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아나2 후기

제가 어릴 때는 디즈니 극장판 애니메이션의 후속작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라이언킹2>, <뮬란2>, <인어공주3>, <알라딘과 40인의 도적> 같은 것들이죠. 성공적인 극장 애니메이션의 후광을 받기 위해 만든 후속작들이죠.

이런 후속 애니메이션들은 극장 개봉이 아니라 비디오 시장을 노리고 나온거라(지금으로 따지면 OTT 용 영화) 작품성이나 작화 품질이 크게 떨어졌습니다. 아예 제작 스튜디오가 달랐거든요.

하지만 이런 후속작들의 가장 큰 문제는 작화 같은게 아니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이미 전작에서 완성된 이야기를 다시 무리하게 늘리느라 전작의 이야기를 망치기도 한다는거죠. 설정이 바뀌거나, 전작의 교훈을 무시하기도 하는 작품들도 많았습니다.

<모아나2>는 이전의 다른 디즈니 후속작처럼 작화가 엉망이거나 품질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시간이 흐른만큼 그래픽은 엄청나게 발전했습니다. 영화상에 나오는 거대 조개의 질감을 보면 상당히 리얼해서 엄청 징그러울 정도에요.

하지만 후속작 제작을 위해 이미 완성된 이야기를 무리하게 늘려서 발생하는 문제점은 동일하게 갖고 있습니다. 이건 사실 <겨울왕국2>부터 갖고 있었던 문제였죠. 하지만 <겨울왕국2>는 전작과 같은 이야기를 하진 않았는데, <모아나2>는 전작에서 완성된 모아나의 서사를 또 한번 그대로 반복합니다.

사실 <모아나2>는 재미 있습니다. 디즈니의 100주년 기념작 <위시> 정도는 절대 아니에요. 누구나 봐도 재밌는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디즈니가 다시 돌아온 느낌입니다. 다만 ‘왜 굳이 모아나여야 했을까? 라는 질문이 계속 머리속에 돕니다.

전작에서 모아나는 족장의 딸로서 섬을 구하기 위해 모험을 떠났고, 마우이라는 조력자의 도움을 얻어 세상을 구하고 ‘길잡이’가 되어 돌아옵니다. 이 과정에서 모아나는 배를 모는 것을 비롯해 많은 것들을 배웠고 좌절도 하고 그를 극복하기도 하면서 이야기가 완성되었죠.

<모아나2>에서 이렇게 완성된 캐릭터가 비슷한 이유로 똑같은 모험을 떠납니다. 1편의 모아나와 2편의 모아나의 처지는 다릅니다. 2편의 모아나는 더 나이가 들었고 현명해졌으며, 리더로서의 위치에 있죠. 하지만 또 똑같은 고난을 겪고 또 마우이의 도움을 받으며 또 좌절하고 또 극복합니다.

검증된 캐릭터가 나오는 검증된 서사는 안전합니다. <모아나2>에서 모아나는 다시 한번 모험을 떠나지만 디즈니는 모험을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여러 캐릭터를 추가하고, 새로운 노래를 만들었을 뿐이죠.

전작의 인기를 이어가기 위해 무리하게 전작의 서사를 반복하는 문제는 최근에 봤던 스타워즈 시퀄 시리즈랑도 비슷한 느낌입니다. <모아나2>를 보는 내내 저는 이 점이 제일 아쉬웠습니다.

아름다운 이야기가 아름다울 수 있는 이유는 아름다울 때 끝나기 때문이라는 말도 있죠. 디즈니가 그동안 만들어낸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아름다운채 유지될 수 있도록 이런 후속작들은 그만 봤으면 좋겠습니다. 아니면 더 아름다운 이야기로 마무리하든가.(하지만 제작 예정되어있는 작품들을 보면 하나 빼고는 다 시퀄이나 프리퀄들이라.. 좌절)

이래저래 안좋은 이야기를 했지만 <모아나2>는 가족들이 연말에 볼 수 있는 훌륭한 디즈니 가족 애니메이션입니다. 적당히 재미도 있고, 적당히 흥겹고, 캐릭터들은 귀엽습니다. 즐거운 가족 애니메이션을 기대하셨다면 후회하진 않으실겁니다. 다만 명색이 “디즈니”니까 이것보다는 뭔가 좀 더 해줬으면 싶은거죠.

덧. <모아나2>의 이야기만 말하다보니 노래 이야기를 안했네요. 저는 <엔칸토> 이후로 디즈니 뮤지컬 애니메이션의 노래들이 <We Don’t Talk about the Bruno> 의 영향을 강하게 받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대부분 분위기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노래는 많이 나오고 어떤 곡들은 중독성 있는 후크송이기도 한데, 이상하게도 기억에 남는 노래들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모아나2>에서 제일 좋았던 노래는 <모아나>에서 나왔던 노래였던 것 같아요(…)

덧2. 같이 극장에서 본 마느님은 차라리 <모아나>를 극장에서 다시 봤으면 좋겠다는 평을 남겼습니다.(정작 전작은 극장에서 못 봤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