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드는 사람과 쓰는 사람

마셰코라는 프로그램을 보면서 잠깐 드는 생각. 내 생각엔 “만드는 사람(Maker)”과 “쓰는 사람(User)”은 보는 관점부터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까지 분명히 다르다. 예를들어 가장 뛰어난 게임 개발자가 최강의 게이머는 아닌 것처럼.

그런데 어째서 다른 사람의 요리를 “요리사”가 평가할까? 게임이 나오면 리뷰를 다른 유명 게임 개발자가 하나? 핸드폰이 나오면 평가를 다른 제조사에서 하나?

생각해보니 마셰코 뿐 아니라 최근 오디션 프로그램이 다 그렇다. 그 업계에서 유명한 “만드는 사람”이 평가한다. “쓰는 사람”의 관점도 반영되는 오디션 프로그램도 있지만 비중이 매우 작으니 하나마나다.

심사대에 앉아있는 “만드는 사람”이 자기와 같이 일할 사람을 뽑는 거라면 이해할 수 있다. 이게 오디션의 원래 의미다. 자기 기획사에 데려갈 인재를 뽑는 모 오디션 프로그램은 이런 취지에 부합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알기론 마셰코 같은 프로그램은 “뛰어난 요리사”를 인정해주는거지 심사대에 있는 요리사들이 같이 일할 사람을 뽑는게 아니다. “이 사람은 가장 뛰어난 요리사다”라는걸 먹는 사람이 아니라 요리사가 인정하는건 어색하다. 샤오미 핸드폰이 좋다는걸 삼성 직원이 인정해주는 것 마냥 어색하다.

내 생각에 이런 “만드는 사람”이 “만드는 사람”을 평가하는 오디션 방식은 “쓰는 사람”의 전문성을 인정할 수 없다는 생각에서 출발하는 것 같다. 요리 평론가나 맛집 블로거 들도 있겠지만 이런 사람들이 평가한다고 하면 국민적 공감대를 이끌어내지 못할 것이다. 5성 호텔 요리사가 평가하고 독설을 날려도 우리는 “그럴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 결과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우승한 사람들이 “쓰는 사람”들에게 어필하지 못하고 묻히는 경우가 많다.

만드는 사람과 쓰는 사람은 분명 다르다. 물리적 객체가 다르다는게 아니라 포지셔닝이 다르다는 의미이다. 나는 쇼핑몰 솔루션 기획자였지만 쇼핑몰을 운영하지 않는다. 이 부분의 갭은 크다. 그래서 고객을 이해하지 못하는 기획이 나오는 경우도 많다.

가장 좋은 것은 만드는 사람이 쓰는 사람과 동일해지는 것이다. 자기가 만든 프로젝트의 가장 좋은 사용자가 자신이 되었을 때 가장 이상적인 결과물이 나온다. 내가 보기엔 과거 애플이 고객 반응을 살피지 않고 제품을 낼 수 있었던 것도 자신들이 만드는 제품의 팬이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물론 만드는 제품이 좋아야 스스로 팬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네 IT 기업 현실에서는 내가 좋아하는 제품을 만드는게 아니라 클라이언트가 좋아하는 제품 혹은 클라이언트의 클라이언트가 좋아하는 제품을 만든다. 클라이언트의 기호는 나와 언제나 다르다. 내 생각은 언제나 무시된다. 그렇다보니 스스로도 애정이 안간다. 그러다보니 품질은 계속 떨어진다. 만드는 사람에 대한 대우도 계속 떨어진다.

여기까지 생각해보니, 만약 만드는 사람이 스스로 써도 만족할만한 제품을 만들 수 있다면 그 사람은 클라이언트의 생각까지 움직일 수 있을만큼 존중받는 사람 아닐까. 아마 마셰코에서 심사를 하는 셰프들도 “만드는 사람”이지만 그정도로 존중 받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심사를 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저 사람이 맛있다고 하는건 정말 맛있을거야”라고 하는 것처럼.

덧. http://goodhyun.com/1065 이 글에서 “프로젝트가 실패하는 이유”와도 같은 맥락인 것 같다. 어제도 올렸지만 생각보다 많은 유명 기업이 UX나 심지어 개발까지 외주를 하고 자신들은 운영만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우리나라 서비스의 UX가 안좋다고 욕을 먹는 것이다. 내가 좋아하긴 커녕 만들어봐야 내것도 아닌데 내가 왜 잘만들어야 돼? 란 생각으로 만드는 프로젝트는 분명 망한다.

덧2. 만드는 사람과 쓰는 사람들이라는 주제로 여러가지 생각을 했지만 결국 결론은 “마셰코에서 요리사가 요리사를 평가하는 이유는 심사를 하는 요리사가 먹는 사람들의 생각을 움직일만큼 열라 유명하기 때문이다”로 귀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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