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래스 & 그로밋 <복수의 날개>

월래스와 그로밋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시리즈 중 하나입니다. 클레이 애니메이션에 담겨 있는 제작자들의 혼(?)이 느껴지기도 하고 어릴 때는 공돌이 그로밋이 롤모델이기도 했거든요.(월래스 말고) 최근에는 한국에서 갑자기 그로밋이 엄청 인기를 끌기도 했습니다.(이유는 모르겠음)

인기있는 시리즈임에도 불구하고 만드는데 공이 꽤 많이 들기 때문인지 생각보다 작품이 별로 없습니다. 극장판도 <거대 토끼의 저주> 정도 밖에 없었고 나머지는 다 단편 뿐 입니다. 하루 종일 만들어도 6초 분량 정도 밖에 못 만든다고 하니 이해가 되기도 합니다.

2009년을 마지막으로 후속작 소식이 없다가 2024년에 넷플릭스를 통해 새로운 신작이 나왔습니다. 제목은 <복수의 날개>. <전자바지 대소동>에서 나왔던 페더스 맥그로우가 탈옥을 하면서 월래스와 그로밋에게 복수한다는 내용입니다. 사악한 페더스 맥그로우가 누구였는지 궁금하시다면 아래 동영상을 보시면 아마 잘 모르는 분들도 아~ 하실겁니다.

역대 애니메이션 최고의 추격씬

워낙 인기를 끌었던 캐릭터이기도 하고 엄청 오랜만의 후속작이라 많은 기대를 모았습니다. 저도 마침 넷플릭스를 구독하고 있었기에 바로 볼 수 있었죠.

일단 다 보고 난 다음 감상평은 “나쁘진 않지만.. 월래스 & 그로밋이라기엔 좀?” 이라고 평가할 수 있겠습니다.

월래스 & 그로밋 시리즈는 클레이 애니메이션의 원조격이라는 위상도 있지만 그를 뛰어넘는 기발한 전개가 매력적인 시리즈였습니다. 월래스의 기발한 발명품이 문제를 일으키고 똑똑한 멍멍이 그로밋이 그를 해결하는 전개는 이전의 작품들과 비슷하지만 <복수의 날개>에서는 그 이상이 보이진 않았습니다. 마치 닉 파크의 작품을 열심히 학습한 모범생이 만든 월래스 & 그로밋 시리즈 같은 느낌이었달까요.

그렇다고 재미가 없거나 기발한 매력이 덜하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뭔가 좀 부족한 느낌입니다. 월래스 & 그로밋 단편에는 (예산 문제 때문인지) 사람은 월래스나 한 두명 정도만 등장하는데 반해 이번 작품에서는 많은 사람들과 새로운 캐릭터들이 등장합니다. 다만 이 캐릭터들이 매력도 없고 월래스의 복제인간 같이 허당끼 넘치는 사람들 뿐이라 재미가 없습니다.

차라리 이런 사람 캐릭터들은 모두 걷어내고 페더스 맥그로우와 그로밋의 대결을 좀 더 비중있게 다뤘다면 밀도가 좀 더 높아졌을 것 같아요. 월래스를 능가하는 멍청한 캐릭터들이 전체 이야기를 물탄 것처럼 묽게 만드는게 마음에 안듭니다. 그러다보니 그로밋도 뭔가 밍밍한 활약을 펼치구요.

분명 자주 가는 설렁탕 집이고 간도 맞는데, 국물의 농도 자체가 묽어진 것 같은 설렁탕을 먹는 느낌이었습니다. 오랜만의 새로운 시리즈라서 분명 반갑긴 한데, 굳이 장편으로 만들지 말고 단편 여러개를 만들어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더 들었습니다.

덧. 월래스 & 그로밋을 처음 본 건 어릴 때였는데, 명절 전 날 아버지랑 같이 종로 쪽 극장에서 봤던 기억이 납니다. <화려한 외출>, <전자바지 대소동>, <양털 도둑> 이 세가지 단편을 묶어서 극장용으로 만든거였는데 좋았던 추억 중 하나로 남아있습니다. 근데 지금 찾아보니 대대적인 개봉은 아니었고 1997년에 코아 아트홀에서 소규모로 개봉했었다고 하는군요. 생각해보니 운이 좋았었네요.

Apple에 게시되었습니다에 태그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