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패드 프로를 한달 동안 메인 컴퓨터로 써봤다

12월부터 M4 아이패드 프로를 메인 컴퓨터로 써보고 있는 중입니다. 랩탑 뿐 아니라 데스크탑의 역할까지 말이죠.

이런 짓을 하는 별 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일종의 스포츠 같은거라고 할까요. 이미 개인용 목적으로는 윈도우를 아예 안쓰기 시작한 시점부터 이런 고난의 길을 계속 걷고 있는 셈입니다. 우분투를 쓰다가 맥OS를 쓰다가 이번엔 iPadOS가 차례가 된거죠. 맥OS는 도전의식을 불러일으키기에는 너무 쉬워지기도 헀구요.

그래서 맥북 에어가 있음에도 한달 동안 맥북은 안쓰고 아이패드 프로로만 생활해봤습니다. 일할 때도 회사 지급 맥북 대신 아이패드 프로로만 일했습니다. 컴퓨터가 필요한 모든 일에 아이패드 프로만 썼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이패드 프로를 한달 정도 메인 컴퓨터로 써본 결과 제 소감은 아래와 같습니다.

아.. 거의 다왔는데

워크플로우

참고로 제 워크플로우를 먼저 말씀드릴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제가 컴퓨터로 하는 작업은 개인 업무와 회사 일 두개로 나눌 수 있습니다.

개인 업무는 주로 블로그 포스팅이나 사진 보정, 동영상과 게임, RSS 구독, 웹 서핑, 집안 네트워크 관리(?) 같은 일을 주로 합니다. 가끔 문서 작업 후 프린트도 합니다. 동영상 편집 같은 무거운 작업은 하지 않습니다.

회사 일은 주로 회사 내부 망 접속을 위해 윈도우 원격을 통해 업무를 합니다. VPN을 통해 원격에 접근합니다. 윈도우 원격 외에 메신저나 가벼운 문서 작업을 진행하기고 하고 Google Meet, Zoom으로 화상 회의를 진행 합니다.

이렇게 보면 아시겠지만 컴퓨터로 그렇게 복잡한 일을 하진 않는 가벼운 워크플로우입니다. 대부분 컴퓨터로 하는 작업들도 비슷하시겠죠.

제가 주로 쓰는 앱은 Workflowy, Slack, Google Docs, NetNewsWire, Photomator, ChatGPT, Youtube, Pocket 같은 앱들입니다. 공교롭게도 맥OS와 아이패드 양쪽에 앱이 모두 있었다는 것도 참고해주세요.

추천 준비물

당연하겠지만 아이패드 프로를 메인 컴퓨터로 쓰기 위해서는 여러 주변 장치가 필요합니다.

일단 매직키보드가 필요합니다. 매직키보드는 아이패드 프로를 랩탑으로 변신 시켜줍니다. 가격이 말도 안되게 비싸지만 거치대와 키보드, 트랙패드를 한번에 해결할 수 있습니다.

아이패드는 외장 포트가 하나밖에 없으므로 USB-C 연결 모니터도 필요합니다. USB-C 선 하나로 출력과 충전을 모두 해결할 수 있으면 좋습니다. 그게 아니라면 HDMI 연결을 지원하는 허브도 좋습니다. 모니터가 허브 기능이 지원된다면 더 좋습니다. 외장 SSD나 웹캠 같은 장치를 선 하나로 쉽게 연결할 수 있습니다.

외장 키보드는 아이패드 용 키보드가 있으면 좋습니다. 아이패드 용 키보드와 일반 키보드(맥용 키보드 포함)의 가장 중요한 차이는 “지구본 키” 또는 Fn 키입니다. 스테이지 매니저를 제어할 때 단축키 조합으로 많이 쓰입니다. 문제는 맥용 키보드라고 해도 이 키가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사실 이 키보드도 아이패드용이 아니라서 실패..(이미지속 fn 키는 단축키 용도로는 못 씁니다)

마우스는 되도록 트랙패드나 매직마우스 같은 애플 제스쳐 기반 마우스를 추천합니다. 터치 기반인 아이패드의 특성상 가로 스크롤이 꽤 많고, 관성 스크롤을 가정한 인터페이스가 거의 대부분이기 때문입니다.(저는 걍 버티컬 마우스를 쓰는데 불편함이 좀 있습니다.)

프린터 같은 경우 Airprint 지원 프린터를 구비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Airprint 지원 프린터는 맥에서도 좋습니다. 여러 드라이버 이슈를 피하실 수 있습니다.

어디까지 대체할 수 있었나?

한달동안 써보면서 과연 어디까지 할 수 있을까? 반대로 말하면 언제 맥북을 찾게 될까?를 생각하면서 써봤는데 의외로 쓰는 동안 맥북이 거의 필요 없었습니다.

물론 재택근무시 회사 일은 윈도우 원격에서 했지만, 이건 내부망 접근 때문에 제 맥북 에어에서 하더라도 똑같거든요. 맥북 에어로 하던 일 대부분 아이패드 프로로도 할 수 있었습니다.

이건 개인적으로 좀 놀라웠던 부분인데, 맥북 에어로 아이패드 프로를 대체하려는 실험을 했을 때는 실패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맥북 에어를 잘 써도 아이패드가 필요한 경우가 꼭 있었는데, 아이패드 프로만 쓸 때는 맥북이 필요한 경우가 거의 없었습니다.

물론 이건 제 워크플로우가 애플 환경에 최적화 되어있고 공교롭게도 주로 쓰는 앱들이 iPadOS에서 모두 지원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사실 쓰면서도 아슬아슬한 적이 몇번 있었거든요. 조금만 벗어나도 맥북이 필요해질 것 같은 경우가 많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한달 동안 아이패드 본체만 써보고, 랩탑처럼도 써보고, 데스크탑처럼도 써봤는데 제 워크플로우 상의 거의 모든 일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은 분명 놀라운 일이죠.

아이패드 프로 구성의 장점(맥북에 비해)

클램쉘 모드로 쓰는 방법도 올리긴 했지만 제가 평소에 아이패드 프로를 데스크탑 형태로 쓸 때는 아래 사진처럼 거치대에 올려놓고 모니터 선을 연결해서 쓰는게 일반적입니다.

지금 이 글도 저 형태로 작성하고 있습니다.

이 구성의 가장 큰 장점은 역시 컴퓨터가 차지하는 공간이 적다는 겁니다. 아이패드를 거치할 공간만 있으면 됩니다. 어떤 미니 컴퓨터나 랩탑도 이것보다는 더 많은 면적을 차지할겁니다.

그리고 책상에서 작업하다가 모니터 선만 빼면 다시 태블릿 PC 모드로 그대로 이어서 작업할 수도 있습니다. 매직키보드를 붙여서 거실에서 랩탑처럼 쓸 수도 있구요. 하나의 컴퓨터로 여러 환경에서 유연하게 작업할 수 있다는게 장점입니다.

아이패드 프로 광고 같이 여러 환경에서 아이패드 하나로 일할 수 있다는 환상

또 하나의 장점은 애플의 최신 기술(?)을 데스크탑 환경에서 쓸 수 있다는겁니다. 잠금 상태에서 스페이스바를 누르면 아이패드에 있는 Face ID로 별도의 비밀번호 입력 없이 잠금 해제가 가능합니다. 레퍼런스 모드를 켜면 보조모니터(아이패드 프로 디스플레이)를 통해 사진 보정도 가능하죠. 화상 회의시 센터스테이지 기능을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생각보다 스테이지 매니저가 아이패드 환경에서 의외로 쓸만했습니다. 현재 작업이 진행중인 창을 가운데에 자동으로 배치해주고 창 크기에 따라 적절하게 창이 겹치지 않도록 자동 정렬해주는 기능은 맥OS 같은 전통적인 운영체제보다 좀 더 진보된 창 관리 방식 같았습니다.

아이패드 프로 구성의 문제점

위에도 썼지만 한달 동안 아이패드 프로를 데스크탑으로 써보면서 제 워크 플로우에서는 모든 작업이 대체 가능하다는 것도 알았고 몇몇 부분은 맥북보다 더 좋은 부분도 있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하지만 결국 완벽하진 않았습니다. 위에서 “거의 다 왔다”고 했던 이유도 이런 부분 때문입니다.

일단 한글 환경에서의 문제가 가장 불편했습니다. iPadOS는 한글 환경에서 여러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몇번 이야기했던 끝 글자 버그부터, 특히 윈도우 원격 환경에서도 글자 입력시 따라오는 문제가 있습니다. 쓰려면 쓸 수야 있겠지만 이런 사소한 버그는 작업시에 크게 마이너스 요소가 됩니다.

끝 글자 버그

이해할 수 없는 버그들도 꽤 있습니다. 파일 앱에서는 윈도우 공유 폴더(SMB)가 읽기 전용으로만 마운트 되는 버그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이패드 디스플레이랑 외장 모니터를 왔다갔다 하다보면 포커스가 앱 바깥으로 나가버리는 버그도 있습니다. 이런 버그들은 사소한거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작업 중에 이런 이슈를 하나씩 맞닥뜨리다보면 분노 게이지가 차오릅니다.

키보드 포커싱이 앱 밖으로 나가버린 버그

개인적으로 가장 큰 문제는 브라우저 문제였습니다. iPadOS의 사파리나 파이어폭스, 크롬 등의 브라우저는 기능이 너무 없습니다. 예전에 비해 많이 좋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iPadOS 사파리는 맥OS 사파리에 비해 성능이 떨어집니다. 그리고 확장 기능도 많이 부족합니다. 브라우저 개발자 도구가 가장 대표적이죠. 웹으로 먹고 사는 사람으로서 가장 큰 문제 중 하나였습니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워크플로우가 애플이 정해놓은 것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힘들어진다는 겁니다. 애플은 “아이패드는 이렇다”고 미리 정해놨고 사용자는 이 틀을 조금이라도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외장 모니터의 볼륨 조절을 하고 싶다? 사용 중인 키보드의 키 매핑을 바꾸고 싶다? 토렌트를 받고 싶다? iPadOS에서는 모두 불가능한 일입니다.

마무리 – “웬만하면..”

한달 동안 다른 컴퓨터는 안쓰고 아이패드 프로만 쓰면서 아이패드란 폼팩터가 갖고 있는 잠재력을 봤습니다. 하나의 컴퓨터로 다양한 주변 기기를 활용해 책상에 있든지, 거실에 있든지, 버스 안에 있든지 끊기지 않고 작업을 이어갈 수 있다는게 아이패드 프로를 메인 컴퓨터로 쓸 때의 가장 큰 매력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쓰려고 하면 할 수록 iPadOS가 여러 방면에서 발목을 잡습니다. 할려면야 다 할 수는 있지만 사소한 것부터 계속 걸리니 이걸 감수하면서 써야하나? 라는 생각이 자꾸 들게되는 것이죠.

한글 입력 문제, 브라우저의 한계, 여러 사소한 버그들이 해소된다면 웬만한 작업에서는 데스크탑으로 써도 문제 없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웬만하면 데스크탑으로서는 그냥 맥OS나 윈도우를 병행해서 쓰시는걸 권장드립니다. 애플이 괜히 아이패드랑 맥북 에어를 같이 파는게 아닙니다. 저는 운이 좋았고 여러가지 노력으로 워크플로우를 아이패드에 맞췄지만 아마 많은 경우 아이패드는 많이 부족하실 겁니다. 사실 저도 한달 동안 쓰면서 아슬아슬했거든요.

이런저런 사소한 버그들을 겪다겪다가 저도 이제 모니터를 다시 맥북 에어에 연결해야하나 고민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