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과 파이어폭스의 역설

미국 법무부는 독점 규제를 위해 여러 수단을 동원해 구글을 해체하고 있는 중입니다. 최근엔 구글의 여러 기술을 매각하라는 판결을 내릴 것으로 보이는데, 그 중 크롬 브라우저에 대한 소유권도 있습니다. 모바일과 PC를 다 합쳐도 명백하게 1위 브라우저인 크롬이 매각된다면 웹브라우저에서도 구글의 독점력이 좀 더 약해질 수 있을겁니다.

그런데 파이어폭스 브라우저를 유지하고 관리하는 영리기업 모질라의 CEO는 법정에서 법무부의 의사와 반대되는 증언을 했습니다. “법무부의 이러한 조치는 기술 대기업의 영향력을 강화시킬 뿐이다”라고 말이죠. 파이어폭스는 대기업에서 소유하지 않은 오픈소스 브라우저이자, 크로미움이 아닌 브라우저 엔진의 마지막 희망입니다. 웹에서 크롬의 영향력이 줄어들면 경쟁 관계인 파이어폭스에 나쁜 일은 아닐텐데, 왜 모질라의 CEO는 이런 증언을 한걸까요?

이건 구글과 파이어폭스 간의 아주 오래된 역설적인 관계 때문입니다.

구글은 기본적으로 검색엔진 회사입니다. 시장에 있는 여러 브라우저들은 구글을 기본 검색 엔진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구글은 이 브라우저들이 기본 검색 엔진으로 구글을 선택하도록 암암리에 막대한 비용을 지불하고 있습니다. 아이폰의 사파리에도 검색엔진을 구글로 유지하도록 하기 위해 구글은 애플에 막대한 비용을 지불하고 있습니다.

파이어폭스도 이런 지불 대상의 예외가 아닙니다. 문제는 구글이 지불하는 이 비용이 모질라 수익의 85%를 차지한다는 것이죠. 실제로 모질라는 구글이 아니라면 단기적으로도 유지되기 어려운 재무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미국 법무부는 구글이 기본 검색엔진을 유지하는 댓가로 이런 브라우저를 소유한 기업에게 돈을 지불하는 행위를 반 경쟁적인 행위로 보고 있습니다. 브라우저 사용자는 자신이 사용할 검색엔진을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는거죠. 이 규제가 시행되면 구글은 모질라에 기존 비용을 유지할 이유가 사라지게 되고, 모질라는 파이어폭스를 더이상 유지하기 어려워질겁니다.

모질라도 이 문제를 너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구글에 대한 재무 의존성을 독립하기 위한 여러 방법을 시도했습니다. 기본 검색엔진을 구글에서 야후로 바꿨던 적도 있었고, 클라우드 서비스나 AI 서비스 같은 독립적인 서비스도 시도했었죠. 모두 잘 되진 않았을 뿐이죠.

모질라가 무너지면 파이어폭스의 미래도 불투명해질거고 이는 나아가 웹의 다양성과 건전성에도 큰 영향을 미칠겁니다.

“이미 브라우저는 많지 않나요? 우리나라만해도 웨일도 있고..”라고 생각하실지도 모르겠지만 현재 대부분의 브라우저들은 모두 크롬의 오픈소스 버전인 크로미움의 변형체들입니다. 파이어폭스와 사파리를 제외한 엣지, 웨일, 오페라 등의 브라우저는 모두 포장만 다른 크롬들이죠.

게다가 파이어폭스는 유일하게 기술 대기업이 소유하지 않은 진정한 오픈소스 브라우저라는데 의의가 있습니다. 광고나 개인정보 유출 위험 없이 브라우저 사용자의 이익을 더 우선하는 유일한 브라우저입니다. 크롬만 하더라도 구글의 비즈니스에 영향을 미칠만한 광고 차단 확장 기능을 제한하는 등의 조치가 시행되고 있죠. 파이어폭스가 무너지면 메이저 웹브라우저들은 모두 빅테크 기업(구글, MS, 애플)이 소유한 브라우저들이 차지하게 됩니다.

결국 구글과 파이어폭스가 가진 이런 관계 때문에 미국 법무부가 사용자에게 검색엔진 선택권을 돌려주려 할 수록 오히려 사용자의 브라우저 선택권이 제한되는 역설적인 현상이 발생한겁니다. 모질라 CEO의 증언도 이런 취지에서 나온 이야기죠.

결국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답은 모질라가 구글로부터 재무 의존성을 빨리 독립하는건데 단기적으로 쉽지 않은 이야기입니다. 그렇다고 구글의 독점과 반경쟁적인 행위들을 그대로 둘 수도 없는 문제고 말이죠. 개인적으로 파이어폭스를 주력으로 쓰는 입장에서 파이어폭스가 이대로 무너지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당장은 현실적인 대안이 떠오르진 않는 상황입니다.

덧. 물론 파이어폭스는 오픈소스 브라우저로 영리 기업인 모질라가 무너진다고 해도 당장 무너지진 않을겁니다. 하지만 모질라(기업)가 자금을 대는 모질라 재단(비영리)은 파이어폭스의 상근 개발자들에게 월급을 줘야합니다. 현대의 브라우저는 너무 복잡해서 상근 개발자 없이 오픈소스 커뮤니티의 힘만으로 움직이긴 어려운 소프트웨어입니다.

덧2. 오픈소스에서는 리눅스 재단이 모범적인 사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 리눅스 재단은 리눅스 커널을 유지하기 위해 구글, MS, 삼성 등 여러 기업들의 기여와 투자를 받고 있죠. 하지만 파이어폭스는 운영체제의 커널과 달리 빅테크의 서비스와 직접적인 경쟁을하는 엔드유저 프로덕트라서 이런 다양한 기업의 기여와 투자는 어렵지 않을까 싶기도 하네요.