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한 주스 착즙기, Juicero 결국 폐업

실리콘 밸리에서 스마트 키친의 선두주자로 주목 받았던 Juicero가 결국 폐업했습니다. Juicero는 매일 배달되는 신선한 주스를 스마트한 착즙기로 짜 먹을 수 있도록 한다는 비즈니스를 표방하고 있었습니다. 이 회사의 주요 사업 모델은 다음 두가지였습니다.

1) 농장에서 유기농으로 매일 배달되는 신선한 주스팩(구독형)
2) 해당 주스팩을 짜 먹을 수 있는 엄청난 힘의 스마트 착즙기(80만원 상당)

전통적인 농장 산업을 기술 산업과 연결시켰다는 점, 착즙기에는 Wifi를 비롯해 온갖 복잡한 기계적인 부품들이 400개가 넘게 들어가고, 주스 팩에는 QR코드가 적혀있어 착즙기가 자동으로 유통기한과 성분을 확인해주고, 이를 스마트폰으로 전송하여 주스를 마신 내역까지 기록해주는 기능까지.. 키워드의 면면으로 볼 때는 대박 스타트업이라는 느낌이 물씬 풍기는 비즈니스 모델이었습니다. 실제로도 Juicero는 실리콘 밸리에서 대박을 터뜨렸습니다.

착즙기 가격이 너무 비싸다는 비판도 있긴 했지만 착즙기의 힘 자체가 2~3톤의 압력을 가할 수 있어서 주스를 남김없이 짤 수 있다는 것이 마케팅 포인트였습니다. 매일 주스를 먹어야 하지만 아침마다 슈퍼마켓에 가고 싶지는 않고 또 주스를 짜먹을 때 손에 묻는게 싫었던 사람들에게 혹할 수 있을 것도 같습니다. 또 기기 자체도 얼마나 스마트한가요. 스마트폰이랑 연결되고 유통기한도 알아서 판단해준다니. 일단 들었을 때는 상당히 놀랍죠.

그러다가 2017년 4월 한 블룸버그 기자의 실험에 의해 모든게 달라졌습니다. 해당 기자는 Juicero의 주스팩을 갖고 전용 착즙기로 주스를 짤 때와 자신의 손 힘으로 주스를 짤 때를 비교해보았습니다.

실험 결과는 모든걸 바꿔놓기 충분했습니다.

1) 착즙기로 주스를 짰을 때 : 2분 동안 8온스(약 230ml)
2) 맨손으로 주스를 짰을 때 : 1분 30초 동안 7.5온스(약 215ml)

실험 결과 맨손으로 짰을 때가 착즙기보다는 조금 덜 나오긴 했지만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그 기계가 80만원짜리라면 이야기는 더욱 달라지죠.

해당 기사는 파장이 컸습니다. 많은 투자자들이 실망감을 금치 못했습니다. 맨손으로 짤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투자를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투자자도 있었죠.

Juicero는 이 실험에 대해서 주스를 맨손으로 짜면 힘이 들어가고, 주스가 손에 묻을 수 있기 때문에 여전히 착즙기는 필요하다고 했지만, 15ml의 주스를 더 짜내기 위해서 2~3톤의 힘이 정말로 필요한지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한차례 파란이 일고 결국 Juicero는 착즙기의 가격을 25% 정도 할인해서 팔기 시작했습니다만 논란은 쉽게 사그러들지 않았습니다.

Juicero의 논란은 사실 그 뿐만은 아니었습니다. 창업자의 독재자적인 리더십 스타일, 친환경적이라고는 했지만 사실은 친환경적으로 처리되지 않는 주스팩도 논란의 대상이었죠.

착즙기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불필요하게 복잡하고 불필요하게 비싸다는 의견을 많이 내놓았습니다. Juicero의 창업자인 Doug Evans는 스스로를 스티브 잡스에, Juicero를 테슬라에 비유하곤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Juicero의 착즙기도 필요 이상의 테크놀로지를 갖게되었고 가격도 높게 책정(애플 스타일로)되었다고 이야기 합니다. 스스로의 가오(프라이드?)보다 고객을 우선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던 것이죠.

결국 Juicero는 오늘 영업을 정지하며 착즙기를 환불해주겠다는 글을 올리고 인수자를 찾는 과정에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명성이 추락할 대로 추락한 주스 스타트업을 살 사람은 그리 많지는 않아 보이네요.

Juicero는 요즘 유행하는 키워드를 다 갖고 있는 참신한 비즈니스였습니다. 정보화와 스마트 디바이스를 이용한 요즘 높으신 분들 좋아하시는 4차 산업혁명 내지는 Industry 4.0에 가장 적합한 사업이었죠. 키워드만 보면 정말 주스계의 테슬라라고 할만합니다. 이런 키워드는 실리콘 밸리의 많은 투자자들을 현혹하기에 충분했습니다. 국내에서도 Juicero에 대해 칭찬하고 높은 기대를 나타내는 기사도 많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Juicero는 실패했습니다. Juicero는 왜 실패했을까요? 맨손으로 짤 수 있는 주스를 기계로만 짤 수 있도록 해서일까요? 그럼 만약에 Juicero가 주스팩을 맨손으로 짜기 힘들게 만들었다면 성공했을까요? 제 생각에 이건 너무 단편적인 이유인 것 같습니다.

Juicero가 실패한 진짜 이유는 그 가치가 소비자에게 향하지 않았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기술이라는 것은 결국 사용자가 사용하면서 가치를 발휘해야 진짜 의미가 생깁니다. 아무리 최첨단으로 기술을 개발했다고 해도 그것이 사용하기 어렵거나, 사용자에게 별다른 가치를 주지 못한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그저 ‘겉멋’으로 전락해버릴 가능성도 충분합니다.

Juicero를 우리는 쉽게 비웃을 수 있지만 우리나라에도 Juicero 같은 사례들은 심심치 않게 보입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최근 가전제품에서 불고 있는 IOT 열풍입니다. 최근에 제가 산 냉장고에는 Wifi 연결 기능이 있습니다. 스마트폰으로 Wifi를 연결하면 냉장고의 기능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이죠.

그런데 웃긴건 스마트폰에 연결해서 조작할 수 있는 기능이 냉장고 온도 조절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그냥 부엌으로 가서 냉장고의 조작부를 통해 충분히 조절할 수 있는데 말이죠. 자동조절 기능 같은 것도 없습니다. 외출해서 냉장고의 온도를 조절할 수 있지만, 실제로 외출 혹은 여행하고 있는 상태에서 집의 냉장고를 바꿔야할 일이 무엇이 있을까요? 이로인해 제가 얻을 수 있는 가치가 무엇이 있을까요?

최근 기사로 접한 한국형 VR 쇼핑몰도 마찬가지입니다. 쇼핑몰의 최대 가치는 고객이 접근하기 쉽고 결제하기 쉬워야 합니다. 하지만 VR 쇼핑몰은 별도의 단말기를 통해서만 접근할 수 있습니다. VR은 재밌지만 상품을 한번에 여러개 보기에는 기존 인터넷 쇼핑몰보다도 접근성이나 효율성이 떨어집니다. 그 뿐 아니라 ActiveX 이슈로 인해 결제도 안되죠. 접근하기도 어렵고 결제할 수도 없는 쇼핑몰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그냥 요즘 유행하는 VR을 아무 생각없이 붙인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Juicero도 그렇고 위의 사례도 그렇고 우리가 기술을 추구하는데 있어서 “왜?”라는 질문 없이 기술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왜?”라는 질문에 답할 수 있는 것은 결국 기술의 본질에 대한 고찰과 철학이겠죠.

하지만 이 철학은 하루 아침에 얻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꾸준한 기술 개발, 그리고 여러가지 실패를 통해 도달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를 위해서 우리도 좀 더 참을성 있는 R&D와 실패에 어느정도는 너그러운 환경으로 바뀔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Juicero는 실패했지만 분명 이 교훈을 발판삼아 크게 성공할 스타트업이 또 나올 수 있겠죠.

다시 Juicero 이야기로 잠깐 돌아와보자면, Juicero는 착즙기를 제외하고 구독형 주스 배달이라는 부분에 있어서는 성공적인 공급 라인을 구축했던 것 같습니다. Juicero의 초기 철학은 건강한 주스를 매일 보급한다는데 있었으니.. 어쩌면 Juicero의 초기 철학의 핵심은 쓸데없이 비싼 착즙기보다는 주스팩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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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 JuiceroIT스타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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