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

곱고 희던 두 손으로 넥타이를 메어 주던 때
어렴풋이 생각나오 여보 그때를 기억하오

막내 아들 대학시험 뜬눈으로 지내던 밤들
어렴풋이 생각나오 여보 그때를 기억하오

세월은 그렇게 흘러 여기까지 왔는데
인생은 그렇게 흘러 황혼에 기우는데

큰 딸아이 결혼식날 흘리던 눈물 방울이
이제는 모두 말라 여보 그 눈물을 기억하오

세월이 흘러감에 흰머리가 늘어가네
모두 다 떠난다고 여보 내손을 꼭 잡았소

세월은 그렇게 흘러 여기까지 왔는데
인생은 그렇게 흘러 황혼에 기우는데

다시 못올 그 먼길을 어찌 혼자 가려하오
여기 날 홀로 두고 여보 왜 한마디 말이 없소

여보 안녕히 잘 가시게
여보 안녕히 잘 가시게
여보 안녕히 잘 가시게

얼마 전 노래방에서 김광석의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를 오랜만에 다시 불러보았다. 예전부터 좋아했던 노래인데 듣는 내 나이에 따라 다르게 느껴지는 노래다.(자매품으로 <서른즈음에>도 비슷)

내가 20대, 30대였던 시절엔 노부부의 아련한 이야기가 크게 다가왔다. 이 노래가 작곡되었을 당시에도 한국인의 평균 수명으로 계산했을 때도 60대 노부부가 이런 이야기를 하기엔 좀 이른 편이라는 이런저런 생각들은 제외하고. 배우자의 죽음 앞에서 덤덤하지만 슬프게 지난 세월을 돌아보는 노랫말이 마음을 울렸다.

그런데 이젠 40대가 되고, 결혼한지도 좀 되고나니 약간 다른 부분이 보였다.

가사에서 나온 노부부의 추억은 세가지로 볼 수 있는데, 1) 곱고 희던 두 손으로 넥타이를 메어 주던 때, 2) 막내 아들 대학 시험, 3) 큰 딸아이 결혼식 날 이다. 따지고보면 세가지 중 두개가 부부가 아닌 자식들 인생의 큰 에피소드다.

만약 나라면, 배우자를 떠나보내는 상황이 되었을 때, 추억을 되짚을 때 세가지 추억 중 두개를 자식들 인생의 큰 에피소드를 떠올릴까? 난 아마도 아닐 것 같다. 결혼 후에도 둘이서 쌓은 시간들과 추억들이 너무 많은데. 난 부부 둘 만의 이야기만 해도 부족할 것 같다.

물론 위 자식들의 에피소드는 부부 입장에서도 중요한 사건이다. 하지만 큰 딸아이 결혼식이 그 날 눈물을 모두 쏟아서 배우자를 떠나보낼 때 흘릴 눈물이 없을 정도로 큰 사건인걸까? 잘 모르겠다.

이 노래를 만든 김광석의 나이를 생각해봤을 때, 이 노래는 어쩔 수 없이 자식 입장에서 부모님들의 모습을 보고 만든 노래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노래에는 자식이 부모에게 기대하는 모습이 투영되어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부모에게 중요한 사람이었으면 하고 기대하듯, 우리 부모님이 돌아가실 때 떠올리는 추억이 내 인생의 중요한 이벤트이기를 바라는 어떤 기대.

우리는 살다보면 부모님에게도 두분만의 인생이 있을거라는 기대를 못하고 산다. 자식만 바라보는게 당연하다고 느끼면서 산다. 한국의 부모 자식 간의 관계는 더 그런 것 같다. 하지만 그들도 그들의 인생이 있고, 그들만의 추억이 있다. 당장 내 인생을 봐도 그렇다. 이 노래는 자연스럽게 노부부의 인생을 지우고 자식 바라기로 살았던 삶만 비추는게 아닐까.

물론 이건 자식이 없는 입장에서 말하는 뭘 모르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 위에서도 말했듯 이 노래는 시간이 지날 수록 다르게 느껴지는 노래인만큼, 또 내가 더 나이를 먹고 자식들을 기르게 된다면 언젠간 다르게 느껴질 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