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아이패드를 주력으로 8년 정도 쓰다가 다시 맥으로 돌아간 사람의 이야기를 보면서 최근 애플에서 아이패드가 가지는 포지션에 대한 부분을 생각해봤습니다. 아이패드의 한계와 제한은 차치하더라도 최근의 애플에서 아이패드는 어떤 의미일까 말이죠.
아이패드는 애플에서도 약간 특이한 제품군입니다. 일단 아이폰으로 시작되는 애플 생태계를 보면, 아이폰과 애플워치는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고, 맥에서는 아이폰의 대부분의 기능을 사용할 수 있도록 미러링 기능을 쓸 수 있고, 애플워치를 통해 맥을 잠금 해제할 수 있습니다. 아이폰, 맥, 애플워치의 이 세가지 제품은 서로 연결성이 상당히 높습니다.
그에 비해 아이패드는 위 세가지 제품에 비하면 연결 성에서 혼자 동떨어진 느낌이 약간 있습니다. 물론 맥과 아이패드는 서로 연결되긴 하지만, 아이폰, 애플워치와는 크게 접점이 없습니다. 애플의 연동성으로 인해 완벽한 생태계를 구성하고자 하는 사람도 아이패드는 사실 없어도 크게 무관합니다.
아이패드는 원래 맥이 인텔맥이었던 시절, 애플이 제작한 프로세서가 들어가는 가장 이상적인 모바일 컴퓨터였습니다. “당신의 컴퓨터는 컴퓨터가 아니다”라는 슬로건은 사실 인텔을 중심으로 한 기존 레거시 컴퓨터들에게 던지는 도전장이었던거죠. 그때는 아이패드가 기존 컴퓨터보다 얼마나 빠른지에 대한 메시지가 중심이었습니다.
하지만 맥에도 애플 실리콘이 들어가면서 아이패드와 맥의 프로세서는 같아졌고, 오히려 기존 데스크탑 환경의 생산성을 그대로 갖고 있던 맥이 아이패드에 비해 훨씬 우수한 컴퓨터가 되었습니다. 애플 입장에서는 아이패드가 더 나은 컴퓨터라고 주장하기도 애매해진 상황입니다.
아이패드 프로는 최신 맥과 동일한(아니 맥보다 먼저) M4 프로세서를 탑재하면서 여전히 주력 컴퓨팅 플랫폼임을 광고했지만 여러모로 맥과 비교하면 열등한 컴퓨터임은 틀림 없는 것 같습니다.
더 우수한 컴퓨터가 이미 라인업에 존재하는 세상에서 아이패드는 어떤 의미를 가지는 제품일까요? 그건 애플조차 갈피를 못 잡는 느낌입니다. iPadOS의 업그레이드만 봐도 언제는 맥과 비슷한 기능을 도입하기도 하고(외장 모니터 지원과 스테이지 매니저) 언제는 터치와 펜 중심으로 업데이트하기도 합니다.(iPadOS 18의 계산기) 매직키보드도 있지만 애플 펜슬도 있고, iPadOS 16에서 외장 모니터 지원이 추가되긴 했지만 유의미한 업데이트는 아직도 못 받고 있는 중입니다. 사용자 입장에서도 아이패드를 어떻게 써야할지 헷갈릴 지경입니다.
그럴바엔 이 글의 사례 마냥 우수한 컴퓨터인 맥으로 다시 돌아가면 될 일이지만 그것도 개인적으로 여러번 맥으로 대체해보려고 하다가 실패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아이패드만한 유연성과 성능, 휴대성을 지닌 기기도 별로 없기 때문이죠. 사실 키보드조차 없이 뭔가 터치스크린으로 작업하기에는 아이패드가 가장 우수한건 사실이라 그래서 고민이 됩니다.
현재 PC 시장에는 전통적인 컴퓨터와 대안 컴퓨터 들이 서로 병존하는 것 같습니다. 윈도우, 맥OS 등 노트북, 타워형 데스크탑과 같은 전통적인 컴퓨터가 한축이고, 또 한축엔 크롬북, 아이패드, 스팀덱 같은 특정 목적에 적합한 대안 컴퓨터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대안 컴퓨터들은 전통적인 데스크탑 환경에서 할 수 없는 작업에 특화되어있죠.
지금의 아이패드는 이런 대안 데스크탑 컴퓨터인 것 같습니다. 터치스크린에 특화되어있는 컴퓨터죠. 여러모로 크롬북 같은 기기들과 비슷한 포지션인 것 같습니다. 비유하자면 아이패드 프로는 하이엔드 크롬북인 크롬북 픽셀 같은 느낌인거죠. 하드웨어는 최상급인데 막상 제대로 쓰려면 모자른 그런 대안 컴퓨터.

하이엔드 크롬OS 노트북이었던 크롬북 픽셀에 빗대어 생각해보니 아이패드 프로에 대해서 사람들이 내리는 “비싼 유튜브, 넷플릭스 머신”이라는 평가도 어느정도 이해가 됩니다.
어쨌든 애플에서도 아이패드는 약간 방치된 상태로 표류중인 것 같습니다. 컴퓨터가 아니지만 그렇다고 컴퓨터가 아닌 것도 아닌 그 어딘가 사이를 말이죠. M4 아이패드 프로가 특히 아쉬운데, 뛰어난 하드웨어만큼 OS 자체의 안정성이나 기능도 한번 도약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큰 아이폰이나 다를 바 없었던 초기 iPadOS랑 지금의 iPadOS를 비교해보면 앞으로는 맥이나 그 이상의 “진짜 컴퓨터”로 발전할 수도 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