아이패드 프로 주변의 악세사리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건 아이패드 프로 1세대가 나온 이후로 변하지 않았습니다. 아이패드 프로 본체만으로는 메리트가 전혀 없는걸까요? 맥북과 맥북 프로처럼 악세사리가 없이도 역할이 뚜렷하게 나뉘는 제품군들도 있는데 아이패드와 아이패드 프로는 왜 여전히 악세사리로만 구분되는 느낌일까요?

아이패드 프로의 성능은 차고 넘칠 정도입니다. 애플은 아이패드 프로가 92%의 랩탑 컴퓨터(맥북도 포함한)보다 빠르다고 밝혔습니다. 여러 매체에서 진행한 벤치마크 결과에서도 아이패드 프로는 맥북 프로 고사양을 제외하고는 모든 맥북보다 빨랐습니다. 하지만 한달 넘게 아이패드 프로를 써보면서 이런 빠른 성능을 제대로 느껴본 적은 많지 않았습니다.(Geekbench3 숫자 정도..) 고해상도의 사진을 보정할 때와 동영상을 새로 인코딩할 때 약간 느껴지긴 하지만 뭔가 부족합니다. 일상적인 작업이나 심지어 게임할 때도 일반 아이패드도 충분히 빠릅니다.

아이패드나 아이패드 프로나 하드웨어 성능 차이는 크다고 해도 그를 뒷받침해줄 소프트웨어가 부족합니다. 맥에는 고성능을 요구하는 앱들이 많지만 아이패드 생태계에서는 많은 앱들이 모바일 앱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MS오피스도, 심지어 애플이 만든 iWork도 키보드를 갖춘 12.9인치 디스플레이에서 실행이 되도 모바일 버전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아무리 고성능의 게임을 한다고 해도 아이패드에서 실행되는 게임의 99%는 모바일 게임입니다. 아이패드 프로를 써보면 그르릉 거리는 엔진 배기음을 내는 F1 카로 시속 60km로 국도를 타는 느낌이 듭니다.


물론 이 문제는 시간이 해결해줄 것입니다. 이미 PC 버전의 소프트웨어가 기능 그대로 아이패드로 이식되는 경우도 있고(Affinity Photo), 또 포토샵이라는 대형 앱 하나가 기능 그대로 아이패드로 이식될 예정이죠. 또 어떤 아이패드 앱은 PC 버전의 다른 앱들보다 훨씬 뛰어난 기능을 갖고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Procreate 등)

개인적으로는 다른 회사보다도 애플부터가 애플이 갖고 있는 생산성 앱을 아이패드로 제대로 이식해서 레퍼런스로 작용했으면 싶습니다. iWork, iMovie 뿐 아니라 파이널컷 같은 앱이 아이패드 프로로 제대로 이식된다면 순식간에 판도가 바뀔지도 모릅니다. 맥 시절 부족한 앱 생태계를 채우기 위해 자체적으로 훌륭한 소프트웨어를 만들었던 것처럼 애플 스스로 아이패드에 레퍼런스로 작용할 앱들을 만든다면 좋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현재 애플의 움직임을 보면 자체적으로 만들기보단 MS나 어도비 같은 기존의 강자들과의 협업을 더 중시하는 플랫폼 전략을 구사하는 것 같습니다. 아이패드 앱 생태계가 맥 생태계만큼 그렇게 나쁘진 않으니 스스로 앱을 만들어서 생태계를 망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고성능을 잘 발휘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확보하는 것이 아이패드 프로를 좀 더 “프로”답게 하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구성 문제



이번 아이패드 프로의 가장 큰 문제는 내구성입니다. 원래도 아이패드가 견고한 기기는 아니었지만 이번 아이패드 프로는 약해도 너~무 약한게 문제인거죠. 구매 후 약 보름 정도는 매일 같이 들고 다니다가 집에와서 휘었는지 안휘었는지 체크해보는게 일상이었습니다. 너무 얇은 두께와 약한 알루미늄 외장(알루미늄 600 0 시리즈), 그리고 애플 펜슬 충전과 마이크를 위해 뚫어놓은 구멍 등이 약한 내구성에 일조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번 아이패드 프로의 외장인 알루미늄 6000 재질은 아이폰 6 때 휘는 문제로 말이 많았던 바로 그 재질입니다. 아이폰은 아이폰6s부터 잘 휘지 않는 알루미늄 7000 재질로 바꿨고 아이폰X부터는 아예 스태인리스스틸로 이동했죠. 아이패드에서는 여전히 휘는 문제로 말이 많았던 소재를 다시 사용하니 비난 여론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아이패드부터 맥까지 알루미늄을 사용하는 제품들은 알루미늄 6000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애플 입장에서는 별 문제가 안된다고 썼을지도 모르죠. 아이패드 프로는 아이폰과 달리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물건은 아니라 강성이 그렇게 높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우연인지(?) 이번 아이패드 프로는 스마트 키보드가 후면까지 커버하는 구조로 바뀌었는데 이게 우연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전 아이패드를 쓸 때는 커버 외에 뒷면을 커버하는 케이스는 잘 사지 않는 편인데 이번에는 강제로(?) 케이스를 쓰게 되었습니다. 유투브에서는 여러가지 구부리기 테스트가 유행하지만 다행히도 아직까지 스마트 키보드나 스마트 폴리오를 끼운채로 구부리거나 부러뜨리는 영상은 못 본 것 같습니다. 한달 지난 지금 봤을 때 가방안에 케이스 + 파우치와 넣어서 다닌다면 그렇게 걱정할 정도로 휠 것 같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본체만 가방에 넣고 다니다 무심코 어딘가에 등을 기댄다면(…) 그래본적은 없지만 여전히 불안합니다. 충격에는 휠 수 있지만 그건 이전 세대 아이패드 프로도 마찬가지였죠(…)

개봉 직후에 휘어있는 사례가 있다는 것도 문제입니다. 애플이 400미크론이니 뭐니 아무리 어려운 단어를 써서 설명해도 눈에 보일 정도로 휘어있는 문제는 분명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이런 휘어짐 이슈에 대한 공식 입장이 나오기까지 자그마치 4주정도 걸렸다는 것이죠. 공정상의 문제임을 파악하는데 그렇게 오래 걸릴 것일까요? “400미크론”이라는 표현을 구상하기 위해 오래걸린 것일까요. 애플은 아이폰6의 벤드 게이트를 피하고 싶었겠지만 이미 게이트로 확대되지 않기엔 너무 늦은 감이 있습니다.

물론 아이패드 프로가 판매된 수 대비 휘어짐 케이스가 그렇게 많지는 않다는 점, 그리고 뒤늦게나마 휘어짐 발생시 교환해주겠다고 밝힌 점 등은 그나마 다행인 것 같습니다.

이제 남은건 쓰면서 휘지는 않을지를 지켜보는 것만 남았군요. 다행히도 쓰면서 점점 휘거나 하는 문제는 적어보인다는 것이지만 전 주기적으로 불안해하며 계속 체크할 것 같습니다(…)


다행히 아직 휘진 않았습니다(…)



마치며



2018년 아이패드 프로는 디자인을 일신하면서 아이패드 프로와 그 악세사리들을 한차원 진화된 형태로 발전 시켰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아이패드라는 한계를 아직은 뛰어넘지 못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계들은 대부분 소프트웨어의 문제이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것으로 기대합니다만 아직은 잠재력에 그치고 있어서 아쉽습니다. 포토샵 뿐 아니라 오피스도 풀버전 오피스가 아이패드에 탑재된다면 좀 더 많은 작업들이 아이패드에서 가능해질 것으로 기대합니다.

현대를 살아감에 있어서 스마트폰은 이미 필수가 되었고 랩탑 또한 어떤 직업군에게는 반드시 필요한 필수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패드 프로 같은 태블릿 PC는 필수품이라고 부르기는 애매합니다.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사는데는 지장 없는 물건이죠.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아이패드 프로를 사면서 아이패드 프로가 랩탑을 대체해주기를 원하는 것 같습니다.

작년까지만해도 아이패드로 랩탑을 대체하려고 한다는 사람이 있으면 절대 안된다고 도시락을 싸들고 다니면서 말렸겠지만, 이번 아이패드 프로는 “잘하면 그럴 수도 있겠는데..?”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모두가 원하는 그 지점까지 하드웨어는 거의 다 왔는데, 운영체제와 소프트웨어는 아직 그 지점까지 따라오지 못한 느낌입니다. 구 기기의 성능 유지를 위해 iOS12가 잠시 쉬어가는 버전업을 하면서 아이패드 프로의 본격적인 변화는 아직 도래하지 않은 느낌이 듭니다. 아이패드 프로를 쓸 수록 iOS13이 기대되는 것도 그 때문이죠.

아이패드 프로는 아직은 모두에게 적합한 컴퓨터는 아닌 것 같습니다. 제 생각엔 동영상 편집을 주로 해야하는 유투버 같은 직업이나 그림을 그리는 아티스트라면 아이패드 프로가 가장 적합할 것 같습니다. 일반 직장인들이 업무에 사용한다면 디자이너나 기획자 같은 비개발 직업군에게 좀 더 적합할 것 같습니다.(개발하려면 당연히 리눅스가 깔린 맥북이죠!) 무엇보다 절대 저렴한 가격이 아니다보니 아이패드의 iOS 앱들이 자신의 사용 패턴과 맞는지 확인은 필수입니다. 아이패드 프로의 잠재력을 제대로 보려면 좀 더 제 역할을 할 수 있게 될 풀버전 포토샵이나 iOS13이 출시될 때까지 좀 더 관망해보는 것도 좋을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필요하다면 당장 지르는 것도 좋겠죠.(흐흐)



덧. 못다한 이야기

1. 홈버튼이 사라지면서 아이패드 프로도 터치ID에서 페이스ID로 보안 방식이 바뀌었는데, 커버를 사용하는 태블릿에서는 참 어울리는 방식인 것 같습니다. 초기 아이패드는 스마트커버만 열어도 바로 잠금해제되었는데 터치ID가 들어가면서 1) 스마트커버를 열고 2) 지문인식을 시켜야 열리게 되었죠. 페이스ID로 오니 다시 커버만 열어도 잠금이 해제되는 방식으로 돌아오게 되어 좋습니다.

2. 전 한번도 아이패드나 아이폰의 스피커를 좋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습니다. 이번 아이패드 프로의 스피커는 정말 좋습니다. 개인적으론 맥북에어보다 훨씬 좋고 아이맥보다도 좋은 것 같습니다. 이렇게 얇은 본체에서 어떻게 이런 소리가 날까 싶을 정도입니다. 아이패드 미니나 아이폰의 스피커와 비교하기 부끄러울 정도죠. 아이패드 프로 2세대도 스피커가 좋았는데 3세대는 그보다 더 좋아진 것 같습니다.

3. 라이트닝에서 USB-C로 바뀐 변화는 아직은 체감이 잘 되지 않습니다. 충전 단자가 바뀌었다는 점 정도일까요. 번들 충전 케이블을 USB-C to C로 준게 눈에 띕니다. 아이폰의 충전기는 라이트닝 to USB-A인데 “맥북이 다 USB-C를 쓰도록 하면서 USB-A 케이블을 준다”고 욕을 먹었었죠. 이번 아이패드 프로는 USB-C to C 케이블을 번들 케이블로 주니 “아직 많은 컴퓨터가 USB-A를 쓰는데 USB-C 케이블 준다”고 욕을 먹는게 재밌습니다.

4. USB-C 포트로 바뀌면서 맥북에서 아이폰을 충전하듯이 USB-C 포트로 아이폰을 충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다이소 표 USB-C to USB-A 젠더와 라이트닝 케이블로 연결해도 충전이 빠릅니다. 고속 충전을 지원하지 않는 아이폰 7 플러스라 최대 전력이 얼마나 공급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아이맥에 연결했을 때와 비슷한 속도인걸로 봐서는 10w 정도는 잘 뽑아내는 것 같습니다. 아이맥의 썬더볼트3 포트가 포트당 15w 정도의 전력을 공급한다고 하니 아이패드 프로도 비슷한 수준이 아닐까 추정합니다.

5. 아이폰을 연결하면 충전 뿐 아니라 사진 가져오기가 자동 실행됩니다. 맥에서도 아이폰을 연결하면 아이튠즈와 사진 가져오기가 자동 실행되죠. 아이폰 뿐 아니라 카메라를 연결해도 가져오기가 실행되기 때문에 카메라가 유선 전송을 지원하지 않아도 결과물을 바로 아이패드 프로에서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카메라 말고도 좀 더 많은 장치가 연결되면 좋을 것 같네요.

6. 아이패드 프로 + Mfi 컨트롤러 + Moonglight 를 결합해서 게임을 스트리밍해서 플레이하고 있는데 꽤 좋습니다. Moonlight는 외부에서도 플레이할 수 있어서 데이터만 받쳐준다면 밖에서도 집에있는 게임을 플레이할 수 있습니다. Moonlight는 아이패드 프로의 프로모션 기술을 활용한 120fps 게임을 스트리밍해주는 기능이 있는데 아직 제가 가진 게임 중에 120fps를 지원하는 게임이 없어서 테스트는 못해봤습니다만 재밌는 부분인 것 같습니다.

7. 아이패드 프로의 게임 성능을 느껴보시고 싶다면

NBA 2K Mobile

게임을 추천합니다. 아이패드 프로 발표 때 성능 이야기하면서 같이 나왔던 게임이죠. 유료 게임으로 NBA 2K19도 있어서 헷갈리는데(2k19는 그래픽이 영..) 발표 때 나온 게임은 NBA 2K Mobile이 맞는 것 같습니다. 모바일이라곤 하나 그래픽이 정말 후덜덜합니다.


8. 이번 아이패드 프로가 다른 아이패드 들에 비해 눈에 띄는 점은 디스플레이에 지문이 엄청나게 잘 묻는다는 것입니다. 이전 아이패드도 지문이 안묻는 편은 아니었지만 이번 아이패드 프로 디스플레이는 지문 흡수력(?)이 더 강화된 느낌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