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패드 프로 3세대 약 2년 사용기 : 카멜레온 컴퓨터

역병과 자연 재해의 여파로 8월말 휴가가 취소된 뒤 계속 집에서 칩거 중입니다. 현재 재택근무를 하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집 밖에 나간게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습니다. 저 같은 집돌이에겐 어렵지 않은 일이지만 다른 많은 분들께는 정말 힘든 나날의 연속이겠죠. 이 위기가 빠르게 지나가길 바랄 뿐 입니다.

이 기나긴 재택 생활에서 가장 도움이 되고 있는 기기는 아이패드 프로입니다. 저 같은 경우 컴퓨터가 필요한 거의 모든 상황에서 아이패드 프로를 사용하고 있는데요, 다양한 악세사리와 결합해 쓰며 아이패드 프로의 진가를 알아가고 있습니다. 생각해보면 오히려 처음 구매했던 때보다 더 잘 쓰고 있는 것 같네요.

제가 이번 사용기에서 언급하고 싶은 부분은 아이패드 프로와 악세사리의 활용입니다. iPadOS와 USB-C 덕분에 아이패드 프로에 연결할 수 있는 악세사리의 범위가 넓어지면서 아이패드 프로의 카멜레온 같은 매력에 새삼 놀라고 있습니다. 아이패드 프로의 본체는 디스플레이에 컴퓨터 시스템이 결합 되어있는 현재 기술로 가능한 가장 심플한 폼팩터입니다. 본체의 형태가 심플한 덕분에 오히려 결합할 수 있는 악세사리가 더 넓어진 것이죠.

전 어떤 제품을 사용한지 1년 쯤 되면 사용기를 한번 더 올리곤 하는데요, 이번 사용기에서는 사용 패턴에 따라 여러 악세사리와 결합해 변신하는 아이패드 프로의 카멜레온 같은 매력을 같이 살펴볼까 합니다.


아이패드 프로 : 태블릿 PC

태블릿 PC는 아이패드 프로의 정체성입니다. 아이패드 프로는 현재 판매되고 있는 가장 훌륭한 태블릿 PC 중 하나입니다. 아이패드가 처음 소개되었을 당시 스티브 잡스는 소파에 앉아 사용하는 기기로 아이패드를 소개했었죠. 그만큼 소파에 앉아서 컨텐츠를 소비하는데에는 아이패드 프로를 따라올 수 있는 기기는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겁니다.

아이패드 프로의 성능과 고해상도 HDR 디스플레이, 4채널 서라운드 스피커는 간단한 인터넷 서핑부터 트위터, 유투브, 넷플릭스, 게임까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컨텐츠를 소비하기에 사치스러울 정도로 훌륭합니다. 전자책이나 만화책보기에도 훌륭하죠. 그야말로 소파에 앉아서 즐길 수 있는 모든 컨텐츠를 즐기기에 적합합니다.

컨텐츠의 소비 뿐 아니라 어느정도의 생산적인 작업도 이 형태로 가능합니다. 아이패드 프로만 들고 사진을 찍고, 보정하거나 간단한 영상 편집도 진행할 수 있습니다. 사실 아이패드가 진짜 대단한 점은 거의 모든 앱들이 태블릿 PC에 맞게 최적화되어있다는 점인 것 같습니다. 별도의 악세사리 없이 본체만으로도 큰 어려움 없이 사용할 수 있죠. 이건 다른 플랫폼의 태블릿 PC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부분입니다.

그래서 아이패드는 다른 태블릿 PC와 달리 별도 악세사리가 기본적으로 제공되지 않고 본체만 판매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애플의 장사 속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다른 태블릿 PC와 달리 별도 악세사리 없이도 충분히 사용이 가능하기 때문이죠.

아이패드 프로 x 애플펜슬 : 전자 스케치북

가장 많은 분들이 아이패드 프로와 조합해서 사용하는 악세사리는 애플 펜슬이 아닐까 싶습니다. 다른 아이패드 라인업에서 애플 펜슬을 사용할 수 있기 전까지 애플 펜슬은 아이패드 프로의 존재 이유이기도 했습니다. 다른 사용 패턴은 맥북이 아이패드보다 더 잘할 수 있지만 애플 펜슬 사용만큼은 아이패드 프로가 훨씬 우월하죠.

아이패드 프로를 애플 펜슬과 결합하면 훌륭한 스케치북과 노트가 됩니다. 보통 컴퓨터로 그림을 그린다고 하면 시선을 모니터에 고정하고 타블렛으로 그림을 그리는게 일반적인 형태일텐데요, 아이패드와 애플 펜슬로는 화면에 직접 그림을 그리는 직관적인 작업이 가능하다는게 가장 큰 장점입니다.

아이패드 프로 3세대부터는 애플 펜슬을 자석으로 결합한 상태로 휴대가 가능해져 더욱 사용성이 높아졌죠. 아이패드와 애플펜슬(+ 폴리오 케이스)만 휴대하고 다니면 그림도 못 그리는 주제에 디자이너가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지기도 합니다. 문제는 제 그림 실력이죠.

개인적으로는 가장 잘 사용하지 않는 형태 중 하나인데요, 워낙 아날로그하지 못한 인간이라 그림과 글씨 모두 못 그리기 때문입니다. 애플 펜슬이 아이패드 프로에 가장 잘 어울리는 악세사리 중 하나지만 그래도 개인의 사용 패턴을 잘 고찰한 다음 구매하시는걸 추천합니다. 아이패드 프로와 애플 펜슬을 구매한다고 해서 갑자기 그림을 잘 그리게 되는 것은 아니니까요. 개인적으로는 가장 후회하는 악세사리이기도 합니다.


아이패드 프로 x 매직키보드(스마트 키보드) : 노트북

이 형태는 제가 가장 많이 사용하는 형태입니다. 아이패드 프로는 출시부터 키보드 형태의 케이스를 같이 발매했었는데요, 아예 본체에서 ‘스마트 커넥터’라는 별도의 연결 포트를 지원해 키보드를 탈착하며 사용할 수 있게끔 설계되어있습니다. 아이패드에 키보드를 결합하면 가장 익숙한 형태 중 하나인 클램쉘 노트북으로 변신합니다.

아마 많은 분들은 이렇게 질문하실 수도 있습니다. ‘이럴거면 그냥 노트북을 쓰지 뭐하러 아이패드 프로를 사용하는가?’ 맞는 이야기입니다. 아이패드 프로가 예전보다 많이 PC스러워지긴 했지만 여전히 맥이나 윈도우 PC 같은 전통적인 PC 들에 비하면 제한적이기 때문입니다. 이 형태로 많은 작업을 하고자 한다면 아이패드 보다 노트북이 더 좋은 선택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노트북의 경우 이 글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다양하게 변신할 수 없습니다. 단적으로 노트북은 디스플레이만 뜯어서 소파에서 컨텐츠를 즐기는 패턴이 불가능하죠. 아이패드 프로의 노트북 형태는 아이러니하게도 아이패드 프로가 키보드와 분리 가능하다는 점에서 빛납니다.

매직 키보드는 아이패드 프로의 그런 특징을 더욱 극대화한 악세사리입니다. 글 작업을 할 때는 케이스와 결합해 노트북처럼 사용하다가 놀 때는 아이패드 프로만 분리해서 소파에서 태블릿 PC 형태로 갖고 놀 수 있죠. 그러다 다시 매직 키보드에 거치해서 노트북처럼 바로 글을 쓸 수 있죠. 매직 키보드는 분리해도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다시 거치할 때는 아이패드 프로를 매직 키보드에 올려놓기만 하면 됩니다.

이런 특성 덕분에 전 긴 재택 기간 아이패드 프로와 언제나 함께하는게 가능했습니다. 일할 땐 노트북으로, 그 외에는 분리해서 사용하는 식으로 말이죠. 개인적으로 아이패드 프로에서 가장 만족스러운 부분인데요, 기존에 사용했던 맥북에어에서는 불가능한 패턴이었을 것입니다.

아이패드 프로 x TV, 게임 컨트롤러 : 게임 콘솔

이 단계부터 서서히 악세사리의 값이 아이패드 프로 본체보다 비싸지기 시작합니다. 아이패드 프로에서 실행되는 게임 중엔 기존 콘솔에서 포팅된 게임들이 많은데요, 이런 게임들은 보통 별도의 컨트롤러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무선 컨트롤러를 이용하면 멀리에서도 조작이 가능하기 때문에 TV에 연결하는 것도 가능하죠. 이렇게 아이패드 프로를 TV, 게임 컨트롤러와 결합하면 훌륭한 게임 콘솔이 됩니다.

저 같은 경우 TV 연결시 애플의 USB-C to HDMI(AV-Multi Adaptor) 케이블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USB-C를 지원하는 케이블이라면 어떤걸 사용해도 크게 문제는 없겠지만 되도록 4k 60hz를 지원하는 케이블을 추천합니다. 해상도나 프레임에서 제한이 걸리면 아이패드의 성능과 상관 없이 게임의 품질이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4k 60hz 케이블은 많긴한데 주의해야할 점은 아이패드 프로는 맥북과 달리 전원도 같은 포트를 통해 공급받는다는 것입니다.(매직키보드를 사용하는 경우 제외) TV에 연결해도 별도의 전원 공급이 없다면 게임하는 동안 아이패드 배터리가 빠르게 닳겠죠. 따라서 디스플레이 출력 뿐 아니라 전원 공급도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케이블이 필요합니다. 저 같은 경우 별도의 전원 공급과 4k 60hz를 동시에 지원하는 케이블이 애플 것 밖에 없어서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선택하긴 했지만, 아마 지금은 더 좋은 대안이 많이 나와있을거라 생각합니다.

아이패드 프로로 즐기는 게임 경험은 상당히 좋습니다. 기존에 콘솔에서 지원되던 게임들은 말할 것도 없고, 일부 iOS 용 게임도 컨트롤러를 지원하기 때문에 기존 콘솔과 또 다른 매력으로 즐길 수 있죠.

여기에 애플 아케이드 구독을 더하면 더욱 훌륭한 애플 게임 콘솔이 됩니다. 현재 애플의 공식적인 콘솔 포지션은 애플 TV지만, 아이패드 프로(A12X, A12Z)는 애플 TV 5세대(A10X)보다 좋은 프로세서와 GPU를 탑재하고 있어서 아이러니하게도 게임 콘솔로 더 적합한 측면이 있습니다.

애플 아케이드 게임 중 ‘길건너 친구들 캐슬’ 같은 게임은 로컬 멀티플레이를 지원하고 있는데, 4개의 컨트롤러를 아이패드에 연결하면 4인 로컬 멀티 플레이를 할 수 있습니다. 스위치 부럽지 않은 접대 게임으로 충분하죠.

다만 이렇게 쓸 때의 문제는 아이패드의 화면비(4:3) 때문에 TV에 공간 낭비가 생긴다는 점인데요, 지원하는 TV의 경우 화면 확대 기능을 통해 어느 정도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만 완벽하진 않습니다. 이 문제는 다음 iPadOS 15에서 해결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아이패드 프로 x 맥 : 듀얼 모니터 겸 타블렛

이제 서서히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집니다. 아이패드 프로를 맥과 연결하면 사이드카(Sidecar)라는 기능을 통해 보조 디스플레이로 작동합니다. 가끔 맥에서 작업 공간이 좁을 때 이렇게 아이패드 프로를 연결해서 디스플레이를 확장하는 용도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연결하면 맥OS 상에서는 아이패드를 보조 모니터로 인식합니다. 설정을 통해 모니터의 위치를 지정해주는 것도 가능하죠. 저처럼 아이맥과 쓰기에는 크기 차이가 많이 나기 때문에 듀얼 모니터로서는 좀 불편하긴 합니다만, 맥북처럼 화면 크기가 비슷한 경우에는 듀얼 모니터로 사용하기 훨씬 좋습니다.

사이드카는 보조 모니터의 성격이 강하지만, 애플 펜슬과 결합하면 타블렛처럼 사용할 수 있습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화면에 직접 그림을 그리는 경험은 모니터를 보면서 그리는 것보다 더 직관적이죠. 그래서 고가의 타블렛 같은 경우 디스플레이를 지원하고 있어서 화면에 바로 그릴 수 있습니다.

사이드카를 통해 연결한 상태에서 애플 펜슬을 사용할 경우 그런 고가 타블렛처럼 디스플레이가 지원되는 타블렛으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아이패드 프로에서 직접 그리는 것에 비해 맥에 타블렛처럼 연결해서 사용할 때의 장점은 기존에 익숙한 생산성 앱을 그대로 사용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맥에서 포토샵을 통해 작업하는게 익숙한 사람이라면 아이패드에서 그리고 포토샵으로 옮기는 것보다 그냥 맥에서 바로 그림을 그리는게 더 편하겠죠. 아이패드 프로를 사이드카로 연결하면 필압이나 기울기 등 애플 펜슬의 기능을 맥에서 그대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다만 사이드카에서는 아이패드 프로 상에서 터치 입력이나 마우스 입력은 전혀 지원되지 않습니다. 오직 애플 펜슬로만 가능한데요, 애플도 이 사이드카 기능을 기존의 원격 제어 같은 기능보다는 아이패드를 보조 디스플레이나 타블렛 장치로 만드는데 집중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어쨌든 아이패드 프로가 있으면 고가의 타블렛을 구입할 필요는 없겠죠.(아이패드 프로 + 애플 펜슬이 웬만한 타블렛보다 비싸긴 합니다만..)

아이패드 프로 x 운동기구 : 운동 기구 모니터

재택 기간이 길어지는 동안 조금이라도 실내에서 운동을 해결하기 위해 여러가지 방법을 도입해보고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실내 사이클과 런닝 머신입니다. 런닝 머신은 아무래도 층간 소음 문제로 저는 주로 실내 사이클을 많이 활용하는데 애플워치의 잔소리 덕분에 매일 40분씩 타고 있는데 오히려 무게가 착실히 늘고 있습니다(…)

사이클 기기에도 아이패드 프로를 결합해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연결을 지원하는 사이클 기기나 런닝머신 등에 연결하면 아이패드 프로는 운동 기구 모니터로 변신합니다. 속도 모니터링이나 동기부여가 되는 동영상을 보면서 운동을 진행할 수 있죠.

제가 갖고 있는 사이클은 아쉽게도 아이패드 연결을 지원하는 기구는 아닙니다. 하지만 사이클 운동 패턴 동영상을 보면서 사이클을 타는데요, 되도록 동영상에서 표시되는 속도를 유지하면서 달리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탈리아 포지타노 마을 진입로의 배경을 보면서 달리다보면 몸은 집에 있지만 자전거 여행하는 기분으로 운동을 할 수 있어서 좋더군요.

모니터는 아이패드 프로지만 실제 운동량 측정은 애플워치로 측정하고 있습니다. 애플워치의 실내 사이클 운동 모드를 켜놓고 진행하면 운동량을 측정하고 운동량을 일정하게 유지하는데 도움을 줍니다.

마무리

지금까지 제가 아이패드 프로를 사용하는 여러가지 패턴을 소개드렸습니다. 2018년에 처음 샀을 때만 해도 제약이 많이 느껴졌지만, 이제는 OS의 제약도 많이 사라지고 USB-C로 연결할 수 있는 악세사리도 많아지면서 컴퓨터가 필요한 모든 패턴을 아이패드 프로가 커버할 수 있게 된 느낌입니다.

저 같은 경우 하루 패턴은 이렇습니다. 일할 때는 아이맥과 연결해 사이드 모니터처럼 사용하다가 글을 쓸 때는 매직 키보드와 결합해 노트북처럼 쓰고, 잠시 쉴 때는 아이패드만 분리해서 소파에서 인터넷 서핑과 트위터를 합니다. 그러다가 자리로 돌아와 매직 키보드에 올려놓고 다시 글을 쓰기 시작하죠. 게임을 하거나 운동을 할 때도 아이패드 프로를 사용합니다. 거의 하루 종일 아이패드 프로와 함께하는 셈입니다.

이렇다보니 제가 과연 기존의 노트북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을지 잘 모르겠습니다. 곧 ARM 맥북이 나온다는 루머도 들리는데 맥북은 아무래도 이런 사용 패턴에서는 여러모로 제약이 있을 수 밖에 없기 때문이죠. 아마 큰 변동이 없는 한 전 앞으로 노트북 대신 계속 아이패드 프로를 사용하고 있을 것 같습니다.

제 사용 패턴은 일부분에 불과할 뿐 아마 많은 분들은 더 다양한 방법으로 사용하고 계실 것 같은데요, 여러분의 사용 패턴은 어떠신가요? 덧글이나 트위터 등으로 의견을 남겨주시면 저와 이 글을 읽으시는 다른 분들께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