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도시의 사랑법

네이버 멤버십을 통해 넷플릭스를 구독한 덕분에 ‘보통 사람들’이 보는 매체들을 많이 접하고 있는 요즘입니다. 그동안은 나름 매니악한 디즈니 플러스를 구독하고 있었다보니 다른 사람들이 보는 걸 못 봐서 스몰 토크에 끼기가 어려웠죠.

그 일환에서 좀 지난 영화이긴 하지만 김고은이 출연했던 “대도시의 사랑법”을 봤습니다.

포스터랑 제목만 보면 서울이라는 대도시를 배경으로 두 청춘 남녀가 나오는 아름다운 로맨틱 코미디 물인 것 같지만 퀴어 장르의 영화입니다. 두 주인공은 로맨틱한 관계가 아니고 친구 사이죠. 저는 사전에 이 영화에 대한 정보를 알고 봤지만 영화가 개봉했던 당시에는 이 정보를 숨기고 개봉해서 많은 사람들을 충격에 빠뜨리기도 했던 모양입니다.

퀴어 장르의 영화라곤 하지만 독립영화도 아니고 어느정도 대중성을 갖춰야 하는 상업 영화이기 때문에 좀 더 부드러운(?) 느낌으로 전개 됩니다. 원작은 읽어보진 않았지만 남자 주인공인 “장흥수”가 아니라 일반인인 “고재희(김고은 역)”의 비중이 좀 더 크다는 것만 봐도 이 영화가 지향하는 바는 분명해 보입니다.

그래서 장르가 장르지만 오히려 청춘 물에 가깝다는 느낌이 더 들었습니다. 영화를 관통하는 주제는 하나의 질문으로 귀결 됩니다. 20대 시절의 누구에게나 비슷한 질문은 하나씩 있었을 겁니다.

“나는 누구인가?”

결국 서로 가장 친하지만, 연애는 할 수 없는 두 청춘 남녀가 20대부터 30대까지 이어가면서 찾아가는 질문은 바로 이 부분인 것 같습니다. 결국 “나”라는 존재가 (힘들겠지만) 나의 정체성을 회피하지 않고 당당히 인정할 때 세상과 떳떳하게 마주할 수 있다는 거죠.

“씨X, 나는 난데 그래서 어쩌라고?”

가족에게 커밍아웃하는걸 두려워하는 주인공 “장흥수” 뿐 아니라 일반인 여자 주인공 “고재희”에게도 상당한 분량의 비슷한 서사를 부여 함으로써 이 영화는 퀴어 영화지만 퀴어 영화가 아닌 뭔가 평범한 청춘 드라마 물 같은 느낌으로 재탄생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게 나빴다는 건 아닙니다. 대중적인 성공을 해야하는 상업 영화로서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선택이었고, 저 같은 무지몽매한 사람도 재밌게 볼 수 있는 영화였으니까요.

영화의 제목처럼 서울이 미화되기만 해서 나오는 영화는 아니지만 그래도 전체적으로 예쁜 영화입니다. 그 시절을 지나온 사람으로서 지금 20대, 30대에게 꼭 한번 보라고 추천할만한 영화인 것 같습니다.

덧. 영화를 보는 내내 옛날 할리우드에서 게이와 여성이 나오면 항상 나오던 “사실 나는 게이가 아니었어” 같은 전개로 가는건 아닌가 의심했는데 다행히도(?) 그런 전개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둘은 정말 좋은 친구사이로 남습니다.

덧2. 20대를 저런 친구랑 같이 보냈는데 둘이 같이 평생을 할 수 없다는 건 좀 슬펐습니다. 물론 둘이 친구로서 결혼 후에도 예전처럼 계속 연락하면서 지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저도 결혼을 한 입장에서 그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걸 알고 있죠.

덧3. 둘의 사이를 오해하는 남자친구가 등장하는데, 나쁜놈이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저 정도 친구사이면 질투 날만도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둘이 이성이 아니라 동성 친구라도 저 정도 사이면 저는 질투 날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