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패드 프로를 노트북으로 쓸 때의 매력

저는 2018년부터 아이패드 프로와 맥북 에어를 둘 다 쓰고 있습니다. 두 기기는 겹치기도 하면서도 또 묘하게 서로를 보조하는 부분도 있어서 둘 다 주력으로 써오고 있습니다. 교체 시기도 엇갈리면서 서로 용도에 따라 주력과 보조를 주고 받고 있는 관계죠.

이번에 M4 아이패드 프로를 살 때도 원래는 M2 맥북 에어를 보조하는 목적으로 사용할 생각이었습니다. 아이패드 프로가 성능이 더 좋다고 해도 어쨌든 아이패드니까요.

그런데 지금은 아이패드 프로가 맥북 에어의 영역을 조금 더 많이 잠식하고 있습니다. 거의 95%의 작업은 맥북 없이도 아이패드 프로만으로 할 수 있다보니 웬만한 경우가 아니고서는 아이패드 프로에서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기왕 이렇게 된거(?) 아이패드 프로를 랩탑으로 쓸 때의 매력에 대해서 그동안 하고 싶었던 긴 이야기를 풀어볼까 합니다. 아이패드 프로를 노트북을 대체하는 목적으로 고민하시는 분들에게 제 개인적인 경험이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사실 저는 아이패드 프로가 노트북을 대체할 수 없다는 생각을 갖고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제가 아이패드 프로를 쓰기 시작한건 회사 정책 때문이었죠. 회사에서는 개인 노트북을 반입할 수 없는 정책이 있었는데, 희한하게 태블릿PC에 대해서는 관대했습니다.

회의록을 쓰기 위해 키보드가 달린 태블릿 PC가 필요했는데 당시 아이패드 라인에서는 공식적으로 키보드가 지원되는 아이패드는 아이패드 프로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2018 아이패드 프로 + 스마트 키보드 폴리오를 구매했었죠.

이 때만 해도 아이패드 프로를 랩탑 목적으로 쓰진 않았습니다. 오히려 랩탑이 아니어서 회의록 머신으로 쓸 수 있었죠. 지금도 회사에서 일할 때는 이 장점이 그대로 통하는데, 아이패드는 랩탑이 아니라 모바일 기기로 분류되어 아이폰과 동일한 정책이 적용됩니다. 예를 들어 맥북에서는 업무용 슬랙 접근이 안되는데 아이패드에서는 슬랙 접근을 바로 할 수 있습니다.


위의 모바일 기기에 좀 더 가까운 특성에서 오는 장점은 저한테만 해당하는 이야기겠지만 기본적으로 아이패드 프로를 랩탑으로 쓸 때의 진짜 매력은 역시 아이패드 프로에만 들어가는 신기술들입니다.

이번 M4 아이패드 프로에 들어간 텐덤 OLED는 디스플레이 밝기나 화질 측면에서 따라올 수 있는 기기가 없는 수준입니다. 특히 일반 밝기 1,000 니트에 달하는 디스플레이 밝기는 외부에서 작업할 때 맥북 에어보다 훨씬 좋습니다. 아이패드 프로에서 작업하다가 맥북 에어를 열면 일단 디스플레이가 너무 어둡습니다. 120Hz 지원이나 HDR 지원은 말할 필요도 없겠죠.

제가 아이패드 프로를 노트북처럼 쓸 때 가장 좋아하는 부분 중 하나는 페이스 ID입니다. 뚜껑만 열어도 자동으로 잠금이 해제되어 어떤 환경에서든 빠르게 작업을 이어나갈 수 있어서 좋아합니다. 이건 쓸 때마다 너무 편해서 맥북 시리즈에 반드시 들어갔으면 좋겠어요.

iPadOS 18에 추가된 멀미 방지 기능도 좋아하는 기능입니다. 이런 종류의 기능은 가속도 센서나 자이로 센서 등 온갖 센서가 필요해서 기존 노트북에는 탑재되기 어려운 기능이죠. 아이패드 프로로 버스나 택시에서 작업해야하는 극단적인 상황에서 이 멀미 방지 기능의 덕을 보고 있습니다.

아이패드 프로에서는 키보드를 제거할 수 있다는 점도 폼팩터 상의 큰 장점입니다. “아이패드니까 당연한거 아냐?”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노트북에서는 원하는 키보드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맥북 키보드 위에 기계식 키보드를 올려놓고 쓰는 사용 패턴이 많이 보이죠. 그에 비해 아이패드는 진정한 의미의 BYOK(Bring your own Keyboard)가 가능합니다. 키보드가 필요없을 때는 아예 떼버릴 수도 있구요.


소프트웨어 측면에서 아이패드 프로는 맥북 등의 노트북에 비해 모든 부분이 열세입니다. iPadOS는 예전보다는 많이 나아지긴 했다지만 뛰어난 하드웨어를 소프트웨어가 발목을 잡고 있는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의외로 아이패드가 맥북에 비해 가지는 장점도 몇가지 있습니다.

제가 아이패드 프로에서 작업할 때 가장 좋아하는 부분은 “몰입”입니다. 아이패드는 특성상 앱 하나가 전체화면으로 실행되도록 되어있죠. 이 구조 덕분에 최대한 작업에만 집중할 수 있습니다. 모든 작업을 한번에 하나씩 처리할 수 있다는건 때론 단점이기도 하지만 방해를 줄일 수 있다는 측면에서 매력이 분명 있습니다.

아이패드 프로를 노트북으로 쓸 때 아이폰 앱을 온전하게 쓸 수 있다는 것도 장점입니다. 업무상 화상 미팅으로 아이폰 앱을 시연해야할 때가 가끔 있는데 이 기능 덕분에 아이패드 프로만으로 화상 미팅과 아이폰 앱 시연을 동시에 할 수 있습니다. 맥북이라면 아이폰을 퀵타임으로 연결하거나 미러링 기능으로 써야했겠지만 아이패드 프로에서는 아이폰 없이 가능하죠.

물론 아이폰에만 출시된 앱이나 게임을 그대로 할 수 있다는 그 자체도 장점입니다. 예를 들어 아직도 아이폰 앱만 있는 블루스카이 앱 같은 경우 말이죠.

맥북도 애플 실리콘 이후로는 아이폰, 아이패드 앱 사용이 가능해졌지만 공식적인 방법으로는 아이패드에 비해 여전히 제한이 있지요.

대부분의 서비스나 앱들이 웹브라우저에서 실행되는 상황에서 PC에 비해 네이티브 앱들이 비교적 잘 지원된다는 것도 장점입니다. 예를 들어 유투브, 넷플릭스, 구글 독스 같은 앱들이요. 웹앱이 크게 불편한건 아니지만 네이티브 앱에서만 지원되는 기능(오프라인 저장 등)도 있어서 이 부분은 확실히 PC보다 우위에 있습니다.

또한 아이패드의 단축어 같은 경우 맥OS에는 지원되지 않는 자동화 기능도 있어서 운영체제의 한계를 극복하는데도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저 같은 경우 회사 업무 상 주기적으로 돌려야 하는 파이썬 코드를 자동화와 ashell을 이용해 돌리고 있습니다. 회사 맥북 프로에서도 할 수 있는 작업이지만 자동화가 너무 편해서 그냥 아이패드에서 돌리고 있습니다.


물론 제 블로그에서 항상 이야기하는 부분이지만 이 모든 장점은 결국 아이패드 프로가 내가 하는 일을 얼마나 잘 커버하느냐에 달려있습니다. 아이패드는 장점도 있지만 한계도 뚜렷한 기기이기 때문에 환경에 따라 안맞는 경우가 분명히 있습니다. 저 같은 경우는 맨 처음부터 “컴퓨터가 아닌 무엇인가”가 필요한 환경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겠죠.

아마 저는 이런 매력 덕분에 다음 교체 주기에 아이패드 프로냐 맥북 에어냐는 선택을 하게 된다면 그때는 고민없이 아이패드 프로 쪽으로 갈 것 같습니다. 아마 그때쯤은 소문으로 내려오는 폴더블 맥북이나 아이패드가 출시되어 또 다른 선택을 하게 될지도 모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